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9년 주보

연중 제27주일(군인 주일) 2019년 10월 6일(다해)

모든 2 2019. 10. 6. 21:09

 

 

 

 

룻소 피오렌티노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1521,패널에 유채,375×196cm,볼테라,시립미술관

 

 

  +  루카 복음 17,5-10


  <너희가 믿음이 있으면!>

 

  그때에 사도들이 주님께,"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너희가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하더라도,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하겠느냐?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를 받을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여라."

 

 

 

  <말씀의 향기>

 

 이 땅의 군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박상언 그레고리오 해병 제9여단 탐라대 주임-

 

  찬미 예수님,오늘은 연중 제27주일이면서 군인 주일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분부를 받은 대로 다하고 나서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여라.' 내가 먼저 나의 선행을 드러내는 것보다,겸손과 침묵 그리고 하느님께서 보상해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살아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몇십 년을 가난하게 살아가면서 어렵게 모은 돈을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내어 놓으신 할머니나 남을 도우면서 넉넉하지 않은 생활을 해나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모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선행을 베푸는 분들이십니다. 그분들의 드러나지 않는 삶이 우리에게 더 감동을 전해주고 그 모습 안에서 우리는 주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때로는 이러한 감동을 주변의 군인들에게서 느낍니다. 지금 제가 있는 곳은 제주도의 '해병 제9여단'이라는 곳입니다. 그리 크지 않은 해병부대이기에 항상 병사들이 바쁘게 지내는 곳이지요. 이곳 병사들은 근무와 훈련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물론 병사들이기에 불평도 투정도 요령도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해병이라는 자부심과 자신들이 해야 할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사명감이 가득한 부대입니다. 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지금 우리나라에 일어나고 있는 안타까운 일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는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부당한 방법으로 타인들의 눈을 속이며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주는 일들입니다. 이러한 일들에 맞서 싸우는 이들은 높으신 장성들이 아닌 대단치 않은,작지만 위대한 보통의 병사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지요. 마치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보통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아가 듯 건전한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이 이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습니다.

 

  저는 군종신부로 지내면서 군복무를 하고 있는 병사들을 만나면 이야기합니다. 군대에 와서 효도하는 방법은 돈을 모아서 선물을 사드리거나 기술을 배워서 잘 써먹는 것이 아니라 몸 건강히 마음 건강히 전역하는 것이라고, 오늘 군인 주일을 맞이하여 특별히 이 땅의 군인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분단국가라는 특별한 상황 안에서 자신들의 원의와는 다를 수 있는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이번 한 주간 국방의 의무에 헌신하는 모든 군인들을 기억하며 그들에게 주님의 특별한 보호와 은총이 내려지기를 함께 기도 합시다.

 

 

 

한국 천주교와 이웃 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히 편찬-

 

34. 민간 신앙에서 금기로 여기는 것을 신자들도 조심해야 합니까?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사도 10,15).

 

  금기는 민간 신앙에서 특정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이며, '터부(taboo)는 위험한 것을 금지하는 강하고 확실한 표시를 뜻하는 폴리네시아어 입니다.

 

  무속의 전통은 깨끗함과 더러움이라는 이원론의 시각에서 더러움, 곧  '부정(不淨)을 타지 않는 것이 제의의 성공과 결부된다고 여겼습니다. 출산을 하는 여성,사람의 죽음,낯선 사람 등은 부정한 것으로 여겨, 집단적 제의에서 배재하였습니다. '기중'(忌中)이라는 표시를 초상집 앞에 써 붙이는 것이나, 죽은 사람의 물건을 태우는 것이나, 상갓집에 다녀온 사람이 집안에 들어오기 전에 그에게 소금을 뿌리는 행위 등은 이러한 금기와 관련된 풍속입니다.

 

  낯설거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물건이나 동물을 보면 '재수가 없다'는 생각이나 '오늘은 며칠이니 어느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는 생각과 같이 때와 방위를 가리는 금기는 일상생활에 확산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부정이 마을 굿을 송두리째 못 쓰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를 '탈이 났다.'고 하거나 '빌미'라고 일컬었습니다. 이와 같이 금기는 공동체 전체에 신중한 몸가짐을 요구하고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민간 신앙의 금기나 터부에 괘념하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은 금기시되는 음식 규정과 제의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였지만,예수 그리스도께서 단한 번의 예물로 사람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히브10,14참조)뒤로 그러한 규정은 효력을 상실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금기나 터부에 마음을 쓰기보다, 하느님과 이웃사랑의 계명에 따른 사랑과 자비의 실천을 더 중요시합니다.

 

 

 

 

녹색 순교자

 

  순교 당할 당시 순교자들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하느님과 복음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죽이려고 달려드는 관헌들과 휘광이의 칼을 거부하지  않고 기쁘게 맞이했을 것이다. 영적인 기쁨이 육신의 고난을 압도한 상태가 순교자들의 마음인 것이다.

 

 오늘의 우리는 '시류와 세태를 거슬러 복음의 기쁨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백색 순교자'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시대는 우리에게 푸른 지구를 살리는 '녹색 순교자'로 살 것을 요청한다.

 

  수십 년 동안 뿌려진 화학농약으로 인해 죽어가는 땅과 거기서 함께 시들어가는 생명들의  신음 소리에 함께 아파하며,그 땅과 생명을 보살피는 농민들이 있다.

 

  이들이 바로 '녹색 순교자'이다. 이들의 처지 또한 초기 교회의 박해상황과 많이 닮아 있다.

  정부로부터 도외시되는 것은 물론이고, 때깔 좋고 일정한 크기로 규격화된 생산물만 기대하는 대다수 소비자들의 성향이 유기농부들에게는  박해의 상황이나 다름없다.

 

 뭇 생명의 근원인 땅을 지키는 일과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의 고귀함을 알아주는 이들이 드물다. 땅이 척박해서 유기농사 짓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땅은 애정을 기울이면 반드시 풍성한 결실로 되갚아 준다. 그러나 그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회가 유기농부들을 박해하고 있다.

  우리 신앙선조들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하여 어렵고 불편한 상황을 감수해 내었듯이 내가 만난 가톨릭 농민회원들은 이 시대가 자행하고 있는  박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땅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주님 주신 소명으로 알고 '녹색 순교자'로 굳건하게 살고 있다.

 

   -강승수 요셉 신부 대전가톨릭우리농촌살리기 운동본부 -

 

 

 

 

끝자락에는

반드시

붙잡고 싶은 게

있다지요.

 

지금

옆을 스치는

그것 말입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