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0년 주보

예수,마리아,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 2010년 12월 26일(가해)

모든 2 2021. 9. 18. 09:02

하느님, 저희가 성가정의 성덕과 사랑을 본받게 하소서.

-오늘 '본기도' 중에서-

 

 

+ 마태오 복음 2,13-15,19-23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박사들이 돌아간 뒤,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헤로데가 죽자,꿈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를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다가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떠나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말씀의 향기>

 

예수,마리아,요셉의 성가정 축일 - 김석훈 미카엘 대건학교 교장

 

  가족이란 그 자체로 가족 구성원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이요, 가장 강력한 공감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주위에서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를 어렵지 않게 듣게 됩니다. 학교에서도 결손 가정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를 지도하기가 어렵다는 하소연을 하면서 교사들이 그 역할을 대신해 주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가족이란 끈이 무엇 때문에 위태롭게 되었을까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우리가 원하는 가정의 모델은 무엇일까요?

 

  다양한 원인이 있고, 모든 원인을 하나하나 분석해서 해결방안을 찾아나가야 하겠지만, 성가정 축일을 맞이하여 우선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에 비추어 우리의 가정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어느 가정이든 화목한 가정을 보면 그 가족 구성원 중에 누룩과 같은 역할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10여 년 전에 뉴욕을 방문했을 때 한 가정의 초대를 받아 며칠 신세를 진 적이 있습니다. 식사 때마다 안젤라 자매님은 식탁의 빈자리를 유난히 챙기시고 깨끗하게 치우셨습니다 매번 그러시는 것이 궁금해서 "오늘 다른 손님이 계신가 보지요?"라고 물었을 때, 자매님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 자리는 언제나 예수님 자리예요."라고 대답하시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었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을 믿고 함께하는 삶에 대해 수없이 강론을 해오면서도 구체적인 삶으로 녹아있지 못한 저에게 자매님의 모습은 놀랍고도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둘이나 혹은 셋이 모인 곳에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임마누엘 예수님의 말씀을  단순히 지식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저에게 잔잔한 감동과 함께 성가정의 모델을 보는 것 같아 거기에 머무는 동안 내내 기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 매일매일 아침저녁으로 가족이 함께 기도하던 기억이 가슴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마무리하도록 이끄셨던 부모님의 신앙을 안젤라 자매님을 통해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지루하고 귀찮게 여겨지기도 하였지만, 성장해가면서 그 기도가 '우리 가족을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으로 이어주는 끈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가정은 예수님과 성모님과 요셉 성인이 가정을 모델로 합니다. 성가정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은 가족 구성원을 완정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 성가정 축일에 우리 가정의 중심에는 누가 혹은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시니어 칼럼>

 

노년들의 주거시설 2  - 한동성 갈리스토 . 노인 사목부 전담 신부

 

  1999년 UN이 선포한 '세계 노인의 해'부터 노인 복지 정책의 모토는 "모든 세대가 함께 하는 사회"의 건설이었다. 이후 2002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UN세계고령화총회가 개최되고 '마드리드 국제 고령화 대응 행동 계획'을 채택했다. 이 중 주거 환경에 대한 모토인 '노년들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주택과 생활환경'을 제공했는데 그 세 가지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 개인적인 선택과 경제적 여건에 따라 자기집에서의 노화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주거형태는 '자기가 지금까지 살던 장소"이다. 그러나 특별히 부양할 가족이나 친지가 없거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봉양이 어려울 때 노인주거 복지 시설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에는 양로시설, 노인 공동생활가정, 노인복지주택이 있다.

 

  ● 양로시설 : 노년들을 입소시켜 무료 또는 저렴한 요금으로 일상 생활에 필요한 편의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 대전교구 내 성심원, 쎈뽈원, 글라라의 집.

 

  ● 노인 공동생활가정 : 노년들에게 가정과 같은 주거 여건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편의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

 

  ● 노인복지주택 : 노년들에게 주거 시설을 임대 또는 분양하여 주거의 편의,생활지도.상당.안전관리 등의 편의를 제공하는 시설, 실버타운이 좋은 예.

 

  둘째 " 장애 노인을 위한 주거와 환경의 개선,이는 건강한 노년들 뿐 아니라 질병과 장애를 지닌 노년들을 위한 시설의 구비를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실행되고 있는 노년들을 위한 노인 의료 복지 시설로는 노인요양시설,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 노인(요양) 전문병원이 있다.

 

  ● 노인요양시설 : 노인성 질환 등으로 심신에 상당한 장애가 발생하여 도움을 필요로 하는 노년들을 입소시켜 급식,요양과 그밖에 일상생활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는 시설, 대전교구 내 서천 어메니티복지마을 노인요양시설, 전의 요셉의 집, 성요셉치매센터.

 

  ●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 " 노인성 질환으로 심신에 상당한 장애가 발생한 노년들에게 가정과 같은 주거 여건과 급식,요양,일상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는 시설, 교구 내 섭리마을.

 

  ● 노인요양전문병원 : 교구 내 서천 어메니티 복지마을에 있는 노인요양병원.

