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1년 주보

연중 제17주일(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2021년 7월 25일(나해)

모든 2 2021. 7. 26. 06:58

당진성당 사성리공소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로 390-18(대호지면 사성리 104-4)

 

+요한 복음 6,1-15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말씀의 향기>

 

예수님과  일치하여 빵 되기

-위기에서 생명으로-  -한영인 시몬 탄방동 보좌-

 

 

  교회의 역사 안에서 위기는 늘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의 박해부터 세 교회의 박해부터 중세 교회의 세속화, 근대 이후 무신논적 사유, 현대의 종교적 무관심,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위기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한 개인에게도 신앙의 위기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주변 상황에서 오는 부정적인 영향, 혹은 개인의 심리, 내면 안에서 벌어지는 영적 투쟁, 죄, 불신들 때문에 겪게 되는 다양한 위기들이 우리의 신앙살이와 함께 공존합니다.

 

  길을 걷다 헤맬 때 다른 누군가를 참고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신앙살이의 여정에서 길을 잃으면 누구를 참고하면 되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참된 모범이신 예수님이 있습니다.

 

  참 하느님이시면서 동시에 참 인간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위기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수난 전날 겟세마니 동산에서 성부 하느님께 올렸던 기도를 떠올려 봅시다.(마르 14,32-46) 고뇌의 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저 멀리 잠자고 있는 제자들이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셨을 것입니다. 이렇게 죽는다면 지상에서의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셨을 것입니다.

 

  피땀을 흘릴 정도로 쉽지 않은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어려움을, 자신의 위기를 하느님께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결국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하고 성부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내어놓습니다. 완전히 반대되는 이 전환이 있기까지 피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빵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되고자 하신 것은 고급스러운 빵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간식으로 먹는 달콤한 빵이 아니었습니다. 그 빵은 예수님의 고통, 기도 중에 흘린 피땀, 사람들의 모욕,조롱,채찍질 당하여 생긴 상처가 담겨 있지만 생명을 주는 빵입니다.

 

  예수님의 아픔과 고통으로 반죽이 된 빵이 이제 잘 구워져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빵을 맛보았고 이 빵으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 빵을 먹은 모두는 이제 예수님과 하나되어 빵이 되라는 초대를 받습니다.

 

  다시 위기라는 주제로 돌아가 봅시다. 우리가 마주한 위기에서 무엇을 택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과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요한 5,9)와 같이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을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과 하나되어 빵이 될 것인가, 아니면 밀가루 창고에 그대로 남겨 있을 것인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현재 맞이한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나 홀로'극복할 수 없고, '이웃과 함께'여야만 극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성체로 다가오시는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우리도 빵이 되어 이 위기를 함께 극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회와 교회를 잇는 길잡이>

 

사랑에 힘겨워하는 우리 청년들을 위해

 

  며칠 전 복음(연중 제15주일)을 묵상하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오늘날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이라는 가장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파견하셨다. 이때 주님께서는 사도들이 지닌 지팡이마냥 모든 사람에게 새겨주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녀의 '성'과 '몸'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확신을 쥐어주셨다. 또한 주님께서는 신발마냥 모든 사람에게 주신 '사랑의 계명'이라는 최소한의 보호장치로 그 복음을 선포할 수 있게 하셨다. 누군가는 다른 무엇인가를 열심히 준비해야만 그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0포세대'라 하더라도 우리는 계속 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도 충분히 이 복음을 증거 하며, 전할 수 있다.>

 

  TV에 나온 가톨릭신자인 한 연예인이 "혼전순결"에 대해 "아니오"라는 말에 너 무나 자연스럽게 했다. 물론 여기서 혼전순결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아니오"라는 응답과 함께, '이별이 두려워 연애를 못한다'는 자조적인 대답이 더 크게 들려왔다.

 

  요즘은 혼전순결도 중요하지만, 혼후 순결(배우자에 대한 정결)에 현실적인 어려움들도 호소한다. 이는 출산 이후의 '부부간의 성'에 대한 이야기들도 포함한다. 더욱이 젊은이들이 택하려는 늦깍이 결혼이나 비혼은 현실적인 사랑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혼란스러움을 반영한다. 또한 교회의 생명과 성에 관한 가르침과는 멀어진 자신에 대한 죄의식과 비판적으로 다가오는 복음의 시선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겠다.

