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성당 산성리공소
충청남도 당진시 회천로(정미면 산성리 317-1)
+ 요한복음 6,24-35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 군중은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그들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말씀의 향기>
예수님께서 관계를 맺는 방법, "내가 생명의 빵이다." - 염선율 임마누엘 천안신방동 보좌
타인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심하면 환멸을 느끼는 분도 계십니다. 서로를 필요에 따라 이용하고 소비하는 잘못된 관계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잘못된 방식으로 예수님을 찾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빵을 청하는 군중은, 마치 1 독서에서 먹을 것을 달라 불평하며 노예 생활을 그리워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과 같습니다. 군중은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에 다시 예수님을 찾아 자신을 배불릴 수 있는 빵을 청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빵'으로 내어주시며 그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십니다. 이제 군중은 예수님이라는 표징을 통해, 단순히 받아먹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으로 거듭나, 이 세상과 새로운 관계를 맺도록 초대받습니다. 누군가에게 먹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2 독서에서 말한,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입니다.
모든 사람의 맞이이신 예수님의 삶이 보여주듯, 사람은 본래 사람의 양식으로 자라나, 누군가의 양식이 되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 사랑을 받고, 또 주는 것이 하느님을 닮은 사람의 본모습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三位) 하느님께서는 서로에게 양식이 되는 관계로 일체(一體)이십니다. 이처럼 사람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관계 안에서 태어났기에, 예수님과 같이 누군가에게 먹히는 양식이 될 때,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은 모든 욕구의 해소, '구원'을 체험합니다.
물론 하느님과 온전히 얼굴을 마주하기 전까지 이 세상을 순례하는 동안은, 굶주림과 갈증으로 인해, 자신을 양식으로 주기보다 다른 이들을 양식으로 삼아 배를 불리려는 유혹을 느낍니다. 이미 이 세상은 다른 이들을 희생시켜 재화를 모으는 데 혈안(血眼)입니다. 예수님께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죠. "항상 내주면서 살라는 말씀입니까?" 그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십니다.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 5,40,42) 예수님께서는 양식을 되고 먹혀서 하나가 되십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주는 것이 곧 받는 것입니다.
언뜻 올바른 관계는 양쪽 다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관계는 하느님 안에 바로 서 있는 한 사람으로 인해 건강해집니다. '하느님의 빵'으로 거듭난 여러분 한 사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를 살아갑니다. '나'라는 음식이, 점점 더 예수님과 같은 맛이 나도록, 성체와 주님의 말씀, 그리고 가난한 이들 가운데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맛보고 체험하는 은총을 청합니다. 입에 확 당기거나 자극적이지 않아 많이는 찾지 않더라도, '먹는 사람'을 건강하게 하고 웃음짓게 하는, '생명의 빵'이 되길 기도합니다.
<사회와 교회를 잇는 길잡이>
그래도 나는 채식주의자
나는 1988년도에 신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고기를 구워 먹을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전에는 '고기'라 함은 무릇 명절 때나 아버지 생신 때에 국에나 넣어 먹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한데, 요즈음에는 그 시절부터 익숙해진 고기 먹는 습관이 내 입에 붙어 버려서 채소만으로 꾸려진 밥상은 뭔가 빠진 듯하여 허전하기 이를 데 없어졌다. 최소한 바다 고기라도 한토막 얹어지지 않으면 성의 없는 밥상이라고 여겨진다.
몇 년 전, 교구 생태영성학교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사님께서 우리가 시중에서 날마다 먹고 있는 '고기'를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군 발암물질로 지정하고 있고, 그 고기로 가공하여 우리가 더욱 더 맛나게 먹고 있는 '햄' , '소시지'등은 암의 위험성이 크다고 하여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담배나 석면처럼 대단히 주의를 기울여 취급해야 하는 물질을 우리가 매일 먹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고 있다. 여러분의 스마트폰 검색창에 '세계 보건기구 고기'라 쓰고 확인해 보시라.
이 사실은 알고 난 후 나는 '우리 농'고기를 사서 먹는다. 발암물질로 알려진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은 논에서 나온 볏짚을 먹고 자란 '우리 농' 소와 유기농 사료를 먹은 '우리 농'돼지고기를 먹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가 모든 자동차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보다 더 많다는 통계를 접하게 되었다.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다고 하니, 여러 가지 정황상 나의 식습관은 이제 신학교 시절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고기와의 이별이라..
