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1년 주보

연중 제18주일 2011년 7월 31일(가해)

모든 2 2021. 4. 8. 16:42

 

「나눔은 신앙인의 의무」(2011),황영준 신부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태14,16)

 

 

  +  마태오 복음 14,13-21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하고 이르시니,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 오너라."하시고는,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제자들이 그것을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명가량이었다.

 

 

<말씀의 향기>

 

빵을 떼어주시니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 곽승룡 비오. 대전가톨릭대학교

 

  요 몇 년 사이 한국사회에서 삶을 훌륭히 사신 종교인들이 생을 마치는 안타까운 일이 계속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님을 비롯하여 불교계의 법정 스님,그리고 아프리카 톤즈로 가 친구가 되어준 성자 이태석 신부님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몸을 이웃을 위해 떼어 놓는 인생을 사신 것으로 그분들 안에 예수님의 말씀이 움직였다는 느낌이 든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그들 가운데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은 군중을 돌려보내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자고 제안하였다. 하지만 제자들과 예수님의 생각은 같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하셨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제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한 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으나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에서 거리가 있다. 예수님은 그들이 지속적으로 먹을 수 있는 사랑을 보여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제자들과 예수님의 생각은 차이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늘 공생활 전체에서 항상 인간을 통합적으로 알아차리셨다. 요즘 복합 다기능의 통합된 아이폰과 스마트폰처럼,또는 3D나 4D의 영화가 대세이듯 주님께서는 인간들에게 그러셨다. 곧 그분은 사랑을 가르치기만 하지 않고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셨다. 그리고 주님은 사람들이 그것을 학습한다는 것도 늘 기다리고 또 믿으셨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의 몸을 떼어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다. 엠마오로 낙향해 가던 제자들도 처음에 알아보지 못했던 주님을 빵을 떼어 주실 때 알아보았다. 그렇다.우리도,교회도 자신의 몸을 떼어 줄 때,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그 모습을 통해 주님을 알아볼 것이다.

 

 

<교회의 선교사명>

 

  구원의 복음이 온 세상에 선포되다 

 

1492년 콜롬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면서 교회 선교는 새로운 양상으로 이루어진다. 신대륙 발견은 중세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로 접어드는 사건이었고, 교회 선교에 있어서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스페인과 포르투칼이 지리상 발견 시대를 주도하면서 아프리카,아메리카,아시아 대륙에까지 진출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교황의 아비뇽 유수,프로테스탄 교회의 종교개혁,그리고 유럽의 교황권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는 민족주의를 경험하게 된다. 교회와 교황권의 위상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선교 보호권(Jus patronatus)을 주어서 범세계적인 선교를 시도하게 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으 보호하에 교회의 설립과 선교사의 파견을 통하여 선교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이 시대에 특히 수도회의 선교 참여가 두드러진다. 프란치스코회,도미니코회, 예수회,파리외방전교회가 대표적인 수도회이다.

 

  아시아도 그 영향 하에 선교가 이루어진다. 인도는 예수회 회원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 전에는(1498-1541)인도에 거주하는 포르투갈인들에 대한 사목이 이루어지다가 1542년부터는 그 성인에 의해 토착민들에 대한 선교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대표적으로 일본도 1549년 인도에서 건너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에 의해 적응주의적인 선교가 이루어진다. 중국도 역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선교를 시도했으나 도착하기 전에 병사하여 실패하였고, 대표적으로 마태오 리치가 중국에 1582년에 도착하여 보유론적(補儒論的)방법을 선택하여 선교하였다. 그 영향 하에 우리나라는 1784년에 복음을 받아들였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선교 보호권 안에서 교회의 선교는 순수성을 상실했으나,1622년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 포교성성이 설립되면서 본연의 교회 선교를 다시 시도하게 되었다. 포교성성은 방인사제를 양성하고,토착민족의 문화를 존중하는 적응주의적 선교방법을 선택하고,지역교회를 설립하고 선교사를 파견하는 등 복음에 충실한 순수 선교를 시도하게 된다. 선교 보호권은 1940년에 이르러 포르투칼로부터 법적으로 자유로워지면서 해결되었다.

 

  어떻든 온 세상에 복음이 선포되었다. 아메리카,아프리카,아시아 대륙 등 온 세상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다. 지리상 발견이 이루어지고 교회가 활력을 잃으면서 세속권력에 의지하여 복음 선포가 이루어지는 면도 있었지만 교회는 선교 본연의 의미를 되찾았고,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도록 자신의 의무를 다하였다. 그러한 노력으로 우리나라에도 복음이 도래하게 된 것이다.

 

  -김영근 신부.논산대교동 주임-

 

 

 

<지요하와 함께 보는  믿음살이 풍경>

 

만돌린이라는 이름의 강물에 빠져보았습니다

 

  지난 7월 18일(월)에는 대학생 딸아이와 함께 공주 신관동성당을 갔습니다. 오후 2시 보좌 주교님이 집전하시고 50여 분의 신부님들이 함께하신 금강 되찾기 '생명평화미사'에 참례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서울로 달렸습니다. 오후 7시 30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길거리에서 거행되는 제 33차 시국기도회에 참례했습니다. 매주 월요일 오후에는 만사 제폐하고 서울을 가는 내 순례행진이 언제 끝날지는 나 자신도 모릅니다.

 

  요즘은 월요일 오후 서울을 가고 올 적마다 지난 6월 25일(토)서산 석림동성당에서 처음 접해 보았던 만돌린 오케스트라 연주 장면을 떠올리곤 합니다.공주 신관동성당을 가고 또 서울을 가느라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만돌린 오케스트라의 연주음을 지속적으로 떠올렸고,만돌린 오케스트라 연주음 속을 달리는 것 같은 차각 속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나는 6월 25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다섯 시간가량을 내처 서산 석림동성당 안을 가득 채운 만돌린 오케스트라의 선율 속에 몸을 담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속적으로 만돌린 오케스트라의 연주음에 취할 수 있었던 것은,강물 소리를 들으며 강물 위를 유영하는 듯싶은 특이한 감흥 때문이었습니다. 만돌린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자연의 소리'였습니다.

 

  무릇 음악은 자연에서 왔고, 자연의 소리와 메시지와 반영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음악은 바람에서 왔고, 바다에서 태어났으며,강물에서 생겨났습니다. 강물으 흐름은 음악을 잉태하고 포유하며 발현시킵니다. 강물의 높낮이와 여울과 구불구불한 곡선들은 그대로 음악이고,음악의 실체입니다. 또한 강물의 흐름은 생동이고 리듬이며 생명력입니다. 음악 여기 생동이고 리듬이며 생명력입니다. 그리하여 자연과 음악은 일치이며 조화입니다. 무룻 예술이 다 그렇습니다. 자연은 모든 예술의 산실이고 보고이며 기원(起源)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자연은 철저히 망가지고 파괴되고 훼손되고 있습니다. 강을 살린다는 거짓 구호로 강들을 깡그리 죽이는 무참한 일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져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생각하면 너무도 억울하고 원통하여 눈물이 납니다. 나는 그날 서산 석림동성당 안에 앉아서도 눈물을 삼켰습니다. 제10회 '대한민국 만돌린 페스티벌'이 만들어내는 음악의 향연 속에서도 4대강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했고, 창조주 하느님의 노여움을 느껴야 했던 것이지요.

 

-지요하(소설가.태안성당)-

 

 

 

 

우리는

모두 /함께/다같이

 

한발 한발

생명의 말씀을

따라갑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