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 안에서 외치던 남자는 곧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사람들이 비켜 간 한 구석 자리에 등을 묻고 침묵 속에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는 잠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침묵 속에서 더 크게 외치고 있을 것이다.
김진영철학아카데미 대표
정규직이 아닌 사람은 밤에 강의한다. 늦은 강의를 마치고 술이라도 한잔하면 막차를 타기 십상이다. 사슬처럼 이어진 하루와 또 하루의 경계를 건너가는 마지막 열차 안 풍경은 세상의 얼굴을 닮았다. 지치고 외롭고 무거워 보인다. 그런데 피곤과 무관심이 가득한 그 열차 안에서 때로 예기치 않은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제도 막차 안에서 작은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얼굴이 마르고, 옷이 허름하고, 가득 술에 취한 한 중년의 남자가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취기에 섞인 횡설수설이어서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는 그 남자의 외침은 그러나 아무런 소란도 일으키지 못했다. 졸던 사람도, 휴대폰을 보던 사람도,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도 잠깐 멈추었다가 곧 하던 일로 돌아갔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열차는 밤 속을 달리며 어두운 내일의 경계를 건너가고….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서 소란스러운 일들이 생길 때마다 등장해서 큰 목소리로 꾸중하고 가르치는 쓴 목소리들이 있다. 그 목소리들은 당당하게 일갈한다. 대통령도 일갈하고 국회의원도 일갈하고 신문과 방송도 일갈하고 교수도 성직자도 소설가도 일갈한다. 세상을 걱정하면서 이래서는 안 된다고, 이래야만 한다고, 세상을 꾸짖는다. 그렇게 세상은 또 잠깐 사건의 시끄러움과 일갈하는 목소리의 시끄러움으로 한동안 용광로처럼 들끓다가 굳어진 철물처럼 다시 완고한 침묵 속으로 되돌아간다. 그런데 이 큰 목소리들은 왜 그렇게 마음껏 커도 괜찮은 걸까. 그 일갈하는 목소리의 권위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물론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일갈의 권위는 권력으로부터 오기도 하고 돈으로부터 오기도 한다. 높은 지성으로부터, 인정받은 명예로부터, 베스트셀러의 판매부수로부터 오기도 한다. 그때그때 사회적으로 합의된 가치와 평가들이 그들에게 마음껏 소리쳐도 되는 권위를 수여하고 그 권위에게 정당성을 부여해준다. 그런데 이 권위의 정당성은 정말 정당한 걸까. 오래전 조세희의 수학교사는 물었다. 두 아이가 똑같이 굴뚝 청소를 하고 나왔는데 한 아이의 얼굴은 검고 한 아이의 얼굴은 희다면 이것은 가능한가라고. <뫼비우스의 띠>는 물론 그것이 왜 불가능한가를 서사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아도르노는 똑같은 질문 앞에서 답을 달리했다. 그 논리적 불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면서 그 가능성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이 온통 검은 잉크로 가득한 수조일 때 그 안에서 살면서 홀로 깨끗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그 안에서 깨끗하다면 그건 그가 남다른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썩은 사과에서 아직 안 썩은 쪽만을 잘 골라서 먹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이 부패하는 사과라면 그 안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썩은 쪽에서 사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안 썩은 쪽(아직 안 썩은 쪽)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사는 곳이 다르면 당연히 먹는 것도 달라진다. 하지만 사는 게 다른 그들의 차이는 다만 먹고사는 과육의 질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목소리의 차이도 있다. 싱싱한 과육을 먹는 이들의 목소리가 건강하고 기름지고 크다면, 부실한 과육을 먹는 이들의 목소리는 거칠고 불편하고 힘이 없고 작다. 그런데 그들의 목소리가 정말 작고 힘이 없는 목소리일까. 그 목소리들도, 아니 그 목소리들이야말로, 세상을 향해서 외치는 큰 목소리가 아닐까. 분명 그럴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다. 아무도 귀기울여 들어주지 않을 때 아무리 큰 목소리도 가장 힘없고 낮은 목소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진공 속에서는 아무리 큰 굉음도 안 들리는 침묵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막차 안에서 외치던 남자는 곧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사람들이 비켜 간 한 구석 자리에 등을 묻고 침묵 속에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는 잠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침묵 속에서 더 크게 외치고 있을 것이다. 침묵이야말로 가장 큰 외침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그 침묵의 외침은 누구에게 향하고 누가 들어야 하는 목소리일까. 마지막 열차 안에서 홀로 쟁쟁한 건 어둠 속을 질주하는 바퀴 소리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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