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6년 주보

주님 세례 축일 2016년 1월 10일(다해)

모든 2 2016. 1. 10. 22:30

노은동성당(대전북부지구)

본당설립:2002.1.29/주보성인:성 아브라함

 

  +  루카 복음. 3,15-16.21-22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하늘이 열렸다.>

 

  그때에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말씀의 향기>

 

세파에 지친 영혼에 새 생명의 향기를 주는 세례성사 -정지풍 아킬레오 성거산 성지 주임

 

  추억은 현재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소중한 추억,아름다운 추억,특별한 추억들이 점점 우리 삶의 모질고 거센 세파에 밀려 속절없이 사라져가는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합니다.

 

  그러나 추억이 아름다운 것은 다시는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시간 속에 내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거를 추억으로만 기억하면 현재와의 연계는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가 현재를 향해 열려 있지 않으면 과거 그 자체에 닫혀버리는 것이 됩니다. 세례 받았을 때 물이 이마 위로 쫄쫄 흐르는 부드러운 물줄기 느낌이 왠지 너무 좋았던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상실한 세월을 다시 찾아보는 꿈을 꾸었으면 합니다.

 

  오늘은 성탄 시기가 끝나는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대림절부터 시작하여 성탄 시기 동안 우리는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드러나시는 신비를 묵상하였습니다. 성탄 대축일에는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요셉과 목동들에게 드러나심을 기념하였고, 공현 대축일에는 동방박사들을 통해 온 세상에 공적으로 드러나심을 묵상했는데,오늘은 하느님께서 직접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드러내시는 신비를 기념하여 성탄 시기를 마무리합니다.

 

  그리스도교인이 되는 첫 성사(聖事)인 세례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수난 전 또는 부활 후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만민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명령에 의거합니다.(마태 28,19) 세례성사를 받음으로써 죄 사함을 받으며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 신비체의 일원으로서 그분의 정산을 따라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 신비체 생활은 교회 생활에서 실질화(實質化)하는데,영세한 교우는 교회 생활의 영신적인 권리와 의무를 가지게 됩니다. 역사적으로는 고대에 에세네파(Essenes)는 매일 목욕의 형식을 행함은 깨끗한 생활 추구의 상징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아스라엘 민족에 입교하는 예식으로 행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써 이 세례를 "예수의 이름으로"행할 연계적 의미를 주었고, 동시에 죄인들과의 가교(架橋)역할을 암시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3년의 공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시발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즉 파스카의 신비를 예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고 난 후 본격적으로 하느님의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므로 공생애가  시작된 것처럼,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으니,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6,3-4) 하는 말씀과 함께 성령에 이끌림을 받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오늘 미사 중에 받은 세례식을 갱신하는 마음으로 세례의 중요성을 인식하시고 죄에 대하여 죽고,하느님의 의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도록...

 

 

  + 사랑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청소년사목국에서 대학생 사목을 담당하고 있는 김은석 요셉 신부입니다. 대전교구 가톨릭 대학생 협의회(이하-대.가.대.협)는 크게 3개 지구(대전/천안/공주.논산.세종 지구)로 이루어져 있고, 현재 대전교구에 가톨릭학생회가 활동하고 있는 대학은 35개입니다. 대.가.협 본부 식구로는 저와 김 아우구스티나 수년(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년회)강새미 아네스 팀장이 대학생들을 만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파견된 지 햇수로 3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대학생들을 방문하면서 느낀 것은 많은 대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하며 느끼는 아려움,아픔,갈망을 가장 가까이에 계시는 하느님의 위로와 격려가 아닌 세상적인 것들로 채워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의 반복 속에서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본연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잃어가고 있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우리나라의 입시제도 안에서 '공부>신앙생활"=>냉담이라는 공식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이공식은 고3 기간에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막상 대학에 입학해서 냉담을 끝내고 다시 하느님을 찾으려 해도 취업준비,산더니처럼 쌓이는 과제,경제적 이유로 선택하는 아르바이트로 인해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또한 대학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도 냉담을 지속하는 데 큰 몫을 하게 됩니다. 그 특수성이란,본인이 살아왔던 지역에 있는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들은 20~30% 정도에 불과하고,나머지 70~80%의 대학생들은 타 지역에 있는 대학교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낯선 장소,같은 또래 신앙인이 없는 상황에서 혼자서 나가야 할 성당을 찾고,그 공동체 안에 스며든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리하여 한번 시작된 냉담은 대학생활 내내 유지되고, 사회인이 된 이후에도 지속됩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루카15,6)

