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이순정 마리안나. 관정동 성당
손 입니다.
못을 힘껏 쥐고
망치로 내리칠 손입니다.
그 밑에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힘없이 내맡긴
예수님 손입니다
거기에 두 손 모으고
자식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어머니 손입니다.
내 손이 예수님 손에
못 박는 손은 아닌지,
다른 사람은 아랑곳 없이
내 자식, 내 가정만 위해
기도하는
이기적인 손은 아닌지...
+ 요한 복음 12,20-33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축제 때에 예배를 드리러 올라온 이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도 몇 명 있었다. 그들은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하고 청하였다. 필립보가 안드레아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아와 필립보가 예수님께 가서 말씀드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할까요? 그러나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그러자 하늘에서 "나는 이미 그것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 서 있다가 이 소리를 들은 군중은 천둥이 울렸다고 하였다. 그러나 "천사가 저분에게 말하였다.' 하는 이들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 소리는 내가 아니라 너희를 위하여 내린 것이다. 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이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당신께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실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말씀의 향기>
새로운 가치 기준 -권순택 안드레아 대전가톨릭대학교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래도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가치 기준을 제시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기준은 신앙인이 아니라면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참다운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삶의 근거는 하느님이시며 삶의 시작점과 종착점도 하느님이심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 없이는 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없는 무상한 존재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밀알에 비유하십니다. 밀알이 열매를 맺으면서 먼저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합니다. 그것은 생명을 위해 뿌리 내림을 뜻합니다. 예수님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생명을 낳기 위해 뿌리 내림을 뜻합니다. 예수님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은 목숨을 바치기까지 사람을 섬기는 길이었습니다. 섬기기 위해 먼저 죽고 묻히십니다. 그러나 생명이신 예수님께서는 승리와 영광을 거두십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도 역시 그분이 가신 것과 같은 길을 가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기 위하여 시간과 노력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아버지께서는 아낌없이 보상해 주시고 영광을 안겨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바치면서 살아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도 "마음이 산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백성에게 죽음을 안겨주는 권력자들에게 맞서다가 죽음의 위험에 처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편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당신 길을 가리고 마음을 잡고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의 길을 끝까지 가십니다.
세상 만물도 한 겨울의 죽음에서 깨어 생명을 움 틔우는 이 계절에, 온 인류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버리시고 한 알의 밀알이 되신 예수님의 선택을 깊이 묵상해보고 우리의 삶을 진지하게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희생을 통해서 죽음을 이기셨던 예수님의 결단을 본받아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우리의 생을 하느님 중심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기뻐하고 나의 뜻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천하려 노력할 때 밀알 하나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하느님께 한 걸은 더 나아가는 신앙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영광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용기와 힘을 내십시오.
<임기선 신부와 함께하는 소공동체(7)>
복음(말씀) 살아가기
마리아 : 신부님, 요즈음 봄기운이 완연한 것 같아요. 소공동체 반원들과 가까운 교외로 놀러 가고 싶어요.
신부님 : 봄바람이 마리아씨를 불러내고 있나봐요. 봄나들이도 좋죠. 소공동체 모임 끝나고 다 같이 가까운 교외로 나가서 봄을 느끼고 오는 것도 좋지요.
마리아 : 그런데 지난번에 다른 본당의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소공동체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곳에는 '함께하는 여정'으로 복음 나누기를 하더라고요. 복음나누기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지만 좀 생소했어요.
신부님 : 좋은 체험을 하셨습니다. 복음나누기 양식을 보면 우선 우리나라에 널리 퍼진 말씀나누기 7단계가 있고 그 외에도 함께하는 여정, 보고-듣고-살아가기,공동응답 등 여러 가지가 있지요.
마리아 : 그러면 어떤 양식이 가장 좋은가요? 신부님.
신부님 : 여러 복음나누기 방법들은 각각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양식이 외국에서 만들어진 복음나누기 양식이라서 본당의 상황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우리의 정서에 맞는 복음나누기 양식으로 만들 것인가?하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복음나누기 시간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더 잘 듣고, 주님을 더 깊이 만나고, 더 복음체험을 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지요.
마리아 : 그래서 대전교구 복음나누기라고 할 수 있는 "복음 살아가기"가 나온 것인가요?
신부님 : 그렇습니다.
마리아 : 그런데 저희 본다에서 소공동체 교육을 받기 전에는 '말씀나누기 7단계'를 했었거던요. 그래서 아직도 그 방식에 익숙해서인지 선택한 성경구절을 세 번씩 반복하고 복음 나눔을 하시는 분도 계세요.
신부님 : 선택한 구절을 세 번씩 외치는 것은 묵상 혹은 관상기도로써 좋은 방법이지만 특별히 우리 충청도 양반들은 이것을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복음 살아가기"에서는 굳이 거북한 것을 하는 것보다 이 부분을 생략하고 대신 다른 묵상 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마리아 : 그리고 다른 특징은 복음 나눔 질문이 여러 가지 제시되어 복음 나눔을 어려워하시던 분들이 쉽데 나눔을 할 수 있어 좋아요. 신부님.
신부님 : 그렇습니다. 소공동체의 4가지 요소 중에 기초가 되는 것이 복음나누기라면 복음나누기의 꽃이 '복음 나눔'이지요 이 나눔은 살아계신 주님과 더 깊이 주님과의 친교를 이루도록 이끌어 줄 뿐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 간에 신뢰심을 조성하면서 깊은 친교를 이루게 합니다.
마리아: 대전교구 복음나누기 '복음 살아가기'양식은 신부님께서 만드셨나요?
신부님 : 예, 우선 제가 시안을 만들어서 소공동체를 연구하신 교수신부들과 현장에서 열심히 소공동체 사목을 하셨던 신부님들의 자문을 받아 최종 양식을 확정하였습니다.
