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의 촛불은 순간의 도취와 행복을 넘어서 부당한 모든 권력들을 적극적으로 미워하고 응징하는 정치적 인식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청와대의 복마전만이 아니라 사회와 일상 속 나아가 분노하고 있는 우리들 자신의 마음속까지도 스며 있을 어두운 세력의 그림자들을 발본하는 빛으로 뿌리내려야 한다.
김진영 철학아카데미 대표
토머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는 몹시 우울한 포스트모던 전쟁 소설이다. 그 소설 안에서 세계는 지배 권력의 음모로 가득하고 등장인물들은 그 음모의 거미줄에 매달린 거미들처럼 생존한다. 주인공 슬로스롭도 다르지 않아서 그는 권력과 음모의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파블로프의 개처럼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술에 취해 거리로 나온 그는 돌연 행복의 충격에 휩싸인다. 눈앞에 가득 펼쳐진 장엄하고도 황홀한 일몰의 풍경 앞에서다. 소설은 그 행복의 충격을 이렇게 묘사한다: “장엄한 일몰의 풍경이 눈앞에 가득 펼쳐져 있었다. 그 풍경은 아직 이 세상이 자유롭고 인간의 눈이 순수했을 때, 어느 이름 모를 화가가 행복의 도취 속에서 그려놓은 거대한 풍경화 같았다. 저 멀리 드넓은 하늘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붉은빛, 세상의 어느 빛보다 순수한 노란빛들로 가득한 숭고하고도 아름다운 일몰의 풍경이 지금 이 폐허의 땅 위로 가득 밀려와 있었다. 그러자 슬로스롭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제국의 지배자들은 왜 서쪽으로 정복의 길을 떠나야만 했을까. 왜 그들은 기어코 서쪽으로 건너가서 저 아름다운 일몰을 더럽히고 짓밟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토요일 저녁에는 또 광화문으로 나갔다. 눈이 녹아서 젖은 아스팔트 위로 어스름이 스미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광화문으로 통하는 대로는 금방 촛불들로 가득해졌다. 한동안 따라 걷는데 길이 막혀서 더 갈 수가 없었다. 우회할까 망설이다가 이 촛불의 풍경을 한꺼번에 다 보고 싶었다. 주변의 높은 곳을 찾아가서 창가에 앉았다. 그리고 슬로스롭이 보았던 풍경을 나도 보았다. 광화문의 풍경은 거대한 일몰의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 것 같았다. 그야말로 먼 기억 속의 자유로운 시절 어느 화가의 천진스런 눈이 그려놓은 순수한 자연 풍경 같았다.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장엄한 붉은빛과 처녀의 황금빛들이 그 풍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게다가 그 풍경은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고 안에서는 들리지 않아도 합창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자 얼핏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슬로스롭의 제국주의자들이 바다 건너 일몰의 풍경을 정복하려고 했는지를. 또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내가, 나의 이름 모를 친구들이, 우리들이 광화문의 토요일 밤을 찾아오고 저마다의 촛불들을 모아서 거대한 빛의 거리 풍경을 만들고 있는지를….
부당한 권력들은 일몰의 풍경을 두려워한다. 그 풍경 안에서 그들은 다가오는 어두운 밤만을 보기 때문이다. 밤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밤을 정복하고 없애려고 하지만 오히려 밤 안으로 숨어들어 밤의 식솔이 되고 나아가 제물이 된다. 그것이 두려움과 지배의 논리이고 제국주의의 자가당착이고 모든 어두운 권력들의 어리석음이다. 소위 문고리 권력들과 환관 수석들의 가엾은 모습이고 민주 정치의 아고라 대신 오컬티즘의 어두운 주술권 안으로 숨어든 대통령의 모습이다. 촛불과 합창의 옹벽 안에 갇혀서 홀로 침묵에 싸여 있는 저 건너의 어두운 청와대는 그 밤들의 복마전이다.
그러나 일몰의 풍경 앞에서 행복의 충격을 받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그 안에서 밤이 아니라 다가오는 새벽을 본다. 구동독의 사회주의 작가였던 크리스타 볼프는 이렇게 말했다: “일몰도 새벽이다. 일몰은 빛들의 사라짐이 아니라 낮 동안 사물들 안에 갇혀 있던 빛들이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그래서 일몰은 새벽처럼 찬란하게 빛난다.” 광화문 밤 광장의 촛불들도 다르지 않다. 그 소박하고도 뜨거운 빛들은 점화된 초의 심지가 밝히는 빛들이 아니다. 그건 촛불을 든 저마다의 몸 안에 숨겨져 있다가 세상으로 돌아오는 빛들이다. 이 빛들의 풍경이 광화문의 밤이고 그 풍경은 행복으로 충격한다.
행복은 늘 순간으로 끝나곤 한다. 하지만 어떤 행복은 오래 지속되어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광화문의 촛불은 순간의 도취와 행복을 넘어서 부당한 모든 권력들을 적극적으로 미워하고 응징하는 정치적 인식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청와대의 복마전만이 아니라 사회와 일상 속 나아가 분노하고 있는 우리들 자신의 마음속까지도 스며 있을 어두운 세력의 그림자들을 발본하는 빛으로 뿌리내려야 한다. 그 빛이 될 때만 광화문의 촛불은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오래된 악들의 주술을 끊어내는 정치적 새벽의 풍경으로 우리를 오래 행복하게 충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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