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가고 싶다

세상 끝 어디라도 발 닿는 대로

모든 2 2021. 1. 16. 23:44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33


경주 남산 동쪽 기슭 통일전 근처에 봄나들이를 갔다가 아내와 ‘할머니 손국수’집을 찾아 들어가 이른 점심을 먹었다. 결이는 유치원에 가고, 봄날 부부가 오붓한 한때를 보내는 것이다. 법적으로 개발이 전혀 불가능한 남산국립공원 안에 위치한 이 마을은 해묵은 기와가 버짐처럼 이끼에 절어 고색창연하다.

국수집 주인 할머니는 음식점을 며느리한테 맡겨두고, 당신은 곁방에 차려놓은 구멍가게에서 음료수며 담배를 팔고 있다. 얼굴이며 손 잔등은 살아오신 내력만큼 깊게 패인 주름이 가득하지만, 그 모든 주름이 당신이 밟아왔던 인생길이라서 그런지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여전히 눈빛이 밝고 말씀에 생기가 돋아 있었다. 혹시나 해서 한 번 여쭈어 보았다. “마을에 전셋방 나온 데 없나요?” 할머니는 한 집이 있다 하시면서, 그 집으로 찾아드는 길목을 연신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해 주셨다. 허름한 시골집 아래채가 비었다는데, 그 많은 고택(古宅)을 모두 비껴가고 ‘위험, 고압가스’라고 페인트로 적어 놓은 창고가 달린 집이었고, 우린 당연히 실망하였다.

아담한 마당이 딸린 한옥에서 살아 보는 게 소원인데,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전생에 지은 복이 많아야 그런 집에서 살지, 하는 말이 새삼스럽다. 얼마 전에 김해대학에서 하던 강의도 그만두었고, 임대한 아파트도 머지 않아 비워 주어야 하기에, 웬만하면 올 가을에라도 산기슭으로 살림을 옮기고 싶은 마음에 이리저리 경주 인근을 훑어보고 있는 것이다. 잿빛 담벼락 위로 솟아오른 가지 끝에 매달린 개나리가 그리도 밝은 노랑인 줄을 처음 본 듯이 신기해하면서, 경주의 봄을 서성거리고 있다.

사진출처=pixabay.com

하느님이 던져 놓은 낚싯 바늘

겨우내 잠을 자고 난 느낌이다. 이걸 동면(冬眠)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스님네들은 겨우내 동안거(冬安居)라는 걸 한다. 겨울은 모든 생명이 칩거하기에 적절하다. 웅크리고 방안에 틀어박혀 화창한 봄, 여름, 가을 동안 다친 몸도 돌보고 마음도 다스리라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바깥엔 얼음 같은 바람이 불고 간간이 기지개나 켜 보라고 푸근한 틈새를 마련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 겨울 동안 나는 그저 먹고 자고 했으니 속수무책으로 겨울잠을 잔 셈이다. 예술치료 임상도 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밀린 숙제를 하듯이 공부를 하지도 못했고, 산골생활을 접었으니 땔감을 구하러 산속을 헤맬 필요도 없었다. 창밖에 몰아치던 바람소리만 여전히 남아 귓가에 아직도 쟁쟁하다.

그 겨울을 보내고 나니, 내 등을 떠미는 기운이 느껴졌다. 작년엔 대학이라는 버팀목이 있어서 날아가 버릴 듯한 내 몸을 붙잡아 두었는데, 겨우내 그 말뚝마저 뽑혀 버렸다. 봄이 왔건만, 기대고 머물 곳이 없었다. 경주라는 낯선 땅에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정 붙이고 살려고 했건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객지에서 일감도 없고 생계가 막연해졌다.

다시 벌판에 서 있는 느낌이 이럴까? 그러면서 생각한다. 김해대학은 나를 산속에서 세상으로 끌어내기 위해 하느님이 던져 놓은 낚싯 바늘이었다고. 그 바늘에 달랑달랑 꿰어 있는 먹이를 덥석 무는 순간, 그 맛을 음미하기도 전에 물 밖에 놓여 있는 물고기 신세임을 깨달아야 했다. 다시 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몸부림쳐 진화해서 땅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물에서 할 일이 따로 있고 땅에서 할 일이 따로 있다. 문득 문정현 신부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귀농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전북 익산에 있는 자매의 집으로 신부님을 뵈러 갔을 때, 그분이 한 말씀 하셨다.

“너무 오래 있지는 말아!”

더 깊이 투신하기 위해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면 그것도 해야겠지, 생각하면서, 이번 참에 예술치료를 배우러 대학원에 가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이미 시작한 길이니 제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올라오는 것이다. 뭘 하나 배우려고 마음먹자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욕구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이번 참에 미술공부도 처음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요즘은 집 근처에 있는 ‘아사녀요’에 가서 취미 삼아 질그릇에 그림을 새기고 있는데, 참 흥미롭다.

