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9년 주보

연중 제24주일 2019년 9월 15일(다해)

모든 2 2019. 9. 15. 21:30

 

 

 

 

베아토 안젤리코「화형에 처해진 고스마와 형제들」

1438-40,37×46cm,더블린, 아일랜드 내셔널 갤러리

 

 

 

 

  +  루카 복음 15,1-32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이 있었다.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 큰 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말씀의 향기>

 

  아버지의 품으로   -김동훈 안토니오 성거산성지 전담-

 

  성경은 하느님은 어떤 분이시고,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둘 간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하느님은 당신 닮은 모습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아울러 자기들 뜻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의지까지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분을 잊고 방탕의 길을 걷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꽤나 유혹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욕망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탕진하면서까지 추구해도 끝없는 공허함만을 불러올 뿐입니다. 결국 그 끝을 보게 되었을 때, 곤궁해서 굶어 죽게 되어야만 하느님께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아! 아버지의 집에는 음식이 넘쳐나서 그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아도는데,나는 여기서 굶어 죽게 되었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아버지께 돌아가서 일꾼으로라도 써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가산을 미리 챙겨 떠나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다 탕진한 아들이지만,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라고 생각하십니다. 아니, 이전의 철모르던 아들은 죽고 이제 아버지의 사랑을 아는 아들로 되살아 돌아왔으니, 기쁘게 아들을 맞아들이고 잔치를 벌이십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든 어떤 길에서 무슨 방황을 하든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돌아가야 할 곳은 하느님 아버지의 집이어야 하는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 짧은 이야기는 어쩌면 성경 전체를 요약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이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품에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품을 떠나 죄를 짓고, 그러다가 죽게 생겼으면 다시 돌아오고... 아마도 그렇게 반복되는 것이 우리의 생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정확하게 알면 된다는 것이지요. 아버지는 내가 잘못을 했어도 무슨 잘못을 했는지 묻지도 않으십니다. 무조건 용서하시죠. 하느님께서는 그런 분이십니다. 우리들을 언제나 따뜻이 맞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들 때문에 방황하고 있다 하더라도, 죄절하거나 실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하느님을 향해 돌아가면 살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면 되는 것이죠. 쓴맛을 보면 무엇이 더 소중하고 좋은지 알수 있게 되지요. 아버지의 품을 떠나 본 이들이 그분의 품이 얼마나 따스하고 좋은지 알게 됩니다. 지금 성령께 용기를 청하시기 바랍니다.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로 발길을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먹을 것이, 그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을 만큼 풍족합니다.

 

 

한국 천주교와 이웃 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회 편찬-

 

30. 무속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러한 종교들은 수천 년에 걸친 하느님의 추구,

불완전하지만 흔히는 매우 진지하고

올바른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하느님 추구를 반향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복음 선교」,53항).

 

  무속인 또는 무당은 무(巫)의 제사장입니다. 무는 일반적으로 무속으로 알려져 있고, 이를 무교(巫敎)로 일컫는 학자도 있습니다. 무(巫)는 '하늘( ̄)과 땅(_)을 잇는 기둥(|)사이의 춤을 추는 두사람(人人)'을 가리킵니다. 굿판을 통하여 신령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인간의 한(恨)을 신령에게 알려 그것을 풀며 공동체 안에서 화해와 화합을 이루는 것이 무속인의 본디역할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신병(神病)을 겪은 뒤, 내림굿을 통하여 무당이 되는 강신무와 대대로 병을 고치고 점을 치며 무업(巫業)을 이어가는 세습무 두 종류의 무속인이 있습니다.

  무는 고대에서 국가 차원의 제례를 담당하기도 하였고, 오랫동안 마을과 서민들의 길흉화복을 맡고 있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무는 우리나라의 오랜 종교 문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지만, 현세적 이익에 대한 바람을 달래 주는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미신이나 우상숭배의 요소도 가지고 있습니다.

  돈벌이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이비 무당 때문에 발생하는 폐해도 많지만,많은 무속인이 '대한경신연합회'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들을 종교인으로 분류합니다.