마리아 : 아, 그래서 복음 살아가기라는 새로운 복음나누기 양식이 만들어졌군요.
신부님 : 그렇습니다. 아무튼 소공동체 모임이 기다려질 정도로 '복음 살아가기'가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환경과 생명>
우여가 뭐여?
우여가 뭔지 아세요? 들어본 적이 별로 없으실겁니다. 그러면, 우여회는 드셔보셨나요/ 회라고 하닌까 아셨겠지만, 우여는 물고기입니다. 일단 우여곡절이 많은 우여 얘기는 뒤로 돌리고 먼저 호박김치 얘기 좀 하겠습니다.
호박김치도 생소하실 겁니다. 가을철에 늙은 호박을 여퉈뒀다가 김장할 때 배추김치에 같이 넣어서 만드는 게 호박김치입니다. 호박김치는 얼큰하게 김치찌게를 해 먹어야 제격이죠. 하지만 호박김치는 아무데서나 먹을 수는 없습니다. 북쪽으로는 황해도에서나 먹고 남쪽은 충남 해안가 지방에서만 먹을 수 있습니다. 특히 서천 지역에서 호박김치를 담가먹죠.
다시 우여, 우여를 먹어본 사람이 적은 것은 우여는 양식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깊은 바다에 살다가 산란기에만 강으로 거슬러 올라와서 알을 낳고 다시 바다로 돌아갑니다. 특히나 서해에 살다가 서천이나 부여까지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지역에 사는 물고기들이 그렇듯이 육질이 탱탱하고 맛이 담백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이제는 구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다가 막혔기 때문입니다.
금강은 서천에 이르러서 장항을 거쳐 바다로 들어갑니다.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흐르기 마련이죠, 하지만 서천에는 금강하구언이 있습니다. 방조제가 강물과 바다 사이를 막았습니다. 방조제가 있어서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지 못합니다. 강과 바다의 생태계가 단절이 됩니다.
민물을 따라서 금강으로 들어가려던 우여는 방조제에 이르러서는 망연자실합니다. 방조제에 막혀서 산란도 못하고 바다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우여를 볼 수도 없고 우여회를 먹지도 못합니다. 우여회로 팔리는 것은 금강의 우여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온 우여이기 십상입니다. 서천에서 호박김치는 먹을 수 있지만 더 이상 우여는 볼 수가 없습니다. 20여 년 전에 만들어진 방조제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서천군에서 방조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서 방조제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문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 문으로 우여도 드나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문으로 바다와 강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천군의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 우여를 볼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대전 가톨릭 환경회의 (042-626-3211)-
지리한 기다림인 줄 알았더니
희망이었네
부활
그것은 믿음의 순리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성주간과 성주간 전례
성주간은 특별히 예수님 수난을 기념하는 주간으로,예수 부활 대축일 전 한 주간을 말합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성토요일까지 지내는 성주간은 예수님 수난과 십자가의 희생을 기념하고 묵상하는 시기로 1년 중 가장 거룩하게 지내는 주간입니다.
성주간의 유래와 명칭
기록에 따르면 3세기쯤 부활 축일 전 금요일부터 부활 축일 아침까지 3일 동안을 성주간으로 지냈습니다. 지금과 같이 성주간을 일주일 동안 지내게 된 것은 5~6세기에 와서인데 이런 관습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중세기에는 성주간을 '수난 주간'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또 파스카 주간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예수님 수난이 부활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성주간 전례
주님 수난 성지 주일 : 예수님께서 수난하시기 전에 백성들의 환호 속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이날 미사에서는 나뭇 가지(성지)를 들고 입당하는 예식을 통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합니다. 또 수난 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합니다. 이날 사용한 성지는 집으론 가져가서 십자고상에 꽂아둡니다. 십자가와 성지를 볼 때마다 예수님을 환호하면서 배반하는 우리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고 끝까지 주님께 충실할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이 성지는 이듬해 재의 수요일이 되기 전에 성당으로 가져오면, 태워 재로 만든 후 재의 수요일에 사용합니다.
성주간 월요일~수요일 : 이 3일 동안은 예수님의 죽음을 예고하고 제자들의 배반과 부인을 예언하는 내용의 복음 말씀들을 통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립니다.
성목요일 : 성목요일은 예수님께서 수난 전날 저녁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며 성체성사를 세우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성품성사를 세우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전에는 각 교구마다 사제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교구장 주교 주례로 성유 출성 미사를 봉헌합니다. 성유 축성 미사에서는 축성 성유와 병자 성유, 예비신자 성유를 축성합니다. 그리고 이 미사 때에는 또한 사제들이 사제품을 받을 때 한 서약을 갱신합니다.
주님 만찬 성목요일 : 수난 전날 저녁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드시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을 기념해 주님 만찬 미사를 거행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을 기념해 발 씻김 예식을 옮기고 제대포를 모두 벗겨냅니다. 마사 후 신자들은 수난감실에서 성체조배를 하면서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합니다.
주님 수난 성금요일 : 이날은 미사를 드리지 않고 주님 수난 예식을 거행합니다. 주님 수난 예식은 주님 수난에 관련되는 독서와 복음을 듣고 묵상하는 말씀 전례와 십자가에 경배하는 십자가 경배, 영성체 예식으로 이어집니다. 이 날은 금육과 금식으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합니다.
성토요일 : 성토요일은 주님이 무덤에 묻히신 것을 생각하며 아울러 주님의 부활을 기다리는 날입니다. 성토요일로써 성주간은 끝이 납니다. 그러나 성토요일 밤이 되면 성대한 부활 성야 예식을 통해 주님께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신 파스카 신비를 경축합니다.
-평화신문 914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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