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1년 주보

연중 제19주일 2011년 8월 7일(가해)

모든 2 2021. 4. 8. 16:51

 

「용기를 내어라.나다.두려워하지 마라」이진욱 신부

빵조각을 보고 머뭇거리는 비둘기를 보며 저의 믿음을 생각해봅니다."먹어?말어?"

급기야는이렇게 생각합니다. "저거 빵 맞아?" 너의 믿음이 너를 살렸다는 주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  마태오 복음 14,22-33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군중이 배불리 먹음 다음,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그 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 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배는 이미 물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오너라,"하시자,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하자, "주님,저를 구해 주십시오."하고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이 믿음이 약한 자야,왜 의심하였느냐?"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하고 말하였다.

 

 

<말씀의 향기>

 

희망과 믿음  "용기를 내어라. 나다.두려워하지 마라"  -이원효 베네딕도.괴정동 주임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기적의 이야기입니다. 이 기적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누구인지를 전하시고,베드로와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복음에서는 배가 풍랑에 흔들리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보통 신약성경에서'배'라는 상징은 교회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밤새 기도하시려고 혼자 산에 오르시어 기도하실 때, 주님의 말씀에 따라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던 제자들을 풍랑을 만나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시달림을 준 폭풍우는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실때에야 비로소 멈추게 되었음을 봅니다. 결국 폭풍우와 같은 시달림 속에서 애쓰고 있는 우리들은 주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한다면 언제나 흔들리고 불안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또한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들을 시련과 역경 속에, 어려움과 불안 속에 계속 머물지 않도록 이끄시는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제자들이 거센 바람 속에서 예수님을 전혀 생각할 겨를도 없을 때 물 위를 걸어오시는 분을 바라보며 유령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겠지만,바라보는 그 순간에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폭풍우는 제자들에게 더 이상 어려움으로 다가오지 않고,그대로 정지되고 있음을 봅니다. 여기서 그 분이 예수님이심을 깨닫고 그분을 바라볼때, 그 이전의 어려우은 사라지고 이제 우리는 새로운 장명으로 초대됩니다. 그것은 믿음의 견고성과 항구성이라는 새로운 물음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처럼 예수님께 대한 일시적 열정뿐인 믿음으로는 지금 여기서 계속 부는 거센 바람의 시달림을 이겨내지 못하고,다시 처음의 어려우으로 되돌아가게 됨을 묵상하게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와 교회 공동체는 주변의 상황과 역사의 흐름 속에서 크고 강한 많은 시달림과 문제,역경들을 치르게 됩니다. 그러한 강한 시달림과 문제들과 역경들 속에서 때로는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 같은 불안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시며,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곳에 계십니다. 그래서 그곳에 계신 예수님께 자신을 항구히 의탁하는 것이야말로 삶으 시달림과 문제드롸 역경 속을 헤쳐나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용기를 내어라.나다.두려워하지 마라."

 

 

<교회의 선교사명>

 

  19-20세기 선교의 새로운 활력

 

  19세기에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계몽주의,그리고 교회 내적으로는 교황권을 제한하는 사조(공의회 지상주의,지역교회 자치주의 등)등으로 인해 교회의 선교는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그러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교황청 신앙전파 사업회(1822), 교황청 어린이 전교회(18343),교황청 베드로 사도 사업회(1889)등 평신도를 중심으로 한 선교 후원회 설립이 이어지면서 선교활동의 부흥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후원회는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물질적 도움을 주는 등 선교를 조직적이고 적극적으로 후원하게 된다.

 

  또한 19-20세기 교황들의 여러 가지 노고를 통해 선교가 체계화되고 선교의 활성화를 위한 여러 가지 조치들이 이루어졌다. 19세기에는 다음의 교황들이 주목받는다. 1840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의 회칙 "PROBE NOSTIS"는 교황청 신앙전파 사업회를 주교들이 협력하고 보호하고 강화하도록 한다. 교황 비오  9세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를 소집하여 선교의 관점에서 그레고리오 16세의 업적을 계승하고자 하였으나 이태리 군대의 침입으로 중단된다. 1880년 선교의 부흥을 이룬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SANTA DEI CIVITAS"는 주교들의 선교에 대한 책무를 강조한다. 즉 선교성소양성,신자들의 기도, 교황청 신앙전파 사업회 등과의 협력을 통한 물질적 도움 등이다.

