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34
벌써 아주 오래 전 일이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내가 물어왔다.
“우리 통장 만들어도 될까?”
그 질문을 듣고 그냥 웃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럼! 남들이 이 소리 들으면 황당해 하겠다.” 했다. 우리 두 사람은 가톨릭 신자였고, 인천 동암의 반지하 단칸방에 신혼살림을 차렸는데, 아내는 봉제공장에 다 녔고, 나는 의자 공장에서 밥을 벌다가 가톨릭노동사목협의회 활동가로 일하고 있던 차였다. 우리는 혼인신고서 직업란에 얼떨결에 ‘여공’과 ‘직공’으로 기재하고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던 적이 있었다. 그 만큼 보잘것없는 살림에도 저금통장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때 우리가 염두에 둔 것은 교부들의 사상이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나 암브로시오 성인 등 초기 교회의 교부들은 필요한 것 이상의 여분은 더 가난한 이들의 소유라고 천명하였다. 우리 신발장에 신지 않아 곰팡이가 슬고 있는 구두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신발이 없는 자의 몫을 가로채고 있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일용한 양식’ 이상의 재산을 축적하는 게 죄라는 이야기는 순진하고 어린 신혼부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통장을 만들었지만, 사실상 쌓이는 돈은 별로 없었다. 수입이 보잘것 없었기 때문이다. 소비하고자 하는 욕심도 별로 없었는지 당시에는 살면서 ‘돈’ 때문에 서로 다툰 기억이 별로 없다. 어쩌면 그 당시에는 아이가 없어서 가능한 일이었을까. 결혼하고 8년 만에 아이를 얻고 나니, 사정이 좀 달라졌다. 내내 돈 버는 것과 반대 방향으로 살아왔고, 덜컥 산골에 들어와 사는 바람에 돈 벌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상태에서 아이를 키워야 했다. 6년 동안 농사짓고 살다가 최근에 집이며 땅을 다 팔고 경주로 이사 와서 도시에 자리 잡자, 이제야 비로소 우리가 가진 게 별로 없다는 현실에 놀랍고 안타까웠다.
어쩌다 대학에 강사 자리를 얻었지만 생계에 큰 보탬이 되지 못했고, 그마저 올해는 걷어치웠다. 그리고 안정된 직업을 얻기 위해서라도 더 공부를 해야 하고, 돈벌이에도 마음을 쓰기 위해서 그나마 물이 좋다는 서울로 ‘독립운동’을 하러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우리에겐 안정 된 생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곧 어버이로, 남편으로, 어른으로 책임지는 삶인 셈이다. 우리 삶의 가운데로 ‘돈’이라는 생명 에너지를 끌어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십수 년이 걸린 셈이다. 이를 위해 당분간 우린 주말부부가 되어야 하고, 아이에겐 아빠가 만주로 간 독립운동가가 되어야 한다.
사진출처=pixabay.com
무주 산골에 없던 텔레비전을 경주 와서 집안에 들여놓은 이후에 백수로 지낸 몇 달 동안 가끔씩 한가한 낮 시간에 채널을 돌리고 있는 나를 본다. 텔레비전은 그야말로 지칠 줄 모르고 전도하는 소비주의의 사도였다. 채널을 돌릴 때마다 텔레비전은 뭐든 사라고, 사야 한다고 윽박지르고 꼬이고 달랜다. “나는 소비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여전히 나는 그 소비의 물결을 거슬러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현실에 튼튼히 뿌리를 내려야 함도 잊지 않는다. 그 현실과 복음이 요청하는 이상 사이에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아야 제대로 사는 것일 텐데, 적절한 때에 알맞은 길을 주님께서 열어 주시리라 믿는다.
한편 그 텔레비전을 보면서 두 가지 중요한 흐름을 읽고 있는데, 현실을 사는 사람들이 어떤 형식으로든 얽혀 있는 증권과 보험에 대한 것이다. 당장의 절박한 생계 문제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증권 투자를 일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돈으로 돈을 버는 일일 텐데, 불로소득이 흉이 되지 않는 세상이다. 보험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봐서 가족 중에 어디 한 군데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는 상황이고 보면 이해가 된다. 결국 증권이나 보험이나 세상살이에서 최대한 자기 가족의 안전을 보장받자는 노력인데, 돈을 많이 확보할 기회를 얻는 게 관건일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작 어려움에 닥치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정말 고독해진다는 점이다. 증권이나 보험에 신경 쓰는 만큼 주변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써야 하는 것이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위기의 상황에서 참다운 안전이 보장된다. 우선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없는 게 나은 가족이라면 돈을 매개로 간병인을 사야 하고, 심리적 위로를 받을 길이 없다. 가족이 아니어도 피붙이처럼 사랑하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려움은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이 된다.
장애가 축복이 되는 순간을 원한다면 보험에 내놓을 돈의 일부라도 그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한다. 우리가 서로 정을 나누기 위해 물질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애틋한 마음이라도 표현되어야 하고,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 것은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마음이 가는 곳에 돈도 따라가는 법이다. 타인에게 인색하고 보험에만 매달리는 것은 참 위험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다른 데 있고, 결국 ‘사람만’이 우리를 사랑 안에서 보호해 주는 것이라 믿는다. 그러니 복음서의 가르침처럼 투자하고 싶다면 약은 청지기처럼 무엇으로든 사람에게 먼저 투자하면 어떨까.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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