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1년 주보

연중 제21주일 2021년 8월 22일(나해)

모든 2 2021. 8. 22. 22:45

 

당진성당 삼봉공소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만로 1701-20(석문면 삼봉리 산 30-17)

 

+ 요한복음 6,60-69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말씀의 향기>

 

위기의 순간을 살아내는 신앙  - 김영민 베드로 세종 성프란치코 보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요한 6,51)으로 소개하시며,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못마땅해하며 투덜거립니다. 그리곤 결국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나게 됩니다. 이 모습을 목격한 예수님께서는 당신 가까이에 머물던 열두 제자에게 질문을 건네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 6,67)

 

  예수님의 이 질문은 오늘날 신앙의 위기를 겪는 모든 이를 향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물음은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과 다르게 낯선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 앞에서 어떠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를 성찰하게 합니다. 예수님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분의 말씀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한에서, 나에게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되는 한에서만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이러한 태도는 마치 강에 한쪽 발만 담그고, 언제든 발을 뺄 수 있도록 준비하는 사람의 모습과 같습니다.

 

  하지만 여차하면 도망치려는 비겁한 행위와 신앙을 동일시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미지근한 태도는 예수님의 주변만을 맴돌며 복음의 핵심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그것이 전해주는 위로와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신앙은 우리에게 안락한 삶과 육적인 욕망의 실현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시는 예수님께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신앙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신중한 선택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 당신의 전부를 내어주시면서 우리와 함께 영원히 당신의 바라시는 것처럼, 우리 역시 그분을 향해 응답을 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연인이 맺는 유일한 관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사랑의 관계에 머물기를 바라십니다. 상식적인 한에서만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없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은 피하고, 원할 때만 찾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상식을 뛰어넘는 신비입니다.

 

  베드로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예수님의 말씀에 혼란함을 느끼고, 떠나가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흔들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신뢰했습니다. 자신을 향한 그분의 사랑을 믿기에,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사랑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신앙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때때로 찾아오는 어려움과 시련의 순간에 이러한 베드로의 충실한 믿음과 용기를 우리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68-69)

 

 

 

<사회와 교회를 잇는 길잡이>

 

아직 희망은 있다! 배우면 달라져요.

- "생명 아카데미"에 관심을

 

 

  최근 두 번에 걸쳐 본당의 초등학교 5-6학년 아이들과 중등부 아이들의 '성교육'을 진행하였다. 코로나19지만 지금도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만큼, 더욱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물론 부모들에게도 사전교육을 진행했다.

 

  결과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일반적인 성교육과 다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사적으로 은밀하게 배운 성에 대한 이야기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을 말하기 전에 생명을 말하며, 성과 몸의 사랑을 말하기 전에 인간의 소중함과 책임을 말하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사춘기의 아이들이 바라보는 성은 몸에 집중되어 단순히 쾌락(즐거움)과 감정(로맨스)으로 알고 있을 때다. 그러나 아이들도 조금은 다르게 "생명, 성, 사랑"에 대해 함께 접근해 가면 달라진다. 아이들 역시 우리 몸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생명과 인격이라는 관점에서 알아가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사춘기 몸과, 성-사랑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렇게 응답했다. "따분한고 지루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금방 지났어요." 불과 몇 시간이 되지 않았음에도 말하지 않고, 대답도 않던 녀석들이 자연스레 선생님과 신부님에게 쉬는 시간에도 말을 건네고, 놀이를 하자고 제안한다.

 

  흔히 사춘기 아이들은 말하지 않는다고, 대화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더욱이 그것을 병으로 '중2병'이라 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춘기는 병이 아니다. 사춘기는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모두가 겪는다.

