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개
저 안에 천둥 몇개
저 안에 벼락 몇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풍경달다 / 정호승시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 처마끝에
풍경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싶은 내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곧게 세웠나니
흔들리면서 꽃망울 고이고이 맺었나니
흔들리지 않고 피는 사랑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비바람 속에 피었나니
비바람 속에 줄기를 곧게곧게 세웠나니
빗물 속에서 꽃망울 고이고이 맺었나니
젖지 않고 피는 사랑 어디 있으랴
아프지 않고 가는 삶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반짝이는 삶들도
다 아픔 속에서 살았나니
아픔 속에서 삶의 꽃 따뜻하게 살렸나니
아픔 속에서 삶망울 착히착히 키웠나니
아프지 않고 가는 삶 어디 있으랴
약해 지지마/시바타 도요
못한다고
주눅 들지마
나도 마흔여섯 해 동안
못한 일들이
산더미야
부모님께 효도하기
아이들 교육
수많은 배움
하지만 노력은 했어
있는 힘껏
있잖아,그게
중요한 거 아닐까
자 일어서서
다시 해보는 거야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해는 기울고/김규동
-운명
기쁨도
슬픔도
가거라
폭풍이 몰아친다
오,폭풍이 몰아친다
이 넋의 고요
-인연
사랑이 식기 전에
가야 하는 것을
낙엽지면
찬 서리 내리는 것을
-당부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 보면
보이리
길이
마흔 번째 봄/함민복
꽃피기 전 봄 산처럼
꽃 핀 봄 산처럼
꽃 지는 봄 산처럼
꽃 진 봄 산처럼
나도 누군가의 가슴
한번 울렁여 보았으면
길 / 고은
길이 없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숨막히며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역사이다
역사란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부터
미래의 험악으로부터
내가 가는 현재 전체와
그 뒤의 미지까지
그 뒤의 어둠까지이다
어둠이란
빛의 결핍일 뿐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이 없다
그리하여
길을 만들며 간다
길이 있다
길이 있다
수많은 내일이
완벽하게 오고 있는 길이 있다.
휘파람 부는 사람/메리 올리버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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