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민영종 예로니모에밀리아노.대전가톨릭사진가회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
+ 마태오 복음 14,13-21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때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하고 이르시니,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하시고는,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말씀의 향기>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그대와 내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사느냐 그러지 않느냐에 다라 많은 큰 일이 좌우됩니다. -홍정수 베드로 대전가톨릭대학교 영성관 부관장-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의 가여운 처지를 보시고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에게는 그것을 이룰 능력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그 적은 양식이 예수님의 손에 들려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의 기도로 바쳐졌을 때 노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곳에 모인 오천 명도 넘는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고 남은 빵 조각은 열두 광주리를 가득 채울 만큼 넉넉했습니다.
이 기적의 시작은 누군가가 내놓은 적은 양의 빵과 불고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재료가 되어 예수님의 손 위에서 성령을 통해 기적이 되어 사람들을 풍요롭게 했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가진 적은 양의 빵과 물고기를 나누라는 초대가 아닌지 묵상해 봅니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지금 우리의 시대는 복음에 의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복음의 빛이 비추인 깊은 식별과 보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작은 움직임이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 안에서 기적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기적을 체험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신앙은 결구 이러한 믿음고 투신에서 체험되고 자라납니다.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노란 리본과 함께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이 말을 나누었습니다. 지난 4월 10일 세월호 사고의 슬픔은 우리의 가슴 안에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이 슬픔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를 더 바르고 옳게 변화시키기 위해 손에 쥔 빵과 물고기를 내놓고 있습니다.
세상이 하느님의 법인 사랑으로 가득차기를 바라고 기다린다면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몫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루어질 일에 비해서는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그 일이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 시키는 가장 중요한 돌이 될 수 있습니다.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실 일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복음의 기쁨」을 안고 세상으로(13)
케리그마의 심화를 통한 복음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는 예수님으 말씀에는 복음선포와 함께 신앙성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으 가르침을 받아 교회가 세상에 전한 '첫 선포'를 케리그라라고 부르는데,이것이 모든 복음화 활동과 교회 쇄신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여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성숙은 교리교육적인 차원을 필요로 하지만 최종 목적지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인간이 되시어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계며이며,모든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에 대한 확신과 응답이 신앙성숙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응답과 성숙의 여정에서 언제나 하느님의 은총이 선행함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성령을 따른"(로마8,5)삶을 통하여 그 모든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첫 선포'는 단지 시간적으로 처음이 아니라 질적으로 모든 선포의 으뜸,곧 우리가 다양한 형태로 거듭 들어야 하고 선포해야 할 핵심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다른 모든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사제 역시 끊임없이 케리그마로 생생하게 복음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늘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사제는 백성의 성숙 과정을 함께하는 동반자이면서,그 자신 역시 하느님 백서으로서 성숙 과정의 일원입니다.
교리교육에서 우리의 모든 도덕적 종교적 의무에 앞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랑을 잘 표현해야 합니다. 이는 정식화된 진리를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쁨과 격려와 활력과 조화로운 균형을 특징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언제나 중심이 되어야 하는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많은 교재나 프로그램이 신비 교육을 위한 쇄신의 필요성을 충분히 언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신비와 관련하여 모든 형태의 교리교육은 '아름다움의 길'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믿고 따르는 것이 단순히 옳은 일이 아니라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을 새로운 빛과 기쁨으로 채워주는 그런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이 모든 복음화와 성숙의 원천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귀 기울이는 훈련을 끊임없이 받아야 하고, 말씀이 점점 더 온전하게 모든 교회활동의 중심이 되게 해야 합니다. 말씀과 성사의 낡은 대립은 이미 극복되었습니다. 활기차고 효과 있는 말씀선포는 성사를 온전히 받게 해주고,성사 안에서 말씀은 최대의 효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말씀이 우리안에 사시어 활동하시도록 성경 연구는 모든 신자에게 활짝 열린 문이 되어야 합니다.
-총대리 김종수 아우구스티노 주교님-
<미사 속 숨은 보화>
기념Anamnesis2
기념 기도는 초세기 아래 대부분의 전례에 나타나면,특히 그분의 수난과 부활이 이 기념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주님,저희 봉사자들과 주님의 거룩한 백성은 성자 우리 주 그리스도의 복된 수난과 죽음을 이기신 부활과 영광스러운 승천을 기념하나이다." 수난,부활,승천은 주님의 생애에서 절정을 이루는 순간들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성찬례는 수난에 대한 제사를 넘어 영광스러운 승리의 기념자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기념한다는 것은 새로워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매년 생일이나 축일을 기억하고 축하하며 우리가 받은 생명과 신앙에 대한 감사를 돼새기는 것과 같이,우리는 미사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과 구원의 신비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기념을 통해 주님의 구원 신비가 우리 삶 안에서 늘 새롭게 약동하게 됩니다.
<이충무의 행복나침반(24)>
마른 땅에 운동화 진땅에 장화
늦은 밤 어느 아파트 신발장 안,비 오는 날 하루 종일 고생하다 이제야 들어와 쉬게 된 장화가 투덜거리며 옆에 있던 운동화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장 화 : 정말 내 팔자 왜 이러니?
운동화 : 팔자가 뭐 어때서?
장 화 : 어쩌다 외출하면 왜 늘 비가 오냐고?
운동화 : 난 비올 때만 나가는 네가 부러운데?
장 화 : 난 틈만 나면 나가는 네가 부러워...
운동화 : 그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알기나 해?
장 화 : 진땅을 밟는 게 얼마나 힘들다고!
운동화 : 진땅이라도 좋으니 좀 쉬어 봤으면...
장 화 : 맑은 하늘을 한번만이라도 봤으면...
이 때 구석에서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낡은 구두가 말했다.
구두 : 나는 뭐라도 쓰임새가 있는 너희가 부럽다!
장화 : 무슨 소리야?
구두 : 난 언제 버려질까 그게 두려운데...
쓰임새가 있다는 것은 기쁨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한 사람 함 사람 쓰임새 있는 존재로 만들어 세상에 내 보내셨습니다. 마른 땅에 운동화가 되어 주는 사람,진땅에 장화가 되어 주는 사람..누가 더 가치가 있고 누가 더 행복한가를 비교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두려운 것은 아무리 작은 것에도 의미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단 한 순간이라도,누구에겐가 그 무엇이라도 정말 필요한 존재가 되어 주는 기쁨이 우리를 살아있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들 삶의 신발장 안에 마련해 주신 신발 가운데 어느 하나도 쓸모없는 신발은 없도록,다른 사람을 낡은 신발로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하루를 보내고 싶습니다.
내 여린 참사랑
당신의 그 분처럼
사랑하여
이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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