 

  아이들은 너무나 분명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말할 기회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도 없었다. 사춘기 시절, 얼마나 남모르게 자신의 몸에 변화가 있어 궁금한 것도 많았을 텐데, 그나마 또래 친구나 손위 형제자매들에게 곁다리로 들은 이야기들뿐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된다는 어른들의 대답뿐이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궁금해하고 고민하던 이야기를 잘 알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유일하고 특별할 만큼 소중하고 타인도 똑같이 소중하며, 나 자신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친구나 다른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아 정말 자연스레(?) '생명, 성, 사랑'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하겠다. 아직 희망은 있다. <청소년국, 천안하품센터에서 진행하는 "생명아카데미"를 적극 활용하자.>

 

- 이영일 야고보 신부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대전교구 담당-

 

 

교회음악 이야기 ③

 

몬테베르디 <성모마리아를 위한 저녁기도>

 

  이탈리아의 작고가 몬테베르디(Claudio Giovanni Antonio Monteverdi, 1567-1643)는 음악사에 있어 변환기의 큰 족적을 남긴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기가 맞물려 있는 전환기,작곡양식을 보면 구양식이라 불리는 제1작법에서 신양식인 제2작법으로 넘어가는 시기이다. 조금 풀어보면 몬테베르디로부터 촉발된 제2작법은 음악 자체를 중요시 여겼던 제1작법과 달리, 음악의 규칙보다는 가사, 가사에 따른 감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수사학적 장치로써 음악적 규칙을 허무는 것'은 당에 혁신적인 일이었다.

 

  몬테베르디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불협화음 등을 자유롭게 사용함으로써 기존의 규칙을 넘어섰을 분 아니라 여러 양식, 장르를 섞는 데도 탁월함을 보였다. 이러한 특색이 오롯이 드러난 작품이 <성모 마리아를 위한 저녁기도>(Vespro della Beata Vergine, 1610)이다. 1613년까지 만토바 궁정의 비올라 연주자, 작곡가, 음악감독으로 일했던 몬테베르디는 이후에 성 마르코 성당의 음악감독으로 일하며 1632년에 사제가 되었다. 이 작품은 만토바 궁정에서 일했던 1610년경 작곡되었지만 베니스에서 출판하여 교황 바오로 5세에게 헌정 되었다.

 

  <저녁기도>는 우리가 성무일도로 익히 알고 있는 '시간전례' 중에 바치는 저녁기도를 의미한다. 총 12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관점에 따라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마지막 곡 마니피캇을 각각 독립된 곡으로 여겨 14곡으로 보기도 한다. 이 곡들 중 저녁기도 전례에 꼭 필요한 음악은 8개로 응답송, 5개의 시편(109,112,121,126,147편), 찬미가(Ave maris stella), 마니피캇(Magnificat)이 있고 나머지 다섯 곡은 4개의 모테트와 1곡의 소나타로 구성된다. 이중 5개의 시편은 모두 성모마리아를 위한 모든 축일의 저녁기도에 불리는 곡들이다.

 

  이 곡은 음악양식, 악기 사용,성악파트 운용,다중합창 등의 측면에서 여러 기법이 총망라된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응집력을 지닌 거대한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이 통일성의 열쇠는 그레고리안 시편 창에 있는데 '도입부, 시편, 마니피캇'의 시작을 시편 창으로 알리고, 이 음을 구심점으로 곡이 전개된다. 그러다보니 합창은 종종 팔쏘부르동(falsovordone)기법으로 진행되지만 이를 지지해주는 반주는 리듬, 장식음, 악기 편성을 다양하게 변화시킴으로써 혁신적인 화려함을 선사한다.

 

  여러 악기를 자유자재로 편성하는 것은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넘어가는 당신의 즉흥연주 관습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재해석한 것이며, 단선율의 노래와 변화무쌍한 악기가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흥미진진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와 같은 이채로움은 성악 파트에서도 드러나는데 마치 악기를 오케스트레이션하듯 독창부터 10성부에 이르는 다성부의 합창이 쉴 새 없이 변화하며 나타난다. 그러나 그레고리안 성가의 시편창과 이후 전개되는 음악의 대조와 변화는 자연스러운 물결처럼 이질감 없이 약 90분간 조화로이 이어진다.

