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쓰여진 신앙 이야기

갈매못순교성지(2)[2]

모든 2 2020. 6. 19. 15:56

▲갈매못순교성지 승리의 성모성당

2006년 10월 성지 언덕 위에 처형장인 바닷가를 내려다보는

승리의 성모 성당을 완공해 봉헌식을 가졌다.

 

 

▲승리의 성모성당 제대 뒤 창문에는 다섯 성인의 모습이

스테인드 글라스로 표현되어 있고,창문을 열면 바로

성지 마당과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다.

 

 

갈매못순교성지(2)

 

형장으로 택한 곳은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다

 

 

  1866년 3월 30일 순교한 성인들의 시신은 3일간 전시된다. 다블뤼 주교,오메트르 신부,위앵 신부,황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 성인들의 시신은 이곳 주민들에 의해서 형장의 모래밭에 묻힌다. 약 3주후 황석두 루카의 시신은 가족들에 의해 삽티를 거쳐 현재 연풍에 안장되었다. 나머지 네 순교자의 시신은 음력 4월 8일 이 힐라리오가 집안 식구들과 조카사위 이 바르나바와 함께 지게에 지고 10여리 되는 곳에 매장한다. 하지만 얼마가 지나 산소를 찾은 힐라리오는 여우가 구멍을 뚫어 놓았기 때문에 이장을 결심한다. 힐라리오는 남포 서재골 담배밭 한가운데 광중 4개를 파고 다블뤼 주교,오메트르 신부,위앵 신부와 장주기 요셉의 시신을 묻고 봉분은 하나로 만들었다. 1882년 3월 블랑 부주교의 지시로 순교자들의 시신이 발굴되어 일본 나가사키의 오우라 대성당으로 옮겨졌다가,1894년 5월 22일에는 다시 서울 용산 신학교로 옮겨졌고, 1900년 9월 10일에는 주교좌 명동성당의 지하실에 안치되었다. 그리고 1967년에는 절두산 순교 기념관으로 옮겨져 지하 성당에 안치되었다.

 

  갈매못순교성지는 1925년 정규량 신부가 공주 본당 최말구 신부와 괴산군 높은 다랑이 주임 윤 바오로 신부와 함께 발견하였다. 정규량 신부는 처형된 다섯 순교자 다블뤼 주교,오메트르 신부,위앵 신부,황석두 루카,장주기 요셉의 시신을 몰래 파서 홍산지방 석죽골로 이장한 이 바오로와 그의 조부 이 바오로,중백부 지수씨,부친 힐라리오가 공소에 생존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도움과 같은 목격증인으로서 고증해 준 편옹택씨,이조용씨 그리고 김순경씨와 함께 성인들의 머리가 걸렸던 장깃대가 세워졌던 자리와 참수하던 자리 그리고 임시 매장했던 세 구덩이를 확인한다. 이에 정규량 신부는 서둘러 그 땅 20평을 사들여 1926년 등기하고 192년 1월 서울 천주교 재단 법인에 기증하게 된다.

 

  갈매못순교성지! 이름이 알려진 10명의 순교자 외에 이름도 남기지 못한 5백여 명의 신앙 선조들이 목숨을 내던진 곳! 목이 잘려 걸려 있던 곳이고,묻혔던 곳이다. 수많은 순교 선조들의 우직한 신앙과 주님을 향한 사랑이 한곳에 모여 맑은 샘이 되어 있는 곳! 성지에서 순교 선조들의 신앙을 생각하며 바라보는 석양은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마음의 감동을 전달해 준다. 갈매못순교성지에서 많은 신앙인이 영적 갈증을 해소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땅에 쓰여진 신앙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앙골 성지[6]  (0) 2020.07.13
대흥봉수산 순교성지[5]  (0) 2020.07.08
남방제 성지(2)-[4]  (0) 2020.06.28
남방제 성지(1)[3]  (0) 2020.06.19
갈매못 순교성지(1)[1]  (0) 2020.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