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9년 주보

연중 제28주일 2019년 10월 13일(다해)

모든 2 2019. 10. 13. 22:30

치마부에「성모자와 천사들과 성 프란치스코」

1285-88,프레스코화,320×340cm,아시시,성프란치스코 대성당

 

 

  +  루카 복음 17,11-19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긋해졌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라미아 사람이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의 향기>

 

  과정 안에서의 감사함   - 김광수 요셉 죽동 주임 -

 

  군종 신부 시절에 성탄을 맞아 성탄제를 하기로 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하는 본당을 만들고 싶어 장병들과 군가족 신자들 모두가 함께하기 위한 시간을 갖기로 한 것입니다. 처음으로 하는 성탄 축제이기에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은 연습시간이 일과 이후에 장병들,자매들,형제들 순으로 하다 보니 교육관 위에 있는 제 사제관에선 항상 노랫소리와 쿵쾅거리는 소리가 나게 되었고, 전 제대로 쉴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루빨리 성탄절이 되길 기도했고, 마침내 성탄 대축일 저녁 전 제 자신이 얼마나 복 많은 사람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제일 앞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또한 많은 교우들과 함께 그동안 연습했던 장기를 뽐내며 웃고 즐기는 감사의 성탄, 축복의 성탄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고, 본당 신부로서 우리 성당의 단합된 힘을 볼 수 있었다는 것 역시 크게 감사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수많은 감사 중에 저는 한심한 감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건 이제 쉬는 시간에 소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됨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으니 얼마나 한심합니까? 즉,저는 매 순간 저에게 주어지는 축복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고 결과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나병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께 멀찍이 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라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 곁에 갈 수가 없었던 그들은 어떻게든 예수님께 매달렸던 것이지요. "예수님,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 말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라고 이르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 몸이 깨끗해집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지금 당장 치유되었음을 깨닫게 하지 않고,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에서야 몸을 깨끗하게 하셨을까요? 바로 과정의 중요성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과정보다는 결과에 연연하지요. 이는 예수님을 다시 찾지 않은 아홉 명의 유대인들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치유된 그 순간에 예수님이 없었다는 이유로 찾아가지 않았지요. 하지만 그 과정 전체에는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과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축복에도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사의 행위가 믿음의 기본이 되어 나를 살리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는지 살펴보며 과정 안에서 함께하시는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칩시다.

 

 

 

한국 천주교와 이웃 종교   -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회 편찬 -

 

35. 불교는 어떤 종교입니까?

 

"불교에서는 여러 종교에 따라 이 무상한 세계의 근본적 불완전성을 긍정하고, 신심과 확신으로 완전한 해탈의 경지에 이르거나 아니면 자기 노력이나 위의 도움으로 궁극의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길을 가르친다."(비그리스도교 선언 2항)

 

  불교는 기원전 6세기 무렵 석가 가문의 성자,곧 석가모니 부처인 고타마 싯다르타를 창시자로 인도에서 생겨난 종교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진리를 깨우쳐 해탈한 다음,가르침을 통하여 사람들을 해탈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기원 전후 무렵에는 석가모니불의 지혜에 기초한 자비로써, 모든 살아 있는 것이 구제 받을 수 있다는 대승 불교 신앙이 인도에서 생겨났습니다.

  이 대승 불교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전해졌고, 현재 한국 불교종단협의회에는 조계종,태고종,진각종,관음종,법화종 등 29개 종단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36. 석가모니 부처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부처님은 인류의 위대한 스승 이십니다.'

(교황청 종교간대학평의회,1995년 부처님 오신 날에 불자들에게 보내는 경축 메시지참조)

 

  부처는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 부처를 일컫기도 하지만,본디 일반적으로 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불교에서 부처[佛,붓다]는 기원전 6세기 무렵 불교을 창시한 역사의 석가모니불과 과거, 현재,미래라는 삼세(三世)와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하는 영원하면서 초월적인 힘을 지닌 부처를 가리켜 이르면서도,석가모니불 이외에 신앙의 대상으로 사찰에 모셔진 아미타불, 비로자나불,미륵불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또한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은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부처는 한 분이 아니라 여러분입니다. 부처들의 공통점은 스스로 깨닫고 해탈한 다음,타인을 깨달음의 길로 이끌기 위하여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란 점입니다. 따라서 부처는 초월적 신이 아니라, 선각자로서 제자들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협조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대상이십니다. 마리아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출신이시며, 그 이름은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기름부음받은이, 곧 마지막 날에 온 세상을 다스릴 임금이심을 가리키며 '메시아'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면서 하느님이신 분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모든 인류를 구원해 주셨음을 고백하는 그리스도교의 짧은 신앙 고배이기도 합니다.

 


 

 

백두산에 가고 싶어요

<2018년 백두산 천지>

  

  사회교리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가 있습니다. 강의 때 남북관계에 관해서 말씀드리면서 이렇게 여쭤봅니다.

  "남북 분단 때문에, 혹은 분단국가라서 불편한 점은 뭐가 있으세요?"

  다양한 대답이 나옵니다.

  "군대에 가야해요." "국방비가 많이 들어갑니다." "이산가족들이 생겼고 만날 수 없어요." "어떤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불러요." "우리가 섬나라에 살고 있어요." 평소에 크게 느끼지는 못하지만 생각해 보면 불편한 점이 꽤 많습니다.

 

  사실 국방비나  이산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직접 관련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군대에 가야하는 일이나 해외에 갈 땐 비행기나 배를 탈 수 밖에 없는 현실은 나와 직접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작년 여름에 민족화해위원회에서 백두산에 다녀왔습니다. 물론 중국을 통해서 갔습니다. 함께했던 분들의 공통된 이야기는 "다음엔 북한을 통해서 백두산에 갔으면 좋겠어요"라는 것이었습니다.

  남북대화와 북미대화가 이어지면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삼지연 공항을 통해서 백두산에 가는 일은 조금 미루더라도 금강산과 개성에 갈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10월 15일 월드컵 2차 예선이 평양에서 열립니다.

우리도 경기장에서 12번째 선수로 함께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봅니다.

 

  국가간의 관계는 정부에서 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현실적인 바람들이 모여 정부와 국가가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백두산에 가고 싶다." "기차로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 "북한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런 사소한 바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지는 세상을 빨리 만나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박제준 토마 신부 대전교구 민족화해위원회 -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아야

 

내가

얼마나 작은지

우리가

무엇으로 사는지

 

알 수 있는 것.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