  정통  무속인은 민간 신앙의 '제사장',또는 인간문화재와 같이 '민족문화'의 계승자로 존중 될 수 있습니다.

 

31. 무속인은 무엇을 섬깁니까?

 

"다른 종교 전통들에 개방적이고 긍정적으로 접근할 때에도

그들과 그리스도교 계시사이에 있을 수 있는 모순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대화와선포」31항).

 

  무속인들은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여러 신령들을 섬깁니다. 이들은 자연의 힘을 의인화한 신령에서부터 인간의 생로병사의 중요한 영역을 담당하는 신령에 이르기 까지 넓은 영역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무속은 전통 사회 안에서 고유한 역할을 담당하였고,비록 미신이나  우상 숭배의 요소를 내포한다 할지라도 종교적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자신의 신앙을 견지하지만, 그렇다고 무속인을 비하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느님 아닌 우상을 섬기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에,다른 이들을 판단하기에 앞서 자신의 신앙을 주의 깊게 성찰해야 합니다.

 

 

 

먹는 만큼 남깁니다

 

 

  이른 아침 마주하는 풍경이 있습니다. 초록색 혹은 분홍색 비닐봉지로 쌓아 놓은 쓰레기 더미들입니다. 쓰는 만큼 버려지고 먹는 만큼 버려지는 것 같습니다. 자원도 그렇습니다. 쓰는 만큼 폐기물은 발생합니다.핵발전에 대한 토론회 중에 들은 질문입니다. "다른 자원은 사용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당대의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핵발전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지금 안전하다는 것이 항구적으로 안전한가?" 그리고 "핵발전 후 발생하는 폐기물을 지속적으로 안전하게 보관 가능한가?"

 

  원자력연구원에 보관된 핵폐기물은 사용후핵연료 1699개 봉과 함께 3만 드럼입니다. 그리고 연구용원자로는 삼중수소가 발생하는 시설입니다. 150만 인구가 밀집된 대전에 많은 양의 핵폐기물이 있는 이유는 대부분 핵 관련 연구에 따른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분장으로 송치하여야 하지만 예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서울 TRIGA MARK Ⅰ,Ⅱ연구용원자로 해체 후 폐기물을 대전 원자력연구원에 옮겨 놓았습니다. 많은 분은 이 소식에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원자력연구원은 방사성폐기물 저장소가 아닌 연구시설이기 때문입니다.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 있는 핵폐기물을 지금처럼 임시시설에서 장기 보관하면 일부는 공기 중으로,일부는 지하수로, 일부는 무단으로 배출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서 핵폐기물이 계속 생산되는 파이로프로세싱과 같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연구가 지속되는 경우 지역의 갈등요소가 될수 있으므로 원자력연구원과 지역이 공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될까 우려됩니다. 따라서 폐기물을 생산하는 이러한 연구는 지양하고 방사선융복합응용연구 등 좀 더 미래 지향적인 연구를 통해 지역 일자리도 많이 창출해서 지역과 원자력연구원이 잘 공존할 수 있길 희망합니다.

 

  삶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지금 이 상태로의 지속가능한 발전은 불가능합니다. 지금처럼 살면 세상은 쓰레기로 가득 찰 것입니다. 삶의 지속을 위해서는 순환이 가능한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즉 좀 더 불편해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전교구 생태위원회는 9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생태적 삶으로의 전환을 위한 집중기간을 정하고, 개별 혹은 공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4가지를 제안했습니다. 즐거운 불편에 함께 참여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대전원자력연구원에 호소드립니다.

 

  ▲ 자체 보간 중인 핵폐기물의 조기 제로화  ▲ 인구밀집 지역에서 핵폐기물을 생산,취급하는 연구 지양  ▲  방사선융복합연구 등 미래형 실용연구에 집중해 주십시오. 그래서 하느님께서  주신 공동의 집을 지켜나가는데 함께 노력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 이정윤 임마누엘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고문 -

 

 

 

 

 

한 꽃송이

 

피는

간절한 기다림

긴 참음

 

툭 열림

 

순간.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