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6년 주보

주님 공현 대축일 2016년 1월 3일(다해)

모든 2 2016. 1. 3. 22:30

대화동성당(대전동부지구)

본당설립:1986.2.24/주보성인:노동자의 성요셉

 

+  마태오 복음.2,1-12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아,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 보시오,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어.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말씀의 향기>

 

예수아기: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존재? -이한영 마르코 서산동문동 주임

 

  가장 멀리서 이방인들조차 온갖 고초를 무릅쓰고 예수아기를 찾아와 경배를 드리는데,가장 가까이 있었던 유태인들,헤로데를 비롯한 온 예루살렘은 깜짝 놀라 아기예수를 없애버리려 작당을 하고 있다. 왜 깜짝 놀랐을까? 새로운 왕으로 말미암아 정권이 바뀌면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풍요와 안정이 깨지고 신상이 해로워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마찬가기로 하느님을 모르는 이방인 비신자들보다 오히려 하느님을 잘 안다고 자처하는 신자들,특히 조상대대로 하느님의 은총을 넘치게 받아온 구교신자들이 신앙 때문에 자기 생활 리듬이 깨질까봐 휴가 운동 취미 못할까봐 전전긍긍 온통 마음이 술렁거리면서 하느님을 멀리하고 불편해하고 부담스러워하는 모습 얼마나 많은가?

 

 신자라 해서 비신자 이방인들보다 더 착하게 더 많이 봉사하고 더 많이 자선하는 것도 아니고 윤리적으로 더 잘 사는 것도 아니다. 평생 남을 위해 희생 봉사 자선 한 번 안하는 천주교 신자들도 많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예수아기께 귀한 예물,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아까워서 게을러서 바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복음을 선포하고 예언하고 강조해도 귓등으로도 말을 듣지 않는다. 자식 손자 손녀들 말 안 듣는다고 야단치고 요즘 애들은 왜 이러느냐고 한심하다고 말세라고 한탄하는 어른들이 오히려 애들보다 훨씬 더 말을 잘 안 듣고 완고하고 고집불통이다. 왜 그럴까? 귀찮고 힘들고 신경쓰기 싫고 생활리듬이 깨질까봐 자기 껍질을 싸고 들어앉아 있기 때문이다.

 

  예수아기는 화려한 궁궐이 아니라 가장 누추하고 귀찮고 냄새나고 불편한 마굿간에서 탄생하셨다. 그분을 만나려면 낮고 불펴하고 냄새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마굿간을 싫어하고 귀하고 아까운 것을 내놓지 않고 겸손도 희생도 없이 구중궁궐 안방에서 게으름 피우며 편안하게 안주하는 생활 속에서는 구세주 예수아기를 만날 수 없는 것이다.

 

  희미한 별빛을 바라보며 수천 리 고생길을 걸어와 구세주를 만난 동방박사들처럼 어리석고 바보 같다는 비웃음을 각오하고 신앙의 별칯을 따라 험난하고 지루하고 불편할 수도 있는 길을 인내로이 항구하게 걷도록 하자.그래야 메시아 주님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동방에서

주님의 별을 보고,

예물을 가지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노라.

 

 

사목지표 살아가기2

말씀과 성사 안에서 자비를 실천하는 해

 

전례와 성사

 

 교회의 전례는 분명 가톨릭 신앙의 좋은 것이 모두 응축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례는 우리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언제나 담아내고 있는 그릇이며,이를 표현하는 필수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신앙인들의 삶에 있어서 다른 이들과는 구분되는 생활이기에 '신앙이 있다는'증거가 전례생활이다. 따라서 교회는 전례를 "교회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이라 선포했던 것이다.(전례헌장 10항)

 

   1. 전례의미 되새기기

  교구장 주교님의 사목교서는 교구 하느님 백성이 각자의 위치에서 전례와 성사에 능동적인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먼저 전례(행위)의 의미를 되새기자고 계시하신다.

 

  신부님들은 「미사전례총지침」을 사제단 안에서 혹은 개인적으로도 읽으실 것이다. 그리고 읽은 내용들 가운데,신자들에게 유익한 내용들은 안내할 것이다. 특별히 대전교구 전례위원회에서는 미사전례뿐만 아니라,특별히 고행성사에 관련한 '교육자료'(소책자)도 본당에 보급할 계획이다. 본당에서는 이러한 자료들을 활용하여 신자들의 전례생활에서 보다 실천적인 전례상식을 공유하고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자.현재 많은 신부님들이 전례와 신앙생활에 의미 있는 작은 움직임을 새로이 시도하고 있다.

형태 내용
교구/본당주보(전례5분상식) -가톨릭교회교리서(성사편),'미사 속 숨은 보화'(2013-2014년도 주보연재)내용,전례위원회에서 보급할 '소책자'내용 요약 발췌하여 게재할 수 있다.
영성자료 -www.youtube.com/검색어: "바오로딸컨텐츠"(전례시기별 미사준비 영상)" 시니어스 서울 고해성사"(그룹웨어 통해 공유 중)
전례분과,성가대 모임 -전례 관련 서적,문헌 봉독하거나,훈화로 전례상식을 전해준다.
전례위원 교육
(2/27-28,정하상교육회관)
-'전례주년과 성삼일 전례',수도자와 신임분과위원들 참석 요망
그외 전례특강과
견진성사 '준비교육'
-7성사와 관련한 신앙새활을 교육할 수 있다.

