"하늘나라" 김옥순 작
순례자의 기도/이해인
저무는 11월에 한 장 낙엽이 바람에 업혀가듯
그렇게 조용히 떠나가게 하소서
그렇게 조용히 당신을 향해 흘러가게 하소서
... 죽은 이를 땅에 묻고 와서도
노래할 수 있는 계절
차가운 두 손으로 촛불을 켜게 하소서
해 저문 가을 들녘에
말없이 누워있는 볏단처럼
죽어서야 다시 사는 영원의 의미를 깨우치게 하소서
세상 떠난 이들을 위해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는 위령의 달, 위령의 날을 나는 좋아합니다. 우리 수녀님들이나 친지들이 긴 잠을 자고 있는 무덤가에 서면 마음이 절로 차분하고 온유해지기 때문입니다. 먼저 떠난 분들에 대한 그리움에 잠시 슬퍼지다가도 그들이 보내오는 무언의 메시지에 정신이 번쩍 들곤 합니다.
지난해와 올해만 해도 여러 명의 수녀님들이 세상을 떠났는데 어떤 분은 매장을 하고, 어떤 분은 화장을 해서 수녀원 묘지에 모셔옵니다. 비록 육신은 떠났으나 그들이 너무도 생생히 꿈에 보이거나 바로 곁에 있는 것처럼 기도 속에 떠오를 때면, 허무를 넘어선 사랑의 현존으로 행복을 맛보기도 합니다.
오래전 수도공동체의 수련장이었던 노수녀님을 동료 수녀와 같이 간병하러 가서 환자 수녀님과 성가도 부르고 배도 깎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다음날 새벽 수녀님은 갑자기 살짝 주무시듯이 고요하게 선종하셨습니다. 지켜보던 우리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동료 수녀는 떠나는 수녀님을 향해 '아주 가시는 건가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그 인사말이 어찌나 간절하고 인상적이던지! 잠시 출장을 가거나 지상 소임을 마치고 저쪽 세상으로 이사 가는 이에게 건네는 이별 인사로 여겨져서 슬픔 중에도 빙긋 웃음이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먼저 떠나가서 친숙하기도 하지만, 죽음을 깊이 묵상하는 11월, 우리는 그 무엇에도 그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는 가벼움과 자유로움으로 순례자의 영성을 살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아직은 오지 않은 자신의 죽음을 잠시라도 묵상하는 것은 오늘의 삶을 더 충실하게 가꾸는 촉매제가 되어줍니다.
'잠자는 이들과 죽은 이들이 어쩌면 그렇게 서로 같은지!'라고 한 <길가메시 서사시>의 한 구절을 새겨봅니다.
"주님,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 매일 외우는 끝기도의 마무리 구절을 묵상해 봅니다.
삶의 여정에서 자존심 상하고 화나는 일이 있을 적마다 언젠가는 들어갈 '상상 속의 관' 속에 잠깐 미리 들어가 보는 것, 용서와 화해가 어려울 적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자신을 겸손히 내려놓는 순례자의 영성을 살아야겠습니다. 자신을 극복하는 작은 죽음을 잘 연습하다 보면 어느 날 주님이 부르실 때, "네!"하고 떠나는 큰 죽음도 잘 맞이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해인 수녀 시인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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