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성녀 마르가리타와 용」1518,패널에 유채,빈,미술사 박물관
+ 요한복음11,1-4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그때에 어떤 이가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는 마리아와 그 언니 마르타가 사는 베나티아 마을의 라자로였다.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린 여자인데,그의 오빠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자매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듣고 이르셨다.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셨다.
그러나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르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뒤에야 제자들에게, "다시 유다로 가자"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스승님,바로 얼마 전에 유다인들이 스승님께 돌을 던지려고 하였는데,다시 그리로 가시렵니까?"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낮은 열두 시간이나 되지 않느냐? 사람이 낮에 걸어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어디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밤에 걸어다니면 이 세상의 빛이 없으므로 걸려 넘어진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이어서,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그가 잠들었다면 곧 일어나겠지요.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가 죽었다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그냥 잠을 잔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제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분명히 이르셨다. "라자로는 죽었다. 내가 거기에 없었으므로 너희가 믿게 될 터이니,나는 너희 때문에 기쁘다. 이제 라자로에게 가자." 그러자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가 동료 제자들에게,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가서 보시니,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벌써 나흘이나 지나 있었다.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에서 열다섯 스타디온쯤 되는 가까운 곳이어서,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또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마르타는 돌아가 자기 동생 마리아를 불러, "스승님께서 오셨는데 너를 부르신다." 하고 가만히 말하였다.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얼른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예수님께서는 마을로 들어가지 않으시고,마르타가 당신을 맞으러 나왔던 곳에 그냥 계셨다.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으면서 그를 위로하던 유다인들은,마리아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그를 따라갔다. 무덤에 가서 울려는 줄 알았던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서 그분을 뵙고 그 발 앞에 엎드려, '주님,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하고 말하였다.
마리아도 울고 또 그와 함께 온 유다인들도 우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셨다.
예수님께서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하고 물으시니,그들이 "주님,와서 보십시오."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러자 유다인들이 "보시오,저분이 라자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몇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저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해 주실 수는 없었는가?"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속이 북받치시어 무덤으로 가셨다. 무덤은 동굴인데 그 입구에 돌이 놓여 있었다. 예수님께서 "돌을 치워라." 하시니,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타가 "주님,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였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그러자 사람들이 돌을 치웠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제 말씀을 들어 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여기 둘러선 군중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라자로야,이리 나와라." 그러자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을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말씀의 향기>
더 큰 믿음으로 일으키시는 주님 -김진 대전안드레아 장재 주임-
2월 셋째 주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이 매우 빠르게 가속화되고,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중한 일상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큰 혼란과 두려움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저 역시도 한 성당의 사목을 책임지는 본당 신부로 있으면서 실제로는 교구의 방침대로 일정 기간 동안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지내면서 심적으로 매우 힘겹고 무거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부디 이 강론이 주보에 실릴 3월 말쯤이면,조속히 이 코로나19 사태가 수습되고 많은 사람들의 보통의 일상이 평화를 되찾고,정말 하느님의 축복처럼 여겨지는 하루하루가 우리 삶에 펼쳐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처럼 국가적인 재난으로 여겨지는 매우 큰 강도의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우리는 그것을 이겨내기 위하여 모든 힘을 하나로 합치게 됩니다. 하지만 사실상 우리 인간의 확신이나 믿음은 언제라도 흔릴 수 있기에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전에는 어떤 상황도 매우 불확실하고 쉽게 희망할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의 가지처럼 주님 안에 머물지 않으면서 실제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요한 15,5 참조)을 제대로 알고 체험하게 된다면,자신을 비우고 하느님의 한없는 연민과 자비와 사랑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음도 알게 되겠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미 당신을 향한 믿음이 있으면서도,그 믿음이 매우 흔들리고 있는 복음 속의 많은 이들을 더욱 큰 믿음으로 초대하시고 힘을 복돋아 주시는 것을 볼 수있습니다. 그리고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따를 수 있도록 하십니다.
하느님의 강함은 인간의 약함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 확실합니다. 사실 우리는 그것을 지금 처한 현실에서 매일같이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삶 안에 깊숙이 침투하시어,절망의 무덤을 여시고 빛으로 이끌어 올리시면,우리는 그제야 주님께서 우리를 부활이요 생명으로 다시 잡아 일으키는 분이심을 믿게 될 것입니다. 매 순간,주님만이 우리의 희망이십니다.
<사회와 교회를 잇는 길잡이 사잇길>
일회용품을 안 쓰는 장례문화 조성과 생태적 회개
올 겨울 우리나라는 이상 기후 현상으로 한파 없는겨울이 지속되었으며, 호주에서는 폭염과 함께 엄청난 산불이 발생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질병으로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기록하며 전세계를 두려움과 공포로 떨게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현상들이 지구의 생태,환경적인 문제와 전혀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자연 생태계에서 인간 중심의 생태적 변화가 진행될수록,인류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전염병이나 자연 재앙이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회칙 「찬미 받으소서」을 통해 이 지구를 우리 모두의 '공동의 집'이라 명명하시고 생태적 회개를 통해 지구 환경에 대한 우려와 대책을 촉구하셨습니다.
스웨덴의 10대 청소년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환경과 기후에 대한 정부의 태만에 항의하고 매주 금요일 수업 대신 '프라이데이스 포 퓨처'(Fridays for Future)라는 학교 파업으로 세계적 환경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 소녀가 기후와 환경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정말 단순하고 정직한 생각 때문입니다.
북극 얼음이 녹고,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에 섬을 만들고,해양 생물이 죽어나가고,매년 이상 기후 현상들이 나타나는데도 어른들은 전혀 대책을 세우지 않으니까 매주 금요일 학교 대신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 가서 대책을 촉구한 것입니다. 자기와 같은 미래 세대가 살아가야 할 지구 환경을 위해 대책 좀 세워 달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환경도 예외가 아닙니다. 경제적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우리 환경에 대한 약탈과 착취가 도를 넘어섰습니다. 음료수 한 잔을 마시려고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를 남기고, 잠시 걸어도 될 곳을 차량을 이용하고, 심지어 이 세상에 살다가 떠나는 생의 마지막 순간인 장례식에서조차 엄청난 쓰레기를 남기고 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장례식에서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 플라스틱 접시만 해도 한 해 약 2억 1천만 개 이상이 된다고 합니다. 이 접시들은 음식물이 묻어 있어 재활용조차 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생의 마지막 순간인 장례식에도 생태적 회개가 필요합니다.
인간의 죽음이 영리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되며,고인을 온전히 추모하고,환경적인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지 않는 장례문화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오래된 관습과 간편하다는 이유로 생태 환경을 외면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과 실천이 하느님의 작품을 지키는 우리 소명을 실천하는 성덕의 핵심입니다.
- 박갑주 대건안드레아 대전교구정의평화위원회-
참됨은
큰 아픔 뒤에 피는
한 송이 꽃.
작은 한 꽃송이
가슴에 품고
열매로 맺어 가리니
우리는 그렇게
익어 가리니.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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