하느님을 선포하는 '선교'도 교호의 중요한 사명이지만,이미

하느님의 자녀로서 울타리 밖에서 쉬고 있는 이들을 되찾아

나가는 것 또한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대.가.대.협 본부는,각 대학교에 인접한 본당과 연계하여 가톨릭 대학생들이 매 주일 미사와 개강,종강 미사에 참례하고,매주 발간하는 기도모임 교재를 통해 일주일에 한번 함께 모여 기도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가.대.협 전체 연간행사(임원진 연수/대.가.대.협 오리엔테이션/피정/M.T/체육대회/총회)를 통해 가톨릭 대학생의 정체성에 대해 교육하며,신앙인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찬미하는 가운데 하느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지구 담당 사제,대학 담당 사제,수도자,선교사들의 긴밀한 협력 아래 대학생 사목이 이루어지고 있으며,대.가.대.협을 졸업한 선배들의 모임(대.졸.모)안에서 후배들을 향한 기도와 지원 또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대.가.대.협에 대해 소개하는 글들이 연재될 것입니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톨릭 대학생들을 위해 많은 관심과 기도를 보태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김은석 신부.대전가톨릭 청소년사목국 제1처장

 

 

2016년 대전교구 사제수품자 소감문

 

 

홍민기 요아킴 . 태평동본당

 

"언제나 기뻐하십시오."(1테살5,16)

 

  기쁨과 사랑이 가득한 당신의 품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불러주시고 허락해 주신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더불어 제가 사제직을 향해 나아감에 있어 많은 격려와 사랑을 베풀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상의 인사를 전합니다. 저는 평생 마음에 새기며 살아갈 성구로 "언제나 기뻐하십시오,"라는 말씀을 택했습니다. 저의 나약함으로 인해 주님의 도구롤 쓰이기에 너무나 부족한 저이지만,주님께서 함께해 주고 계시니 그분을 제 마음에 품고 그분 안에서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이 기를 걸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신 사랑과 은총으로 기쁜 삶을 삶으로써 하느님을 전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저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첫발을 내딛는 저의 5명의 사제들이 주님 안에서 항상 기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박종민 프란치스코.천안신부동본당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루카24,15)

 

 

  나약하고 부족한 저를 당신의 제단에 불러주시고 도구로 써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지금까지 걸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걸어가야 할 이 길에 저의 노력과 힘보다는 항상 함께해 주신 주님의 큰 사랑과 은총 초대가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사제직에 첫발을 내디디며 무엇보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앞서지만 주님께서언제나 가까이 오시어 함께 걷기에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번민과 갈등 중에도 항상 저를 이끄셨던 당신,특히 엠마오로 가는 제자에게 나타나신 당신의 모습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저의 발걸음에 맞추어 걷는 주님을 기억하며 이 길을 걷고자 합니다. 그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아울러 주님의 사랑받는 제자로,그분의 사랑을 널리 선포하는 사제로서 살 수 있도록 계속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박종민 임마누엘.신평본당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한없이 부족한 저에게 거룩한 직무를 맡겨주신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을 드립니다. 또한 저의 그 부족함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도,넘치는 것을 나누는 것도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임을 깊이 느낍니다. 누군가의 이웃이 되어주는 것 역시 그러했습니다. 약하고 소외받은 이들의 진정한 이웃이 되어줄 때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정녕 구원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 때,나 역시 구원의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신 하느님과, 저에게 진정한 이웃이 되어 주신 신평본당 신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하신 주님 말씀 따라,누가 내 이웃인지를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영.육적으로 쓰러져가는 사람들에게 '가서''그렇게'예수님처럼 '행하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최승범 베드로 . 대화동본당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요한 15,15)