망설이던 나에게 어느 채식주의자가 한 말이 용기를 주었다. "완전한 채식주의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10% 채식주의는 가능하다. 10%라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홍수로, 가뭄으로 울부짖고 있는 지구의 아픔을 겪으면서 내가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경우라면 채식을 택하려 한다. 그러면 한 50% 채식주의는 될까?
-강승수 요셉 신부 대전가톨릭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본부-
교회와 나 새롭게 알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앙과 삶을 배웁시다!>
6. 교계제도(성직자)와 평신도 ① -하느님 백성의 평등성과 다양성
인간은 본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대로 남자와 여자, 둘이다.(창세 1,27 참조) 이는 인간 자체가 애당초 관계적 존재며 공동체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무얼 하든 어디를 가든 인간이 지닌 이 본원적 관계성을 늘 따라다니고, 그 관계의 상태에 따라 인간은 행복도 불행도 경험한다. 그리고 그것은 교회의 삶에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그러면 교회 안 하느님 백성은 어떻게 서로 행복한 관계를 이뤄낼 수 있을까? 무엇보다 하느님 백성으로서 각자의 신원과 역할을 올바로 아는 것이 아닐까? 그 토대 위에서 서로에 대한 인정과 이해가 자라날 테니, 이 장에서는 바로 그 교회 안 구성원 간의 관계에 대해 알아본다. 오늘은 먼저그 관계의 기초가 되는 하느님 백성의 평등성과 다양성 살펴보자.
하느님의 백성은 성직자와 평신도를 포괄한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이 양자의 귀속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이들 각각의 직무는 무엇인가? 물론 양자 모두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으로서 그리스도의 직무에 참여하고, 실행할 임무가 있음은 이미 살핀 바이다. 따라서 이제 이들이 각각 그리스도의 직무를 실행하는 데에 공동 부분과 고유 부분이 있음을 살필 필요가 있다.
우선, 하느님 백성 모두가 그리스도의 직무 실행에서 공동 부분을 지니고 있음은 '하느님 백성의 평등성'에 기초한다. 곧 공의회는 하느님 백성의 평등성을 직무와 은사와 봉사의 구분보다 앞서 다룬다. "하느님 백성은 하나뿐이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다.'(에페 4,5)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난 지체들의 품위도 같고, 자녀의 은총도 같고, 완덕의 소명도 같으며, 구원도 하나, 희망도 하나이며, 사라도 갈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는 또 교회 안에서는 민족이나, 국가, 사회적 신분이나 성별에 따른 불평등이 결코 있을 수 없다.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다.'(갈라 3,28..)"(교회헌장 32항) 공의회에 따르면, 평신도도 성직자와 마찬가지로 전체 교회를 위하여 책임을 나누어진다. 교회의 가르침을 전달하고 그에 따라 사는 것은 하느님 백성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성직자를 포함환 전체 하느님 백성의 과제이다.
다음으로 하느님 백성이 각기 고유 부분을 지니고 있음은 하느님 백성의 평등성 안의 다양성에 기초한다. 공의회는 그것에 대해 분명히 말한다. "교회 안에서 모든 이가 똑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잉가 성덕을 닦도록 불리었고 하느님의 정의에 힘입어 똑같은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남을 위하여 교사나 신비 관리 자나 목자로 세워졌지만,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공통된 품위와 활동에서는 참으로 모두 평등하다. 주님께서 거룩한 교역자들과 나머지 하느님 백성을 구별하셨지만 그 구별은 동시에 결합을 가져온다. ...교회의 목자들은 주님의 모범에 따라 서로 자기들과 다른 신자들에게 봉사하여야 하며, 신자들도 목자들과 교사들에게 기꺼이 협력하여야 한다. 이렇게 다양성 안에서 모든 이가 그리스도의 몸에서 이루어지는 놀라운 일치에 대한 증거를 보여 주고 있다."(교회헌장 32항)
-서명옥 로사 대전가톨릭대학교 기초신학 강사-
* 교구내 공소 당진성당 산성리공소 산성리공소는 박해를 피해 교우들이 정착하면서 신앙이 전해진 곳이다. 옛 마을인 염솔,됫박골,우산,삼상벌과 연관되어 있다. 교세통계표에 의하면 됫박골(1900년),성산(1901년,34명)공소는 퀴를리에 신부의 관할지였다. 현재의 공소건물은 시멘트벽돌조(대지면적 247㎡,건축면적 84㎡)로 1982년 교우들의 노력봉사로 건축되었다. 교세로는 서산지역에 본다이 설정되던 1917년 47명의 교우가 있었고,1967년에는 44세대 140명에 이르렀다. 1996년 돌마루공소 건립에 따라 인근 공소로 정기적인 전례에 참석하고 있다. |
<이충무의 숨은행복 찾기(13)>
"A-L-O-H-A~!!!"
