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에 비친 십자가」김택민 신부(2012,소록도)
"평신도는 십자가에 담긴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 세상 속에 그대로 비추어 내야할 사명을 지닌 호수와도 같은 사람들입니다."
+마르코 복음 13,24-32
<사람의 아들은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그 무렵 큰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사람들이 볼 것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말씀의 향기>
나부터 복음화됩시다. "나를 통해 그리스도를 본다! " -김홍거 세례자요한 대전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
찬미 예수님,존경하고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오늘은 마흔 다섯 번째 맞이하는 평시도 주일입니다. 1968년 개최된 추계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전국평협 인준과 함께 대림 첫 주일을 '평신도의 날'로 정했습니다. 이날을 택한 이유는 이 시기가 이승훈 베드로가 1783년 동지사 일행을 따라 북경으로 가던 때와 맞먹기 때문입니다. 1970년 세 번째 평신도의 날부터는 그리스도왕 대축일 전주일로 바꾸고 명칭도 '평신도 주일'이라고 고쳐 부르도록 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신앙의 해를 살고 있습니다.교황 베네딕토 16세계서는 10월 11일,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인 동시에 '가톨릭교회 교리서'반포20주년이 된 날부터 내년 연중 마지막 주일인 11월 24일 그리스도왕 대축일까지를 '신앙의 해'로 선포하였습니다. 우리교구에서도 10월 14일 모든 본당에서 개막미사를 봉헌하고 사제연수를 실시하였습니다.
우리도 나의 신앙을 돌아보고 확신하며 그리스도를 증언하는데 노력해야겠습니다.
평신도들은 교회 내 곳곳에서 사도직에 참여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활동이 복음정신으로 살며 이 세상을 새롭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 삶의 자리에서 참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외교인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그리스도를 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나눔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사람들이 볼 것이다."(마르 13,25)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지금 이 곳에서 그때를 위해 깨어 있는 삶을 살며 나부터 복음화되는 새로운 복음화에 우리 모두 온 힘을 기울입시다.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가 축복한 작은 교회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신앙의 해 (7)>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활력 지표
미국 워싱턴 대교구의 사목 및 사회 문제 사무국에서는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활력 지표라는 도구를 개발하였다. 우리도 이 도구를 벤치마킹하여 교구와 본당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도구는 예배와 교육,공동체 생활,봉사,행정의 영역에서 알아볼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에 기반을 두고서 본당에 뿌리를 둔 식별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활력의 첫 번째 지표,예배가 전례,성사,쇄신 노력,심심,기도 및 본당에서 제공한 여타의 기호와 관계가 있다. 우리는 전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내 알 수 있다. 신앙을 고백하고 성경 말씀에 귀 기울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새 몸인 교회의 지체와 머리로 아버지께 예배드릴 수 있도록 다함께 모인다.
활력의 두 번째 지료는 교육이다. 가톨릭 교회의 믿음과 가르침 안에서 진행 중인 신앙 교육을 모든 연령층의 본당 신자에게 반드시 제공하게 하려는 온갖 노력을 본다. 이는 성인,청년,아동을 향한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개인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가톨릭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본당 종교 교육 프로그램,성인 신앙교육,성인 입교예절,성사교육 프로그램 및 여러 형태의 청년 사목과 복음화 활동 안에서,그리스도와 그분의 생명을 주는 메시지와의 만남이라는 사실이 인간의 체험이라는 작물로 짜인다.
공동체 생활은 본당 활력의 또 다른 기준이다. 본당의 모든 구성원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교회 내에서 적극적인 활동이 뜸해진 신자들과 지역 내에 거주하면서 어느교회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본당 신자들의 재능과 요구가 다양하다는것을 인식함으로써 공동체의 의식을 확립하려는 본당의 노력과 관련된다.