접시에 조각칼로 부처님도 새기고 성모님도 새기고, 손이 가는 대로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다 보니 영 음식을 담아 먹기는 틀렸다. 공방에 있던 분은 아예 삼발이를 주면서 나중에 그릇이 구워지면 탁자 위에 세워 놓으라 한다. 나무를 보면 나무를 깎고 싶고, 흙을 보면 뭔가 주물럭거리고 싶고, 성화를 보면 이콘을 만들고 싶고, 뭐든지 만들거나 그리고 싶어진다. 예술‘치료’보다 ‘예술’에 더 입맛을 당기는 것은 그것도 과정인가, 싶다.

그러면서 나처럼 가진 것도 없이 대책도 없이 맘대로 일을 꾸미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는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둘러보면 그렇게 대책 없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는 사실이 반갑고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그들도 나와 비슷한 동족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줄곧 인생에 대한 ‘청사진 없이’ 살자고 다짐해 두곤 했다. 산다는 게 내 뜻대로 내 맘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정작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나 아닌 무엇이라고. 그걸 ‘임’이라 부르기도 했고, 섭리(攝理)라 부르기도 했다. 누굴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지금 내게 임이 계신다면, 만사는 임의 뜻에 맡기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나는 임의 뜻을 제대로 꿰뚫어볼 재간이 없다. 다만 내 삶이 요청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임께서 좋은 것을 마련하시고 길을 열어 주시리라 믿고 싶은 것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나는 유목민인가, 고생길이 훤해도 할 수 없다

조만간 경주는 온통 벚꽃으로 뒤덮일 것이다. 작년엔 그 화사한 꽃길을 보고 ‘그래, 바로 여기, 경주야!’라고 의심하지 않고 일터였던 김해에서 꽤 먼 이곳으로 이사 오지 않았던가. 그 봄을 만끽하고 4월이 다 가기 전에 나는 서울에서 다른 둥지를 찾아보려고 한다. 식구들은 경주에 남아 빈 자리를 채울 것이고, 나는 주말마다 다시 천년을 거슬러 사는 경주에 와서 머물 것이다. 서울에서 서라벌 사이를 오가는 중에도 영혼의 가족을 만날 것이고, 새 것도 보고 묵은 것도 음미할 것이다. 지난번에 서울에 다니러 갔을 때 어느 선배가 말했다.

“그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고? 한 가지만 해라. 그동안 그렇게 하나만 열심히 했으면 지금쯤 뭔가 되었을 텐데.”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그게 되는 사람이 있고, 안 되는 사람도 있는 걸 어찌하겠는가. 사방팔방 거처를 옮겨 다니며 이 일 저 일 기웃거리며 살다 보니 먼저 심심하지 않아서 좋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만나게 되고, 해괴한 소리 들어가며 귀도 넓어지고, 사는 게 글쓰기가 되고, 이사 다니면서 군더더기 같은 짐도 덜어내고, 무엇 보다 삶이 생생해지는 걸 느낀다.

그리 길지도 않은 생애를 지루하게 보내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사람이 꼭 컨베이어벨트에 붙어서 지겹게 반복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을 대하는 태도야 좋은 습관을 붙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좋은 습관이 결국 좋은 인격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일 보던 사람들을 언제나 보고, 매일 하던 일과를 언제나 해야 한다면 다소 숨막히는 구석이 있지 않을까? 그 매일을 사뭇 다른 오늘로 새롭게 창조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지만, 그게 공력이 어지간이 높은 사람일 테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인천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상주, 무주, 경주로 옮겨다니던 일을 생각하면 먼저 공간 이동이 잦았다는 점에서 유목민을 닮았다. 연구소에서 책을 읽다가 공장에서 일하고, 노동운동을 하다가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뛰어다니고, 대학원에서 신학공부를 하다가 사회운동권으로, 나중에는 잡지를 만들다가 시골에서 농사짓고, 이제 와서 예술치료 한다면서 부심하는 걸 보면 진득한 구석을 찾아볼 도리가 없다. 이런 걸 ‘유목주의(遊牧主義)’라고 부르고, 유목민 기질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면 그것도 팔자라고 생각한다. 멋있게 말하자면 ‘운명’일 텐데, 서울과 경주의 거리가 가깝지 않으니 고생길이 훤하지만 고난이 많을수록 은총도 많다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어떤 이는 만사를 즐기듯 행하면 당할 재간이 없다고 하는데, 그도 옳은 말이다.

윌리암 퍼키라는 분은 이렇게 노래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춤을 추라고, 아무데도 상처받지 않을 것처럼 사랑하라고,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노래를 부르라고. 다시 길 떠날 준비를 한다. 떠나는 길목에 벚꽃이 만발할 것이다. 고마운 계절의 선물이다. 그곳에 가면 임이 먼저 마중 나와 계실까? 아니어도 어디선가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고 계실 것이라 믿는 게 신앙이겠지.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