'보살핌의 정석'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예비 간병인들을 교육하는 강사가 칠판 위에 환자를 돌보기 위한 기본적인 행동지침을 적고 설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A → Ask
L → Listen
O → Observe
H → Help
A → Ask Again
ALOHA로 요약되는 이 지침이 바로 보살핌의 정석입니다. 하와이 인사말인 줄만 알았던 알로하에 이렇게 깊은 뜻이 있음을 이해하며 이 '알오하'를 통해 삶과 사람 사이의 소통에 대해 성찰해 봅니다.
Ask. 입으로만 묻는 것은 상대방의 입을 닫게 합니다. 내가 아니라,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부터 알고자 하는 마으으로 물어야 비로소 그 질문에 답을 합니다.
Listen. 답을 들으려면 귀만 있으면 되지만,그 답을 이해하려면 인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도 자신의 마음을 질서정연하게 말하는 건 어렵습니다. 마음은 늘 실타래같이 얽혀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Observe. 관찰한 때는 침묵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침묵은 상대방과 나를 하나로 섞는 신비한 용해제입니다. 물에 꿀을 넣고 빠르고 요란하게 젓는다고 그 둘이 금방 하나로 섞이지 않습니다.
Help. 상대방을 돕기 어려운 이유를 만들 때에는 생각이 앞서지만,상대방을 도울 때에는 손과 발이 먼저 바빠집니다. 손과 발을 움직이는 것보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에 도움은 늘 생각에서만 머물 뿐입니다.
Ask Again. 되묻는 것은 혼란스러울 때 하는 행위가 아니라,새롭게 그리고 더 완벽하게 누군가를 사랑하고자 할 때 하는 행위입니다. 매일 아침 해가 떠올라 나무를 조금씩 키우는 것처럼,우리도 매일 끝없이 질문하며 누군가의 해로 떠오를 준비를 해야 합니다.
무덥고 힘겨운 여름날,하와이로 훌쩍 여행이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오늘은 작은 방 안에서 묵상하면서 '알로하'를 되뇌이며 행복한 여행을 떠나봐야겠습니다.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맑은 날에도
가끔 비가 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판단될 때
그 순간
잘 된다 생각하면
정말 잘 되어 갑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내가 세상을 알아주면 됩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멈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다시금 찾아온 멈춤의 시간이 왔습니다.
백신접종으로 활기를 찾아가던 시기에 또다시 찾아온 멈춤. 인간의 한계를 다시금 알게 해줍니다.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애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요즘은 부쩍 듭니다.
나의 어린 시절과 비교해 집안에만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더 그런 애달픈 마음은 커져갑니다.
이런 멈춤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성찰의 시간이 되길 희망합니다. 우리가 먹고 입고 사는 곳,주변에서 하나씩 소중한 걸 찾아갈 때 다시금 소중한 걸 지킬 수 있지 않을까요?
다음은 환경사목부에서 만든 환경회복 실천운동입니다.
<기도하며 실천할 때 입니다.>
1. 비닐봉지 및 플라스틱 용기 사용 절제하기
2. 개인 물병 휴대하기
3. 생수 구매 자제하기
4. 물건 구매시 비닐봉지 거절하고 장바구니 휴대하기
5. 일회용품 사용 멈추기
6. 쓰레기 분리배출 바르게 실천하기
7. 택배 자제하고 과대포장 개선 요청하기
8. 육류와 유제품 섭취 줄이기
9. 채식 늘리기
10. 처철 음식,우리 농산물 구매하기
11. 배달 음식 자제하기
12. 음식 남기지 않기
13. 필요한 양만큼 요리하기
14. 냉장고 정기적으로 정리하기
15. 샤워기 물 아끼기
16.설거지,양치질,세수시 물 받아서 하기
17.가까운 거리 걸어 다니기
18. 대중교통 이용하기
19. 에너지 이용하기
20. 사용 후 전기 플러그 뽑아두기
-글. 사회복음화 분과제공-
<1분 교리>
2. Q 천주교와 개신교는 다른 종교인가요?
A 오늘날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개신교를 지칭하는 듯 일반화 되어 혼용되고 있습니다. 원래 기독교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종교인 그리스도교의 한자 표기입니다.