 

  또한 교서는 신자들의 미사 준비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전례는 '하느님께서 듣고 응답하는 당신 백성에게 오늘 말씀하시는 탁월한 장소'(「주님의 말씀」52항)이며,신자들이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어야 한다. 신앙인은 미사 가운데 두 개의 식탁에서 전하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말씀과 모습',그리고 '용서와 화해의 제사'를 알아 차릴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올바른 준비라면 당연히 고해성사와도 관련이 깊다. 미사 전 회개한 사람은 다시 '은총의 지위'에 놓이는 것이며,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마땅히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우리는 고해성사 후에 봉헌하는 미사 안에서 이러한 것들을 체험하곤 한다. 말씀에 대한 오롯한 믿음,손이 떨리며 봉독하는 독서와 신자들이 기도,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 찬미의 기도소리,정성껏 모신 영성체,그리고 담대히 나아갈 가정과 사회,세상을 향한 기대와 용서와 사랑 가득한 마음 등이 그러한 것이다.

 

  2. 전례적인 삶은 표지가 되는 삶이다.

  교회는 구세사 안에서 우리가 체험한 하느님의 자비를 전례 안에서 기억하고 기념하며 현재화한다. 또한 이를 시대와 문화에 맞게 적절한 언어로 가르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전례는 그 어원에서도 일(opus),직분(munus),예절(rituts),활동(actio)등과 깊이 연결되어 있듯이,신앙인의 삶에서 다양하게 보이지 않는 우리의 신앙을 표현한다. 따라서 전례 안에서 세상에 파견된 우리는 또다시,"그렇다면 누구에게 먼저 다가가야 합니까?"(복음의 기쁨 48항)라는 질문에 대해 구체적인 대상과 장소가 있음을 발견한다. 저녜를 통해 받은 복음(福音)과 하느님의 선물(은총)은 또다시 '누군가에게','어딘가에서',영적으로든,육체적으로든,구체적으로 선포되고 전해져야 할 것이다.(자비의 얼굴 15항) 이제는 하느님의 자비를 얻기 위한 회개의 표지인 단식과 자선,기도가 우리 내적인 차원에서만 머룰 것이 아니라 외적으로 잘 드러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삶에 '연민과 동정이 담긴 착한 마음','얼굴 표정과 말씨','손짓과 몸짓'으로 그리스도의 표지를 드러내고 사회적인 차원에 까지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교회가 전하는 하느님의 자비를 미사전례와 고해성사 안에서 느끼고 배우고 실천하자.!

 

-대전교구 사목기획국-

 

 

 <이충무의 행복나침반(92)>

 

작심은 짧고 선심은 길다

위보다 옆을 보는 마음먼저

 

새해가 되자 소희 아빠는 가족들 앞에서 비장한 말투로 자신의 각오를 공표했습니다.

 

아빠 : 올해는 꼭 담배를 끊을 거다.

엄마 : 소희야,아빠 좀 말려라.

소희 : 왜요?

엄마 : 그 소리 해가 바뀔 때마다 벌써 몇 번째냐?

아빠 : 아니야! 이번엔 다르다니까!

엄마 : 작심삼일로 끝날 약속은 아예 하지도 마세요.

아빠 : 소희야! 너도 새해니까 각오 한마디!!!

소희 : 올해 반에서 꼭 1등 할 거예요!

엄마 : 그 소리도 해가 바뀔 때마다 벌써 몇 번째야?

 

  새해만 되면 소희 아빠처럼 금연의 의지를 불태우시거나,이번에는 기필코 다이어트에 성공하겠다며 헬스클럽에 등록하신 분들도 꽤 있을 겁니다. 아니면 소희처럼 등수를 꼭 올리겠다며 방학 계획표를 촘촘히 그리고 있는 학생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작심은 어째서 삼일 이상 가기 어려운 걸까요? 그 비밀은 아마도 작심이 대부분 나 자신을 위한 결심이라는 데 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한 결심은 늘 긴장감으로 가득하고,불안감으로 스트레스만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해야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언제나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며,자신과의 약속이 깨질까봐 노심초사하는 일.. 이 상태로 삼일 이상 버틴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새해엔 작심보다 '선심(善心)'한 번 써 보시면 어떨까요"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위한 좋은 결심에는 특별한 긴장감과 불안감도 없고, 오직 작은 배려만으로도 기쁨이 삼일을 충분히 넘길 테니까요.

 

  힘없이 걸오시는 할머니를 위해 현관문을 붙잡고 기다려주는 아이의 마음,내 아이의 손만 잡고 길을 건너는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라면 누구의 손이라도 붙잡아 주는 엄마의 마음에는 굳이 작심이 필요 없습니다.

 

  단지 자신을 조금만 낮추면 언제라도 가능한 마음,선심..

  그 따뜻한 마음으로 새해를 편안하게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

 

 

희망은

낮은 곳에서 움트며

 

행복은

작은 미소에서 시작하고

 

웃음은 예쁜 마음으로

생겨납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송구영신(送舊迎新) -8구역 임욱빈 바오로-

 

暮雪紛紛無分 모설분분혼무분

朝光先倒吉祥門 조광선도길상문

尋鄕歲拜傳吉俗 심향세배전기속

崇組茶禮獻酌樽 숭조다례헌작준

舊遊似夢徒能說 누유사몽도능설

良風留魂尙喜存 양풍유혼상희존

心祝丙申曉天闢 심축병신효천벽

湧出國運太平坤 용출국운태평곤

 

세모에 내리는 눈은 어지러워 분간할 수가 없고

새해의 햇빛이 상서로운 집안에 먼저 비추네

고향을 찾아 세배하는 것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민속이고

조상을 숭배하는 다례에 술잔을 드리노라

꿈같이 놀던 친구들 이야기로 남았으며

양풍미속 아직도 남아있어 기쁘도다

새벽하늘이 밝게 열리니 병신년을 심축하고

국운이 물 솟듯하여 태평세를 이루소서.

- 저 하늘에 노을이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