-오주현 헬레나 음악학자-

 


 * 교구 내 공소

당진성당 삼봉공소



  삼봉공소는 왜목마을과 장고항으로 가는 길목인 석문반도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다. 공소는 1977년 2월 백 막시마의 집에서 15명의 교우가 모여 첫 미사를 봉헌하면서 비롯되었다. 현재의 공소건물(시멘트벽돌조, 건축면적 237,1㎡)은 초대 심만섭 요셉 공소회장 재임시기인 1979년 6월에 착공하여 12월 1일 황민성 주교 집전으로 봉헌되었다. 공소 교우들은 대지 매입과 신축 기금을 마련하고 노력봉사를 아끼지 않았다. 당시 서울대교구 후임동성당 신자들이 공사비의 50%을 후원하여 큰 힘이 되었다. 현재 134세대에 50여 명이 정기적인 공소 전례에 참석하고 있다.

 

<해외 유학 사제들의 편지 ⑤>

 

야훼이레

 

  로마에서 윤리신학을 전공하는 이용수 신부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유학 중에 성찰하고 기도할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공동 식사 외에는 하루 대부분을 혼자 보냅니다. 혼자서 제 삶을 돌아보고, 묵상할 시간도 자연스레 늘어납니다. 덕분에 하느님과의 사이가 전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유학 중 "야훼이레"(창세 22,14)로 요약되는 첫 학기, 첫 시험 때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첫 시험 전에 두려웠습니다. 어설픈 이태리어 실력 때문에, 시험 치루는 것 자체도 어려워 보였습니다. 시험 도중 교수님이 "이럴 거면 공부 그만둬."라고 호통칠 것만 같은 상상이 시시때때로 찾아왔습니다. 시험장에 들어가는 것조차 공포였습니다. 첫 시험 당일 학교 앞까지 가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들어갔습니다. 교수 신부님과 이태리어 실력으로 답변을 제대로 못했을 텐데도, 신부님께서는 오히려 저를 위로해 주시며 교과 시험을 통과시켜 주셨습니다.

 

  한시름 놓았지만, 아직 더 큰 산, 과제에 대한 질의응답이 남았습니다. 사실 교과 시험보다 이 과제시험이 더 두려웠습니다. 제대로 이해 못하고 쓴 과제라 교수님 질문에 답변하는 것은 시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행운인지, 시험장에 제 과제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연구실에 놓고 온 것 같다 하셔서 그곳으로 함께 이동했습니다. 제 것을 찾았을 때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고, 다음 시험 볼 사람도 있었기에 교수님은 과제시험 없이 그렇게 제 시험을 마치셨습니다.

 

  학교를 나서는데 시험 통과가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시험 전 걱정과 두려움이 컸습니다. 시험이란 실체는 사라졌지만, 격한 감저의 잔향은 아직 남아서 제 정신을 멍하게 붙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모든 것을 마련하시는 야훼 이레 하느님의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의 부족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잘 치룰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다 예비해 놓으신 것만 같았습니다.

 

  그 다음 치룰 다른 시험에도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내 능력껏 준비하고 모든 결과는 ,'야훼 이레'하느님께 맡기기로 다짐했습니다. 이 믿음대로 저는 첫 학기 모든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고, 그 다음 학기부터는 두려움 없이 자신감을 가지고 기쁘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어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야훼 이레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제 마음 속에 변함없이 굳건히 자리 잡았습니다. 이 믿음은 하느님 안에 더욱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이용수 대건안드레아 신부 로마 유학-

 

 

지나던 구름이

전기 줄에

걸렸습니다.

 

쉬었다 가려나 봅니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아프간 탈출..."

 

"하늘서 사람 떨어져"... 화물처럼 포개진 600명. 비행기 매달린 필사의 아프간 탈출

 

  미국 공군이 17일(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이륙한 미 수송기의 바퀴 장치(랜딩기어)부분에서 주검을 발견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공군은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전날 출발해 카타르 공군기지에 착륙한 C-17소송기의 바퀴가 접혀 들어가는 부분에서 주검을 발견해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온라인에서는 카불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미 공군 수송기에 매달리는 사진과 이륙한 군용기에 매달렸던 사람이 추락하는 영상들이 떠돌았다. 미 공군은 관련 언론 보도와 온라인 영상을 거론하며 "주검은 수송기가 카타르 공군기지에 착륙한 뒤 발견됐다."라고 말했다.