회칙「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교회의 가장 깊은 본질은 하느님 말씀의 삼중 임무로 드러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봉사를 또 하나의 활력 지표로 본다.이 차원의 본당 생활에는 본당 안팎으로 공동체 내의 가난한 이들,소외된 이들,어르신들,궁핍한 가정,기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섬기는 일이 포함된다. 이 영역의 본당 생활에서 평화와 정의,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에 대한 옹호를 적극적으로 추구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행정 및 본당의 지도력,관리,경영,의사 결정 과정은 물론 교회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본당의 관계와 같은 교회 생활의 면면을 지표로 삼는다.
새로운 복음화에 대한 노력이 진전되면서 모든 본당과 신앙공동체와 프로그램이 집단적인 효과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성장을 위한 척도로 활력 지표를 활용하기를 희망한다.
-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미사 속 숨은 보화>
강론②:강론이 재미없어 주보를 보고 있다구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강론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기 위해「전례헌장」7항의 초안을 "강론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표현하려 했으나 오해의 여지가 있어 이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공의회 이후의 문헌에서 강론도 독서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이 말씀 안에 현존하신다고 설명함으로써 강론을 하느님의 말씀 영역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강론을 들을 때 자신의 잣대대로 맘에 든다'혹은 '맘에 안든다'라고 판단하지 말고,독서와 복음에서 선포된 하느님의 말쓰을 실생활과 연결하여 더 자세히 듣는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43) 김정환 신부 . 내포교회사연구소
신태보(베드로):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여,어디에서 양을 치고 계시는지(아가1,7)
신태보 (베드로) |
경기도 출생 1839년 전라도 전주에서 참수(70세) |
신태보(베드로)는 자신에게 성사를 줄 신부님을 평생 동안 찾아다녔으나 실제로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연을 가진 분이다. 출생지가 어디인 지는 모르나 경기도 이천에서 살던 그는 천주교를 알고 난 후 꼭 신부님을 만나 뵙고 싶어하였다. 중국인 주문모(야고보)신부님이 유일하게 활동하고 있을 때였고, 신자들은 그분을 보호하기 위해 비밀을 철저하게 지켜으므로 아무나 그분을 만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신태보는 신부님이 계신 곳을 알만한 신자들을 찾아가 간절히 청했으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요청들이 오히려 신부님의 거처를 알아내려는 의심스런 행동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는 신부님을 만나보기 위해 경기도 이천에서 서울까지 8번이나 왕래를 했고, 친척인 이 요한을 서울로 보내 정착시켜살도록 하면서까지 그 방법을 간절히 찾았다.그러나 한 번도 신부님을 뵙지 못했고,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주문모 신부님이 자수하여 순교하셨다는 소식을 듣는 큰 슬픔을 맛보았다.
그 후 신태보는 신앙생활을 위해 행상 노릇을 하며 여기저기 떠돌며 살았다. 그러면서 중국 북경의 주교님과 로마 교황청에 연락을 하여 성직자를 보내달라고 청하는 운동(교회 개건운동)을 위한 경비를 마련하는데 앞장섰다. 그러다가 전주 포졸들에게 잡혀가 여러 차례 신문을 받았는데 신앙을 버리라는 관장의 말에 올곧게 대답하였다.
"나라가 융성할 때엔 임금을 섬기다가 나라가 그 반대의 상황에 있다고 임금에게 복종하지 않는 신하는 어리석은 신하일 뿐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유순할 때만 따르고 어려운 날엔 버리는 신앙은 거짓 신앙입니다. 관장님은 국법에 따라 행하시고 저는 제 신념에 따라 행동할 것입니다."
"저는 한 번 하겠다면 하고, 안 한다면 안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대답들 때문에 그는 더 모진 형벌을 받았다. 신태보는 그 후 12년 동안이나 더 감옥에 갇혀 있다가 70세가 되었을 무렵인 1839년 5월 29일에 전주에서 참수로 치명(治命)하였다.
그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인 1836년 말부터 세 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했다. 신태보 등 많은 조선 신자들의 청원이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그러나 신태보는 정작 신부님을 이 세상에서는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지금은 원 없이 만나고 계시겠지만.
이 계절
모든 이에게
따뜻한
마음 되게 하소서.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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