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토「천사의 예언을 받는 안나」 1302~05,프레스코 벽화,파도바,스크로벤니 경당
+ 요한 복음 14,15~21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께서는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말씀의 향기>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 -정동수 야고보 논산대건중고교 교목
'선생 신부'낯선 표현이지만,수업 시간에는 선생으로 다른 시간에는 신부로 살아가는 저를 잘 표현해 주는 단어입니다. 그런 제가 가르치는 과목이 종교학입니다. 종교학 교과서는 '초인간적인 또는 보이지 않는 세계나 힘을 상상하고 믿는 것'이 바로 종교라고 표현합니다. 종교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이지만,내심 어색함과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려고 자신이 믿고 있는 '신'에게 필요한 도움을 얻어내는 것이 종교라는 설명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표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2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일컬어 상상하거나 단순히 믿는 것을 넘어서서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1베드 3,15)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은 누군가를 상상하고, 그 존재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실재로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셨고, 그토록 사랑하셨던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끝내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어 우리에게 큰 희망을 안겨 주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의 첫머리와 끝머리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사람,곧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저는 '계명을 지키는 것'보다 우선 '사랑'에 방점을 두고 싶습니다. 그동안 예수님 없이 의무감과 두려움으로 계명 지키기에만 급급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 때문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도 우리 그리스도인이 무엇하는 사람인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교는 헛된 말이나 이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는 살아계신 분,곧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분을 사랑하고, 사랑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더욱 가까워져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소명입니다."(2003년 청소년주일 담화 참조)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시고 친구인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그 사랑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무언가 우리에게 부족한 것을 그분에게 얻어내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혹시라도 지키지 않으면 큰일이 날까 하는 두려움 때문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계명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그분이 명하신 것도 순종하며 따릅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뜻이기에 어려움 속에서도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며 그 뜻을 실천합니다.(1베드 3,17 참조)
한국천주교와 이웃 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회 편찬-
59. 도교는 어떤 종교입니까?
"아시아는 영적인 것이 높이 존중되는 대륙이며
종교적 감각이 천부적으로 깊이 새겨진 대륙입니다."
(요한 바오로2세,아시아 백성을 위한 담화,5항,1981년 2월 21일).
도교는 신선 사상을 바탕으로 도가 사상과 민간 신을 흡수하여 중국에서 발생한 종교입니다. 수련을 통하여 불로장생의 신선이 되고자 하는 것이 도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중국 고대의 전설적 인물인 황제(黃帝)와 노자(老子, 기원전604년~?)를 교조로 모시지만,실제 창시자는 장도릉(張道陵,3~156년)입니다. 도교는 중국남북조 시대(420~589)에 불교의 영향으로 경전과 조직 등 체계를 갖춘 종교가 되었고,이후 불교와 대립하거나 교류하면서 불교와 더불어 중국의 양대 종교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도교는 삼국시대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왕실과 민간에 널리 퍼졌으며 이후 의례,의학,문학,예술,풍수지리,미래를 예언하는 도참설(圖讖說)불로장생의 양생법(養生法,건강증진법), 언어와 생활풍속 등 광범위한 분야에 파급되면서 불교와 유교와 더불어 한민족의 정신세계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도교가 제도와 교리를 갖춘 종교로 큰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여러 민간 풍습이나 신흥 종교 운동등에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60. 도교와 그리스도교의 신앙대상은 어떻게 다릅니까?
"이러한 종교들은 수천 년에 걸친 하느님 추구,불완전하지만 흔히는 매우 진지하고 올바른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하느님 추구를 반향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복음선교」 53항).
도교는 도가 사상을 이론적 기반으로 언어화 시공을 초월하고 우주 만물에 앞선 도(道)를 가장 근본적인 신앙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 도를 인격화하여 삼청(三淸)이라 일컫고 이를 최고신으로 삼기도 합니다. 삼청은 영원히 존재하는 절대자이자 세계의 개창자인 원시천존(元始天尊)과 태극(太極)인 영보천존(靈寶天尊)과 신격화된 노자인 도덕천존(道德天尊)을 가리키기 때문에 외관상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와 비슷한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와는 달리 옥황상제,여러 성신(星神),용왕(龍王),관제(關帝,관우),성황신(城隍神)등 다양한 신을 신봉합니다.
성 프란치스코를 통해서 바라본 생태 영성
성 프란치스코는 그의 삶에서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현존을 모든 피조물 안에서 찬양하고 경탄하였다. 특히 '태양의 찬가'에는 하느님과 모든 피조물을 사랑한 프란치스코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프란치스코는 예술가의 작품을 찬미하듯이 모든 피조물에서 창조주 하느님을 찾아냈다. 주님의 손으로 만드신 피조물에 경탄하고 그 이면에 깃든 생명의 근거와 동기를 지켜보는 것을 즐거워했다."(「2첼리노」165).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에게 나무는 뿌리까지 다 베지 말고 정원구석에 난 풀도 모두 뽑지 말 것이며, 겨울에는 벌을 위해 소량의 꿀도 남겨 두라고 말하고, 동물조차 형제라고 불렀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2첼리노」165; 1코린 12,6).
프란치스코는 '태양의 찬가' 에서 잘 나타나듯이 모든 창조물을 형제자매라고 부름으로써 하느님을 모든 존재의 원천이며,모든 창조물을 가족의 구성원으로 보았다. 그의 영성은 세상(지구)을 하느님의 창조물들이 함께 공유하는 공동의 집으로 인식하는 생태 영성의 핵심을 꿰뚫었다. 그의 가난과 겸손함,열린 마음 그리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은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모든 피조물 안에서 거룩함을 지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생태 영성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소유 없이 자유롭고 가난한 마음 안에서 자기와 다른 모든 것들을 끌어안았다. 길거리의 가난한 이들과 나병 환자나 거지도 모두 하느님의 피조물이며, 돌,식물,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심지어 굽비오 마을에 나타난 사나운 늑대조차 형제라고 부르며,마을 사람들과 화해하고 평화를 잘 지키라고 초대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라는 성서구절(창세 1,31) 을 성인은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그의 삶 안에서 그것들을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여 찬양과 찬미를 드렸던 것이다. 이는 소유없이 살다간 그의 마지막 삶에서도 잘 나타난다. 프란치스코는 죽음을 맞이하며 형제들에게 "나는 내 할 일을 다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할 일을 가르쳐주시길 빕니다."하면서 자신의 알몸을 땅바닥에 눕히게 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이승훈 레오 신부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오월의
작은 풀잎들이
저리도 푸른 것은
그 삶이
맑디맑기 때문입니다.
그 위에 핀
작은 꽃잎들이
저리도 붉은 것은
그 영혼이
곱디곱기 때문입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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