 

  공군은 "주변 보안 상황이 급격히 악화됨에 따라 수송기 승무원들이 최대한 빨리 공항을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전날 현지 언론 (톨로뉴스>는 비행 중인 항고기 바퀴에 3명이 매달린 상황에서 2명이 추락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보도했고, 서양 언론들은 공항에서 혼란이 벌어진 와중에 7명이 숨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수많은 아프간 시민들은 16일 탈출을 위해 카불 공항으로 몰려들었고, 이 때문에 공항이 마비됐다가 한밤중에야 정상화됐다.

 

  미 국방부는 카불 공항에 이날까지 4천명 이상의 병력이 주둔한 상황이며 군용기와 일부 민항기의 비행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미 합참 행크 테일러 소장은 지금까지 카불 공항에서 출발한 수송기들은 약 700-800명을 태운 채 이륙하는 상황이며, 시간당 한 대의 항공기 운항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탈레반이 적대적 행위를 하지 않고 있다며 하루에 5천~9천명이 카불을 떠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테일러 소장은 설명했다. 현재 카불 인근 지역에 남아 있는 미국인은 5천~1만명 수준이라고 , <시엔엔>(CNN) 방송이 전했다.

 

  나라를 잃고 난민이 된 가엾은 영혼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글. 사회복음화 분과제공-

 

 

<1분 교리>

 

1. 참된 종교가 되기 위한 필수 요건은 무엇인가요?

참된 종교는 인간 존재의 이유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에 해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살아가는 목적을 제시해 주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며 목적한 바에 이르도록 도움을 주는 종교라야 참된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교육분과 제공(김동규 신부님 예비자 교리서)에서 발췌-

 

 

연중 제 21주일 (나해)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교형자매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들 하셨습니까? 오늘은 연중 21주일입니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서늘해 제법 활동하기 좋은 날씨가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몇 주간 동안 당신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말씀하신 것을 못 마땅히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단적으로 '너희는 왜 그렇게 못마땅하게 생각하느냐? 내 말이 귀에 그렇게도 거슬리느냐?'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그들이 당신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의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처음부터 알고 계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들에게 오늘 당신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세상의 물질과 가치관을 따를 것인지 사람들에게 선택하도록 촉구하신 말씀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못 마땅히 여기며 떠나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같으면 추종자들을 잃지 않기 위해 감언이설로라도 잡으려 했을 터인데, 예수님은 도리어 당신을 따른 이들에게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떠나가겠느냐?' 하시면서 추종자들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까지도 선택의 기회를 주십니다. 이는 우리들에게도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베드로 사도는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말씀을 지니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이심을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라고 모든 신앙인을 대표해서 고백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베드로 사도가 고백했던 말씀하신 예수님을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믿고 받아들이고 사는지 묵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깨달아 산 성인의 일화를 여러분에게 들려 드릴까 합니다. 그분은 다름이 아니라 필립보 네리 성인인데, 이분이 젊었을 때 유명한 대학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이때 한 친구가 찾아와 축하하며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해냈으니 이제는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이 있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 네리 성인은 이제 겨우 대학에 들어왔으니 앞으로 훌륭한 법학박사가 되어야지! 하더랍니다. 그러자 친구는 '그 다음에는 그러면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변화사가 되어야지? 그 다음은? 이름을 떨치면 결혼해서 귀족처럼 살 거야! 그 다음은? 법관으로 로마 법정에서 높은 직위를 얻어 영예롭게 노년기를 맞고 즐길 거야! 그 다음에 원하는 것은? 아마 죽겠지!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그 다음 이라는 반복되는 질문에 네리 성인은 큰 깨달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기껏 열심히 살아봐야 부나 명예나 권력을 얻는 것이 전부일 뿐인데, 마지막에 가서는 이것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자 여태가지 자신 있게 추구하던 모든 것들이 한 낟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세속적인 야망을 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가 하느님이 뜻을 찾고자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기 전에 그의 묘비에 다음과 같이 글을 적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다음은 하느님의 생명 안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는 자는 이것을 잊지 말고 살기를.'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은 필립보 네리 성인의 일생을 바꾸는 계기점이 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떠나가겠느냐? 아니면 남겠느냐?' 이것은 일생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풀어야 할 끝없는 숙제일 뿐만 아니아 매번 확인하고 고백해야 할 응답의 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지니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이심을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