 

 

  하느님 아버지께서 한없이 부족한 저를 하느님의 사람이며 교회의 종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불러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부르심의 길에서 지금까지 저를 품에 안고 사랑으로 이끌어주신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느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모든 것과 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정말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어려움들이 있겠지만,지금까지 받은 은총과 사랑을 영혼 깊이 새겨 친구로 불러주신 예수님과함께 사제의 삶을 끝까지 살려고 합니다. 부족한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또한 제가 사제로 죽을 수 있도록 기도를 청합니다.

 

 

김재준 알베르토.전민동본당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1요한4,8)

 

+  찬미예수님

하느님의 자비로 사제품을 받게 된 김재준 알베르토 새 사제입니다. 저는 서품을 받으며"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라는 요한 1서 4장 8절의 말씀을 서품 성구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 세상은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먹히고 나면 사라지고 다른 이들을 살게 하는 작은 빵 한 조각으로 그 사랑을 계속해서 보여주십니다. 하느님을 알고 전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내어놓는 사람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제 사제로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저 역시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사랑을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스스로 다른 이들의 양식이 되어 먹히고 없어져서 생명을 주는 작은 빵 조각이 되어 살아가겠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을 세상에 전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악기입니다. -마틴 슐레스케-

 

   종교 철학자 부버(Buber,Martin)는 "하나 될 때 진정한 힘이 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인류의 위대한 지혜서들은 모두 이런 하나 됨을 말합니다.

 

  중국고사도 "이끌어 주는 주인과 따르는 종,이것이 위대한 진보의 조건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악기와 연주자의 관계 역시 이런 하나 됨을 보여 줍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하는 동안 바이올린과 떨어질 수 없듯이-떨어지면 울림은 없어질 것입니다.-하느님도 생명에서 분리 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생명 위에 좌정해 있지 않고,생명으로 연주합니다. 그것은 기계적인 연주가 아닙니다. 거의 자신을 망각한 채 울림에 머물며,곡에 자신의 목소리를 부여하는 연주입니다. 바이올린의 울림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음성입니다. 그렇게 하느님과 하나 될 때,내 인생의 울림은 곧 하느님의 음성입니다.

 

   연주자가 악기의 울림을 추구하듯,하느님은 우리의 참여를 구합니다. 하느님과 하나 되어 울릴 때,비로소 우리 행동은 빛이 납니다. 연주자가 '여기'서 연주하고,악기가 '저기'서 소리 내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내가,저기에 하느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둘이 하나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세계에서 하느님의 임재(臨在)는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연주자와 악기의 관계처럼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도 서로 영향을 미치며,자칫 깨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신을 찾아야 합니다. 일 가운데,만남 가운데,아름다움 가운데,어려움 가운데 신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을 등지고 신을 찾아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하느님,당신은 내게서 너무 멀리 있습니다."하고 기도할 때,하느님은 이렇게 대답하실 겁니다. "예야,너는 나를 어디서 찾고 있느냐?

 

  눈과 마음을 열어 세상에서 나를 보아라.나는 네가 세상에서 나를 발견하도록 만들었단다. 너를 부르는 세상을 보아라. 나는 네가 세상에서 나를 발견하도록 만들었단다. 너를 부르는 세상을 보아라. 나는 그 안에서 네가 바라고 믿고,일하고 사랑하고,나를 발견하기를 원한단다.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더는 내가 멀리 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마틴 슐레스케 "가문비 나무의 노래"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