기독교에는 천주교와 개신고,동장정교회 등이 속합니다. 요즘에는 상호 혼동을 피하기 위해 '기독교리라는 표현보다 '그리스도교'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합니다.
3. Q 가톨릭 천주교는 다른 말인가요?
A 가톨릭(Catholic)은 영어로 '보편적'이라는 뜻인데,이 명칭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로마 국교로 선포된 4세기 이후이며,당시 많은 사람들이 믿는 보편된 종교라는 의미로 '가톨릭'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성 치릴로는 384년에 저술한 가톨릭이라는 용어를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개신교가 분리된 16세기경부터는 개신교와 구분하기 위해 가톨릭이란 명칭을 더욱 확고히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중국에 전래되면서는 '천주교(天主敎)'라는 한자 표기어가 생겼고, 오늘날 '천주교'와 '가톨릭'을 같은 뜻으로 사용합니다.
-교육분과 제공 (김동규 신부님 예비자교리서에서 발췌)-
연중 제18주일(나해)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교형자매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들 하셨니까? 오늘은 연중 제18주일입니다. 벌써 며칠 째 코로나-19 확산과 한 여름의 무더위가 열대야와 함께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사로 마음의 여유와 휴가로 한 여름 무더위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지난주 물고기 2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이신 기적 다음에 들려주시는 말씀인데,사람들은 저마다 예수님의 기적에 매료되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얻고자 하는 그 빵은 일회적이어서 먹고 나면 다시 먹어야 하는 세상의 빵이나 당신이 진정 주고자 하는 이 빵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함께 묵상해 볼 점 또한 지난주처럼 영원한 양식인 이 생명의 빵에 대해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보리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그분을 왕으로 모시고자 온갖 시도를 다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그분을 왕으로 모시려고 했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당시 그들이 로마의 통치하게 있었기 때문에 굶주림에 허덕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개인적인 자유도 억압받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즉 민생고와 압제로부터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네 해성같이 나타난 그분이 다신의 예언자나 지도자,율법학자,그 누구도 해결해 주지 못했던 이 문제를 너무나 멋지게 빵의 기적을 통해 채워주자, 그들은 이분이야말로 자신들의 이런 한계 상황을 극복해 주고 채워 줄 분이라 믿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들의 생각에 예수님은 오늘 복음말씀을 통해 '너희는 없어질 양식인 세상 것만을 추구하지 말고 영원히 썩지 않고 변하지 않는 내적인 생명의 빵을 찾아 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너희를 지금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킨다 해도 그리고 굶주린 상황에서 벗어나는 민생고 해결의 먹을 것을 준다 해도 그것은 완전한 해방과 해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다 근원적인 것은 우리가 남을 누르고자 하는 내 안의 폭력을 없애고, 저 자신만 먹기 위해 내 놓지 않았던 그 보따리를 푸는 이기적인 마음을 고쳐먹어야만 천상양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남겨 주신 일 기적이 일어날 수 있도록 어린아이처럼 기적의 재료를 준비하는 일과 당신의 기적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으신 나눠주는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위해서 해야 될 우리의 몫이며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고 진정 청해야 될 생명의 빵이라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마더 데레사 수녀님 또한 세상의 불의와 빈곤 상황을 보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이 점점 더 척박해 지는 것은 나눔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리고 영적인 것보다 세상의 빵과 돈을 먼저 찾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 우리 모두가 부족함이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풍요로운 이 세상을 만들어 주셨지만,그것을 풍요롭게 이요하는 것은 생명의 양식을 나누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욕심 많은 사람들의 욕구를 다 채울만한 세상은 만들어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누어 함께 오손도손 먹을 만한 세상만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예수님께 무엇을 청하고 싶습니까? 썩어 없어질 양식인 빵의 기적을 청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것을 나누고 변화시키는 생명의 빵을 청하고 싶습니까?
아마도 예수님은 그 선택의 몫을 우리에게 남겨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구원의 길과 방향도 정해 놓으셨습니다.
우리 모두 그분의 말씀에 따라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신앙인이 되도록 이 미사 중에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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