 

  20세기에는 다음의 교황들을 살펴볼 수 있다. 제 1차 세계대전(1914-1918)의 위기가 지난 후 범 교회적인 첫 선교문헌으로 평가받는 1919년 교황 베네딕도 15세의 회칙 "MACIMUM ILLUD"는 선교의무의 기초가 비신앙인에 대한 사랑이고, '절박한 의무'라고 강조한다. 선교의 방법으로는 선교성소계발,선교후원,기도 등을 제시한다.1922년 비오 11세의 자의교서 "ROMANOTUM  PONTIFICIUM"은 각종 선교 사업회가 교황청의 조직임을 천명하고 포교성성과으 협력을 강조한다. 1957년 교황 비오12세의 회칙 "FIDEI DONUM"은 교구사제의 선교지 파견과 지역교회 서로 간의 협력,방인사제의 양성을 강조한다. 또한 이전의 교황청 중심의 선교할동을 넘어서는 지역교회의 적극적인 선교의무를 강조하고,특히 주교의 역할과 의무를 강조한다. 1959년 교황 요한 23세의 회칙 "PRINCEPS PASTORUM"은 평신도의 선교에 대한 의무와 참여를 강조한다. 전통적 가톨릭 국가의 평신도가 갖는 신생 가톨릭교회에 대한 선교협력을 강조하고,또한 선교지역 평신도의 선교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도 강조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19-20세기 교회가 여러 측면에서 선교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이러한 결실이 그 이후 교회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김영근 신부.논산대교동 주임-

 

 

 

<문학 단상>

 

고향 본당에서

 

  어릴 적에는 이런 저런 불만이 많았습니다. 작고 초라한 시골마을이 때로는 너무 시시하게 느껴져서 몸은 고향에 있었지만 마음은 늘 대처로 나가 있었습니다.그렇지만 고향을 떠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언뜻 부는 바람결에 들려오는 고향 소식에도 귀가 쫑긋해지고 동생이 전화라도 하는 날에는 마음이 더 먼저 고향으로 달려갑니다. 고향 산천이 나를 기억할 리 없습니다. 그곳에 나를 기억하는 임들이 있기에 더 그립고 따뜻해서 발걸을 재촉합니다.

 

  동생이 또 큰 마당에 멍석을 깔았습니다. 마냥 어리기만 한 줄 알았던 동생도 나이를 먹어 더러 추억을 곱씹고 싶을 때가 있는 모양입니다. 툭하면 누나들을 불러 어릴 적 이야기로 수다떨게 하고 자신도 슬쩍 거든답니다. 동생의 댁이 여름 특식을 손질하여 가마솥에 올려놓은 사이,텃밭 한 바뀌를 돌아 나오니 상추,깻잎,부추,호박,가지가 바구니에 넘칩니다. 도시 살림꾼 누나들은 엄마,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 바구니까지 채웠으니 기쁨이 두 배입니다. 이제야 철이 들었는지 철부지 시절에는 하챃게만 느껴져던 채소들이 귀하게 보이고, 예쁘게 보이기까지 하고,그 무엇부다 맛이 있습니다.

 

  고향집에 오르는 나지막한 황토 언덕도 세월의 나이를 먹어 키가 작아졌습니다. 게다가 시멘트 포장까지 하여 깔끔해졌습니다. 맨발이거나 걸어 올라가는 이가 없고 자동차로 쌩생 달리니 고향 길도 그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고향의 품에 가끔 편안하게 안길 수 있는 건 행복입니다. 특별히 여름에만 즐기는 연한 고기와 고향의 정기 가득 찬 싱싱한 채소를 먹는 것보다 더 맛있는 것이,공가마는 사람들끼리 오래된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것입니다. 추억의 보따리를 풀어 헤쳐 놓고 다시 음미하는 따뜻한 시간은 내일을 살아가는 양식이며 빛바랜 추억을 다시 채색하는 퍼포먼스입니다.

 

  고향집 언덕 아래에 작은 공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상전벽해가 되었지만 눈을 감지 않아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풍경입니다. 공소가 있던 언덕을 그리며 자동차로 4분쯤 달려 성당에 갑니다. 고향의 본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는 기도할 것이 더 많습니다. 감사할 것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더 큰 목소리로 사도신경을,주님의 기도를,찬미기도를 드리며 소리 높여 성가를 부르게 됩니다.

 

  '주님,우리의 귀한 먹을거리를 주님의 도우심으로 생산하는 농민들에게 특별한 은총을 허락하시어 고향에 사는 기쁨을 알게 하시고, 늘 주님을 찬미하며 행복하게 하소서! 아멘'

 

 

  -박상분 안나.대전 가톨릭 문학회-

 

 

 

모든 분들께

고마움과 감사드립니다.

 

다 탄 나무에서 새싹이 돋아나듯

 

늘 평화롭고 행복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