 

  셋째 : 노인을 위한 접근 가능한 교통수단의 개선, 사회는 이제 정보와 통신의 사회로 변화 되었다. 사회비평가 제러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소유의 종말」(2006)에서 산업시대가 소유의 시대였다면 이제 소유와 함께 시작되었던 자본주의의 여정은 끝났다고 주장하면서, 다가오는 세대는 접촉을 통한 모든 세대의 통합과 일치가 이루어지는 세대가 될 것이라 예견하고 있다. 이제 평균 연령의 증가로 인하여 노년들의 사회참여와 봉사의 기회가 증대되고 있다. 또한 이들의 사회 기여도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의 주거 생활을 방관하고 있을 상황은 아닌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노년이 되고 불의의 사고로 노년기가 오기 전에 장애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 따라서 노년들을 위한 주거, 의료 복기 시설의 확충과 더불어 생활의 편리성과 접근의 용이성을 위하여 무장에 주택(현관, 화장실. 방의 턱을 없애 노년들이 이동하기 쉽게 개조한 주택)이나 유니버설 디자인 주거 환경(가구나 집의 구조를 노인이나 장애인. 어린이들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을 만들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함께 만드는 이야기 마당>

 

주님의 답 - 서효원 파비올라. 천안 불당동 성당

 

  이태석 신부님이 생애를 다룬 영화 '울지마 톤즈'를 본 후, 마음 속으로 되뇌는 말이 있습니다.

  착해지자, 착하게 살자.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현실적으로, 착하게 사는 사람과 안 착하게 사는 사람의 삶이 뭐가 다를까. 그만한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답을 주시기 전까지.

 

  가장 춥다던 날에 일을 마친 뒤,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장을 보고 맨손으로 그 짐을 들고 걸어오는데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약국에 들러 약을 사 오라고,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고 길을 돌아갔습니다. 약구 옆에 있는 떡집의 찹쌀떡이 맛있어 보여 눈으로만 '찜'을 하고 발걸음을 옮겼는데 초등학교 앞에 떨어져 있는 휴대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전원을 켜고 보니 화면에 시험날짜가 나와있는 걸로 봐서는 학생 것 같아서, 불 켜져 있는 교무실에 맡기려니까 문이 잠겨 있습니다. 집 전화번화가 저장돼 있나 보려고 하니, 모든 것이 비밀번호로 잠겨 있어서 먼저 연락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걸 어디다 두고 갈까 고민을 하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발신번호는 '엄마'

 

  전화를 주웠다고 하니, 저의 위치와 사는 곳을 묻습니다. 당연히 찾으러 오시겠거니 했는데 대뜸 00 학원을 아냐고 묻기에 모른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00 떡집을 아냐고 합니다. 안다고 했더니 거기로 맡겨달라 합니다. 적지않게 당황했지만 웃으면서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 추운 저녁, 게다가 짐까지 들고 왔던 길을 거슬러 가야 하나,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잃어버린 사람이 찾으러 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냥 집에 가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아, 착하게 살기로 했지.'한숨 한 번 쉬고 떡집으로 향했습니다.

 

  떡집에 들어서는데 주인아저씨가 통화를 하고 계셨습니다. 아까 제가 통화한 아주머니인 듯했습니다. 눈으로 인사하고 휴대폰을 두고 조용히 나오는데 아저씨의 마지막 한 마디가 귀에 확 들어왔습니다.

 

  "떡 두 팩 챙겨주라고요?"

  역시! 착하게 살라고 찜해놨던 떡을 주신건 가.

제가 고민한 작은 생각에도 하느님께서 답을 주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씽끗 웃었습니다.

 

 

 

참 소중한 우리!

 

그 긴 기다림과 그리움의 시간

그렇게

눈으로 피어나는

꽃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지요하와 함께 보는 믿음살이 풍경>

 

색다른 봉사와 기원 속에서

 

 어느덧 또 한 해가 이울어 가는 때입니다. 방 안에 앉아서도 서산마루로 뉘엿뉘엿 지는 해를 망연히 바라보는 심정입니다. 내 개인적으로도 유난히 바쁘고 갖가지 사연이 많았던 해, 국가적으로도 그야말로 다사다난 했던 2010년의 끄트머리에서 새삼스럽게 세월 덧없음을 반추하게 됩니다.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면 내가 처음 경험했던 특별한 일들도 몇 가지 있는 것 같습니다. 오후 인생의 점점 길어지는 그늘 속에서도 처음 경험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은 다행일 것도 같은데, 그중에는 슬픈 일들도 있었습니다. 4대강 공사현장들을 직접 가서 처참하게 파괴되는 강을 보며 눈물지은 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노변에서 거행되는 '생명평화미사'에 여러 번 참례한 일도 내게는 2010년의 특별한 일이지 싶습니다. 3월 26일 국립묘지 대전 현충원 현충지에서 거행된 교구장 주교님께서 주례하신 '안중근 토마스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미사'에서 추모시를 헌송한 일도 명료하게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

 

  내 나름의 창의적인 간병(노고와 정성)으로 노친의 말기암을 퇴치한 후 간병 내용과 과정 등을 기록하여 인터넷 매체에도 올리고 <대전 주보>에도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것은 무언가를 예상하고 각오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열 손가락으로도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문의를 해왔습니다. 전화와 메일로는 부족한지 먼 길을 직접 찾아오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또 내가 먼저 찾아가서 희망을 갖고 시행해 보기를 권유하며 도움을 드리는 경우들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내가 노친께 시행했던 방법과 정보마을 자세히 설명 드렸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고, 하느님께 의지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치는 내 묵주기도의 '지향'도 많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막다른 길목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또는 지푸라기다로 집는 심정으로 내게 전화로 문의를 하시거나 직접 찾아오시는 분들께 내 경험과 정보를 소개하는 일은 시간으로나 노고로나 색다른 봉사이기도 할 터였습니다. 그 색다른 봉사와 병행하여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효과와 보람을 청원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많은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올 한 해는 그런 색다른 봉사와 기원도 많았음을 상기하면서 올해의 남은 시간, 그분들을 위해 더욱 뜨겁게 기도하고자 합니다.

 

-지요하(소설가. 태안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