 

  당연히 '주님의 가르침'과 '복음'이라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삶의 세부적인'것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겠지만 우리가 지금껏 살아온 복음에 대한 확신과, 살아가는 현실에도 포기하지도 놓치지도 않을 무언가가 있다.

 

  누군가 혼전순결, 혼후 순결은 어렵다고 말할 때, 배우자에 대한 신의와 정결은 마음뿐 아니라 몸으로도 꼭 지켜져야 한다고 말하자.

  누군가 늦깍이 결혼이나 비혼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말할 때, 모든 것이 준비된 결혼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사람 간의 신뢰와 진지한 사귐을 가져보자고 말하자.

 

  때로는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의 변화에 따라 마음 급급해질 필요는 없다. 우리가 꼭 인간의 만남과 헤어짐의 속도, 동거나 이혼, 재혼, 동성애 또는 성적 문제들에 대한 파격적인 사고들에 반응할 필요도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의 고민에 진지하게 다가가려는 청년들의 용기와 진솔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교회 안의 장(場) 임을 명심하자.

-이영일 야고보 신부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대전교구 담당-

 

스테인드글라스 이야기③

수원교구 성복동성당 -신앙의 씨앗 2010 판석유리

 

  히브리서 11장 1절에는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라고 쓰여져 있다. 신앙에 대한, 믿음에 대한 가장 적절한 비유의 구절이 아닐까 한다. 수지 성복동 성당의 주보 성인은 '성가정의 성 마리아와 성 요셉'으로 작가는 성모님의 신앙에 대한 작품을 담고자 했다. 그것은 추상적이며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보는 이들 마다 각자 다르게 해석하며 느껴지는 것이 현대 미술인데 누군가에게는 물로서 세례를 받는 장면으로 또는 우주를, 푸른 밤하늘을, 주님이 은총을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푸른 배경 속 유리 사이에 하늘에서 부터 내려오는 황금색 빛의 기둥을 넣고 주변으로는 아주 조심스러게 작은 빛의 씨앗들을 심어 놓았다. 실체가 없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의 뜻과 행적에 의지하신 성모 마리아, 항상 주님께 "예"라고 답하고,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고 했던 그녀는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실현한다. 그녀는 항상 모든 과정을 창조주께 맡기는 씨앗과 같다. 그분의 뜻에 맡기고 완전히 순종하는, 뿌려져서 죽어 그분이 원하는 그대로 자라는 씨앗과 같은..

 

 내 신앙의 씨앗은 잘자라고 있을까? 제대로 있기나 한 건가?라고 반문해본다.

 

우리 모두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실현하는 씨앗이다.

성당은 거대한 씨앗을 품은 대지의 어머니.

그 대지속에 작은 씨앗들이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려 한다.

하느님의 말씀이, 복음이 씨앗이다.

사재의 말씀이 씨앗이다.

우리 신자 한명 한명이 모두 씨앗인 것이다.

겨자 씨앗의 비유처럼...

 

-손승희(손소벽 막달레나) 유리화 작가-

 


교구내 공소

* 당진성당 사성리공소



  사성리에 처음으로 전교가 된 시기는 1955년 7월로 서산본당의 성 복사가 이 마을을 방문하면서 비롯되었다. 첫 공소건물은 1956년 유선수씨 소유의 토지와 목조초가(54평)를 매입.수리하여 공소로 사용하였다. 이어서 1978년 '대호로 402-13'에 위치한 시멘크벽돌조 건물을 공소로 사용하였고, 1989년 박용복시가 희사한 토지 위에 신자들의 모금으로 경량철골조 공소(연면적 124.4㎡)를 건축하였다.
1996년 돌마루공소 건립ㄴ에 따라 인근 공소들이 통합하면서 사성리공소는 중지되고 건물은 방치되어 현재에 이른다. 현재 사성리 관할지역 42가구 25여 명이 돌마루공소로 정기적인 전례에 참석하고있다.

