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철 신부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함께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사도,2,36)
+요한 복음 10,1-10
<나는 양들의 문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 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이렇게 자기 양들은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말씀의 향기>
성소,사랑의 응답 "나를 따라오넌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정우석 사무엘 성소국장-
오늘날에도 예수님께서는 매 순간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고 계십니다.
먼저 몇 주 전,진도해안에서 벌어진 선박 사고로 인해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고통으로 어찌할 바 모르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우리 모두가 그들이 슬픔과 고통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여 함께 이 시간을 극복하도록 합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매 순간 우리를 어떻게 부르고 계실까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된것이다."(요한 13,35)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 모두를 서로간의 사랑으로 부르시며 초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님의 제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그분을 믿고 따르는 데에만 있지 않고 구체적 삶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서로간의 사랑을 살아 실천할 때 비로소 그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서로간의 사랑이 살아 실천할 때 비로소 그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서로간의 사랑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여된 사명이며 동시에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방법이며 성소입니다.
우리가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소화 데레사)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성소가 무엇인지를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오,저의 사랑이신 예수님! 저의 성소를 드디어 찾았습니다. 저의 성소는 사랑입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일생동안 작고 소박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 안에서 예수님의 유언인 사랑을 살았습니다. 단지 성녀가 살아던 수도원의 공간만이 아니라 온 세상과 시대를 사랑했습니다.
오늘은 성소주일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성소가 사랑임을 우리의 마음과 영혼,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 강하게 새기도록 합시다. 또한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위대한 일들을 행하도록 초대받았음을 상기하도록 합시다. 사랑을 통해서 나 자신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하느님의 뜻으로 채워갈 수 있음을 믿도록 합시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는 서로간의 사랑을 통해 세상에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고 전하길 바라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특별히 오늘날 서로간의 사랑을 증거할 많은 젊은이들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우리가 이 부르심에 잘 응답할 수 있도록 전구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복음의 기쁨」을 안고 세상으로(1)>
늘 새로운 기쁨-예수님과 만남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첫 권고문은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히 채워줍니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인간을 창조하시고 돌보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부활의 새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에게서 절정을 이룹니다. 자신이 하느님에게서 이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사람은 어떤 처지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황님은 이 글을 쓰는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기쁨으로 두르러진 새로운 복음화의 단계로 들어서도록 격려하면서, 앞으로 여러 해 동안 교회가 걸어갈 새 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즉,예수님과의 깊은 만남으로 우리 모두 '새로운 복음화''로 나아가고 그 안에서 교회가 새 길을 찾아가자고 권고하십니다.
복음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온 마음과 삶의 기쁨으로 채워주는 하느님의 선물이지만,오늘날의 세상에는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교황님은 그것을 '온갖 극심한 소비주의와 더불어 개인주의적 불행'이라고 지적하십니다. 현대문명은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많은 것을 발전시켰지만,그것이 오히려 안이하고 탐욕스러은 마음과 피상적인 쾌락에 대한 잡착 그리고 이웃과 함께하는 마음을 잃게 하는 고립된 정신을 낳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이해와 관심에만 갇히게 되면,우리 마음 안에 다른이들이 특히 가난한 이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면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삶은 하느님의 원하시는 품위 있고 충만한 삶도 아니고,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성렬 안에서 사는 삶도 아닙니다.
그래서 교황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어디에 있든 바로 지금 이 순간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만나도록,적어도 날마다 그분을 찾으려는 열린 마음을 가지도록' 권고하십니다.에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시고 언제나 기쁨을 되찾아 주시어,언제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많은 예언자들과 하느님을 만나고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는지 볼 수 있습니다. 교황님은 묻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 기쁨의 큰강물 속으로 들어가지 몸할 이유가 있습니까?'
