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9년 주보

성령 강림 대축일 2019년 6월 9일(다해)

모든 2 2019. 6. 9. 22:00

 

 

 

카라바조「집필하는 성 마태오」

1602,296cm, 성 루이지 프란체시 성당,로마

 

  + 요한 복음 20,19-23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말씀의 향기>

 

  오소서 성령님,

  주님의 빛 그 빛살을 하늘에서 내리소서!  -홍성민 미카엘 성령쇄신봉사회 보좌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을 교회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이 제자들에게 내려오심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성령의 힘으로 사도들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선포하게 됨을 기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날을 교회의 탄생일이라고도 부릅니다.

 

   성령께서 행하시는 중요한 활동 중에 하나는 바로 일치입니다. 성령께서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의 일치를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중 첫 번째는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일고, 두 번째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일치입니다. 성령께 힘입지 않고 우리는 누구도 하느님을 아빠,아버지라 또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진실되이 고백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첫 인간의 죄, 바로 하느님에 대한 불순종의 죄를 없애시고 우리가 하느님을 내 삶의 주인이며 중심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이렇게 성령은 하느님과 인간을 일치시킵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인간과 인간,즉 하느님의 자녀들을 일치시킵니다. 죄로 인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또한 서로의 관계 안에서도 일치를 잃게 됩니다. 이것은 원죄 이후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무엇보다 바벨탑의 이야기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창세기의 바벨탑 이야기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잃고 길 잃은 욕망의 노예로 살아가는 인간이 결국에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 강림 사건 때 제자들이 선포하는 말은 모든 이가 각자의 언어로 알아듣게 됨으로써 성령께서 모든 인간들을 서로 일치시키시는 분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하느님과 일치시키시는 아버지의 영,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세례를 통해 그리고 또한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을 받고 또 성령을 통해 굳세어졌습니다. 이제 우리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우리 안에 오신 성령께서 온전히 활동하실 수 있도록 능동적으로 그 자리를 내어 드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각자의 삶 안에서 우리는 다양한 방법과 방식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하느님과,그리고 이웃들과 온전히 일치시키는 성령의 활동이십니다. 오소서, 성령님, 믿는 이들의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그들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한국 천주교와 이웃 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히 편찬-

 

  3. 우리나라에는 어떤 종교가 있습니까?

 

  "아시아는 영적인 것이 높이 존중되는 대륙이며

  종교적 감각이 천부적으로 깊이 새겨진 대륙입니다.

  이 소중한 유산을 보전하는 것은 모든 이들의 임무 입니다.

  (요한 바오로2세, 아시아백성을 위한 담화,5항,1981년 2월 21일)

 

  2015년 인구 총조사에서 우리나라 4천9백만 명 가운데 43.9%는 종교가 있다고 응답하고, 56.1%는 종교가 없다고 응답하였습니다. 종교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그리스도교(개신교와 천주교),불교, 유교,원불교,천도교,대종교 등을 자신의 종교로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종교가 없다고 응답한 이들을 모두 초월적 존재를 거부하는 무종교주의자로 분류할 수는 없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전통 종교로 자리한 무속과 유교,불교, 도교의 정신과 가치가 사람들의 마음에 큰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최근 국제적 인구 이동과 맞물려 이슬람교도 우리사회에 점차 알려지고 있습니다.


4. 인류를 구언하시려는 하느님의 계획은 여러 가지입니까?


   "하느님께서 모든 일류를 온 땅 위에 살게 하셨으니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모든 민족의 기원은 하나이고, 그 궁극 목적도 단 하나 곧 하느님이시다" (비그리스도교 선언 1항)


  세계와 우리나라에는 여러 종교가 공존하고 있지만, 가톨릭 교회에서는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고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과 일치하셨으며,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다른 이들의 종교 생활 안에도 활동하신다고 가르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그분의 선하심과 섭리에서 제외되는 이들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온 인류의 유일한 기원이시고 인류가 지향하는 목표이십니다. 인류 안에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인류는 하나이고 그를 위한 하느님의 구원계획도 하나입니다.

 

 

 

 

한 마디나 백 마디나

   어느 마을에 말이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늘 말 때문에 오해가 생겨 하루도 마음이 편치 않자 어느 날 중대한 결심을 합니다.


   "앞으론 어떤 말도 하지 말고 입을 꼭 다물고 살아야지..."
   같은 동네에 거꾸로 말을 한 해도 너무 안 해서 사람들로부터 자주 오해를 받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사건건 오해로 인한 상처를 입자 그 사람도 어느 날 결심을 합니다.


   "앞으론 일단 생각나는 대로 무조건 먼저 말을 많이 해야지.."
   그런데 말 많던 사람이 갑자기 말을 안 하니 오히려 더 많은 오해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말수가 적던 사람도 갑자기 수다스러워지니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이 더 커졌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인 어르신을 찾아뵙고 도대체 어찌해야 할지 조언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어르신은 그들의 하소연을 한참 동안 들은 후에 이렇게 답하십니다.


   "상대방과 나누려 하는 빵이 있다면 그것이 한 개이든 백 개이든 다툼이 없다. 마찬가지로 상대방과 마음을 나누려 한다면,한 마디나 백 마디나 말이 많고 적음엔 문제가 없다."


   생각과 말과 행위 중, 실행활에서 인간관계에 가장 자주 그리고 직접적으로 문제가 되는 건 아마도 '말'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하고 돌아온 날엔 괜한 이야기를 한 건 아닌지 후회가 되고, 침묵만 지키다가 돌아온 날엔 한마디라도 해 볼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남곤 합니다. 하지만 이젠 말의 많고 적음에 연연하지 않으렵니다.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고자 하는 것에 부끄러움만 없다면 그 누구와 어떤 말을 해도 기쁜 날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아침은 늘

창조(創造)입니다.
풀잎에 이는

바람에도
정성을 다해

맺히는 이슬에도
깊이 머리 숙여

고맙습니다.


글.그림 이순구 (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