 

해외 유학 사제들의 편지 ④

 

예루살렘에서 온 편지

 

  찬미예수님,저는 2011년 사제서품을 받은 임장혁 실바노 신부입니다. 저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로마성서대학에서 성서를 공부한 후, 2018년 예루살렘에 있는 프랑스 성서 고고학 학교에서 제2성전 시대 유다교 문헌들 중의 하나인 쿰란 사본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이 곳은 교회의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 성인이 순교하셨다고 전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학교 내 성당에는 비잔틴 시대 때 성당 바닥을 장식했던 모자이크가 군데군데 남아 있습니다.

 

  제가 로마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온 첫 번째 이유는, 학교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 때문이었습니다. 쿰란 사본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신학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는 데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조각난 양피지 사본들을 재배치하여 읽어내는 능력과 기술이 필요한데, 예루살렘 성서 고고학 학교는 이에 대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 1947년 쿰란 1 동굴에서 쿰란 사본이 우연히 발견된 이후, 지속적으로 쿰란 유적지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와 쿰란 사본에 대한 고문서학적 연구를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이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온 두 번째 이유는, 예루살렘이라는 장소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예루살렘은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거룩한 도성이었고,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께서 죽고 부활하신 장소이며, 종말론적으로는 천상 도시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저는 성 토마스 사도처럼 예수님의 흔적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두 손으로 직접 만지면서, 예수님을 깊이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로니모는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성인입니다. 로마에서 수사학을 마친 성인이 베들레헴에서 성서를 연구하고 번역하면서 바라보았던 것은 문자 너머에 있는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분의 삶 전체가 예수님을 향한 열정 속에 있었으며, 수덕 생활 안에서 이루어진 성서연구는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성서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 자체가 예수님을 만나게 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말씀을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말씀 앞에서의 겸손함'이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기도하며 지냅시다.

 

  예수님을 따랐던 사도들처럼, 말씀 외에는 그 어떠한 것에도 의지하지 않았던 예로니모 성인처럼, 저도 예루살렘에서의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는 달콤한 시간들을 보내고 돌아가겠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주교님들과 모든 분들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 이곳 예루살렘 성지에서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장혁 실바노 신부 예루살렘 유학-

 

 

내 기억으로

할아버지는 늘 멋지셨고

할머니는

언제나 현명하셨습니다.

 

나도 훗날

그렇게 기어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지구가 주는 메시지....

 

  올해 들어 지구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한 듯 보입니다.

관심과 노력 그리고 걱정과 고민이 필요합니다.

더 깊이 걱정하고 고민해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전세계 기후 재앙.. '유럽 홍수, 이번이 최악 아니다"

 

 

서울면적 32배 불타고 물폭탄 쏟아지고 세계는 '기후재난'

미국 동부 뉴욕까지 날아온 서부산불 연기 2주 넘게 진행되고 있는 미국 서부 산불로 인한 연기가 20일 동부 뉴욕까지 나라와 하늘을 뒤덮었다. 이날 뉴욕의 대기 질 지수(AQI)는 170을 기록해, 세계 보건기구(WHO) 권고치의 9배를 넘었다.

뉴욕/AP 연합뉴스

 

열 받은 지구... 1~2 ˚C 더 뜨거워지면 생물 절반 멸종한다.

서유럽 참사 이어 중국서도 대홍수..."극한 기후변화 경고"

 

"50도 폭염, '겨우 1도 상승한 지구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지구가 뿔났다'.... 폭우. 산사태로 獨.日.印 최소 200여 명 사망(종합)

 

<글. 그림 생태분과 제공>

 

 

<1분 교리>

 

1. 성호경은 무엇이며 어떻게 바치고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성호경은 삼위일체의 신비가 함축되어 있는 가장 짧지만 중요한 기도문으로 성 삼위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믿는 우리들의 신앙고백입니다. 기도를 시작할 때와 끝마칠 때는 물론 모든 일을 시작할 때와 마칠 때 바칩니다.

  이는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간절하게 바라는 기도이며, 특별한 의미로 성호경은 천주교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우리의 몸으로 표현하며 세례를 통해 확인받은 구원의 신비를 확인하는 천주교 교우의 표지입니다.

 

  성호경은 그 상징적인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주님으로 모시며,

② 우리를 구원하려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을 기억하고,

③ 자신이 천주교 교우임을 겉으로 드러냅니다.

 

-교육분과 제공(김동규 신부님 예비자 교리서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