-총대리 김종수 아우구스티노 주교님-
<미사 속 숨은 보화>
기념환호(신앙의 신비여!)2
성령 청원 기도와 성찬 제정문을 통해 성체와 성혈의 축성이 이루어지고, 교우들은 이 거룩한 신비에 참여하기를 원했습니다. 거양성체도 교우들의 성찬의 신비에 함께 할 수 있도록 행해지는 것이며,기념환호와 응답도 그와 같은 의미입니다. 주니께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현존하시면 죽으뫄 부활이 재현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조용히 지나칠 수 없는 놀라운 사건이기 때문에,교우들은 기념환호를 통해 지금 실현된 축성과 구원의 제사를 믿고 고백하며 이 신비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충무의 행복나침반(22)>
아침 햇살 공동소유
같은 길에 같이 서 있음을 기억하라
한 노인이 병원에 들렀다. 여기저기 몸이 불편한 것에 대해 호소를 하고 있었는데,젊은 의사는 그 노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갑자기 노인의 말을 끊고 이렇게 말했다.
의사 : 혈압이 생각보다 높으시네요.
노인 : 그래요? 그 동안은 괜찬았었는데..
의사 : 약은 언제까지 먹어야 하죠?
노인 : 평생이라고요?
의사 : 아니,뭘 그리 놀라세요?
노인 : 그렇게 오랫동안 먹어야 되나요?
의사 : 지금 81세이신데 평생이라고 해봐야..
노인 : 그래도 그게...
의사는 큰 소리로 간호사를 부르더니 다음 환자를 들여보내라고 했다. 노인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쓸쓸하게 진료실을 나와야 했다. 오늘 따라 다리에 힘이 더 없는 듯 버스를 타러가는 길이 무척 멀게만 느껴졌다.
백화점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는 할머님 한 분을 뵌 적이 있습니다. 젊은 고객들에게는 무척 친절하게 설명을 하면서,자신에게는 귀찮은 듯 대충 대하는 점원들을 보면서 나이 먹었다는 서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죠.
젊은 사람들은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 언제까지나 오랫동안 서 있을 거라고 쉽게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이든 사람들을 그냥 저만큼 가버린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혹시 그 분들이 저만큼 가 계신 것이 아니라,자신들이 아직 이만큼밖에 오지 않은 건 아닐까요?
누구에게나 하루의 한 줌 햇살은 하느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 햇살이 자신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고독한 만족은 없을 것 같습니다.
주님!
눈물과 통곡으로
보낸 이 꽃들을
주님의 품안에
품어주소서.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이단(異端)신흥종교,신천지를 조심합시다(1)
시작하며 - 들어가유~
매일 새벽,신문과 방송사는 세상의 소식(消息)을 전해줍니다. 이 소식이 때로는 우리 삶에 기쁨과 슬픔,좌절과 희망을 주기도 합니다.
매일 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신문과 방송 같이,하느님께서는 매일 우리가 살아나도록 생기를 주는 '당신'의 소식을 말씀으로 전해주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스스로 드러내시는 표현으로 택하신 그 '말씀'은 이미 태초부터 있었으며,지금까지 내 삶의 '기쁜 소식'으로 전해진 하느님 당신에 관한 모든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일상의 삶에서 매일 하느님의 소식인 말씀을 가까이 할 때 생기를 잃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내가 들은 하느님 말씀이 공허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내가 사는 것과는 무관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얼마 전 평화신문을 보니 이러한 글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늘 외롭습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나름의 방법을 찾고 사람을 만나기도 하곤 했는데,저의 외로움을 채워줄 사람은 없네요."
"사람들은 왜 자기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신부님들이 강론할 때마다 사랑타령을 하는데,과연 사랑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제가 아는 한 신자는 신앙심이 강한분입니다. 늘 저를 볼 때마다 '주님을 굳게 믿어라'고 하고,..어떻게 하면 믿음이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홍성남 신부,평화신문,「아! 어쩌나 」에서)
어느샌가 우리는 마음속의 '외로움','주관의 상실','약한 믿음','부족함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으로 신앙을 점점 잃어 가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 감각'(Sensus Fidei)도 무뎌져서,세상의 논리와 판단이 삶의 기준이 되고,거짓과 미혹의 말에 쉽게 흔들리기도 합니다.
이제는 이러한 '나와 너','우리'(가정,친구,공동체)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갖고,우리 자신의 신앙 감각을 깨우는 고백과, 삶에 힘을 불어넣어 줄수 있는 신앙생활을 고민할 때가 왔습니다. 신천지에 관한 이 글이 우리 신앙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열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이영일 야고보 신부.사목기획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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