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9년 주보

부활 제6주일(청소년 주일)2019년 5월 26일(다해)

모든 2 2019. 5. 26. 22:00

 

 

 

카라바조「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하는 베드로」

1600~1601년,230×175cm,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로마

 

 

  +  요한 복음14,23-29


  <성령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보호자,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말씀의 향기>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오종진 베드로 청소년사목국장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고 하시며 제자들에게 당신의 평화를 건네십니다. 청소년 주일인 오늘,청소년들의 상황에 이 말씀을 조용히 비추어 봅니다. 과연 우리가 청소년들에게 건네는 평화는 어떤것일까요? 우리는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라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행복하게 살려면 충분한 능력을 갖추어야 하고,그래서 너를 위해 이야기하는 것야" 라며 성적을 강조하고,아이들의 부족함을 나무랍니다. 우리가 '사랑하기 때문에 건네는 이야기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이 안에는 세상이 주는 평화를 얻는 방법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주는 평화를 얻기 위해 내달릴수록 아이들은 지쳐갑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보는 부모님의 마음도 지쳐갑니다.  평화를 원하면서 정작 평화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당신의 평화를 건네시며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을 보며 왜 마음이 산란해지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세상의 방식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보는 것입니다. '또 성적이 떨어진 녀석,책임감도 없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반항만 일삼는 녀석'으로 아이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성적이 떨어져서 속상하고, 이것밖에 되지 않는 자신이 한심해 보여 아파하며 좌절하는 아이들의 마음, 잘해보고 싶은데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아 답답해하고 두려워하는 아이들의 마음,늘 혼날 일만 생기는 상황이 원망스럽고 짜증나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방황하는 아이들의 목마름을 있는 그대로 만나줄 때,우리는 아이들에게 좌절과 상실이 아닌 희망과 위로를 건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평화"를 건네는 방법이지요. 모든 아이들의 마음 안에는 잘하고 싶고, 자신의 빛을 드러내고 싶은 아름다운 마음이 있습니다. 단지 그게 마음처럼 잘 안돼서 속상하고,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에 지쳐가고 있을 뿐이지요. 아이들의 잘못,어리석은 태도를 나무라기 전에 따뜻한 손을 먼저 내밀어 보는 건 어떨까요?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와 그들의 어리석음을 나무라셨던 게 아니라,당신의 위로와 평화를 건네주셨던 예수님처럼 말이지요.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십시오   -교황 베네딕토 16세-

 

  13.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가까이 할 때 평화와 고요,그리고 새로운 활력의 충전을 경험하게 된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상호성이 존재합니다. 피조물을 돌보면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피조물을 통하여 우리를 돌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면 자연을 절대화하거나 인간보다 더 중시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교회의 교도권이 생태중심주의와 생물중심주의로 촉발된 환경 개념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는 이유는 그러한 개념이 인간과 다른 생명체간의 정체성과 가치의 차이를 없애버리기 때문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의 "존엄"에 대한 이른바 평등주의적 관점을 명분으로 한 그러한 개념은 인간의 정체성과 탁월한 소명을 말살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또한 그러한 개념은 인간 구원의 원천을 순전히 자연주의적 차원에서 이해된 자연에서만 찾는,새로운 우상숭배에 물든 새로운 범신론에 빠지게 됩니다. 한편으로 교회는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피조물을 책임지는 청지기와 관리자의 역할을 맡기시며 당신의 작품에 새겨 넣으신 "원칙"을 존중하면서 이 문제에 균형을 갖춘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물론 그러한 역할을 남용해서는 안 되지만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능력과 기술을 절대화하는 반대 입장도 자연뿐 아니라 인간 존엄 자체도 심각하게 공격하는 것이 됩니다.

 

  14.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십시오. 모든 사람이 하느님과 인간과 피조물 전체의 불가분의 관계를 깨달으면 선의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평화는 더욱 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 계시의 빛과 교회의 전통에 충실하여 저마다 여기에 공헌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부의 창조 사업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만물을"(콜로 1,20)하느님과 화해시키신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의 빛으로 우주와 그 놀라운 장관을 바라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에게 거룩한 영을 보내시어 역사의 과정을 이끄시고 구세주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시는 날을 앞당기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날 정의와 평화가 영원히 머무는 "새 하늘과 새 땅"(베드3,13)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하여 자연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의무입니다. 환경 보호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의무입니다. 환경 보호는 우리가 새롭고 조화로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절박한 과제입니다. 또한 환경 보호는 모든 이를 위한 더 나은 미래의 전망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 주는 가장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세계의 지도자들과 인류의 미래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피조물의 보호와 평화 건설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는 모든 신자들이 전능하신 창조주이시며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려,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라는 절박한 호소가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미소 열쇠

 

 

  휴대폰 케이스를 새로 구입하기 위해 진열대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데 화사한 노란색 케이스 하나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구입하려 하자 걸림돌이 하나 생겼습니다. 노란색도 무척 튀어 보이는데, 그 케이스에는 귀여운 캐릭터 그림이 크고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점엔 나이와 관계없이 캐릭터 상품을 찾는 사람이 많으니 전혀 부담 갖지 말라는 매장 주인의 말에 용기를 내어 결국 과감하게 그 휴대폰 케이스를 구입했습니다.

 

  그 후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과 처음 만났을 때,테이블 위에 노란색 휴대폰 케이스를 꺼내 놓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밝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을 건넵니다.

 



   
  "이거 직접 사셨어요?" "선물 받으신 건가요?" "너무 귀엽네요. 어디에서 사신 거예요?"
 
  순식간에 첫 만남의 긴장과 어색함이 미소 하나로 사라지고 휴대폰 케이스 하나 때문에 즐거운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휴대폰에 캐릭터가 그려진 상품이 어째서 더 비쌀수밖에 없는지 알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하고 마음을 열게 하는 것에는 특별한 가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물건에는 유독 캐릭터 상품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그 캐릭터들은 세상 사람들과 미소로 소통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담겨있는 열쇠인지도 모릅니다.

 

  어른들이 그 열쇠를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읽고,미소로 반응하며,따뜻한 대화를 이어나간 다면,그 날이 아이들에겐 그 어떤 날보다 행복한 하루로 기억 될 것입니다. 청소년 주일입니다. 오늘 하루라도 아이들과 함께 웃는 그런 축복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주님께서 주신 평화를

세치의 혀로

혼돈하게 하는

 그들에게

이 아침에는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기를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