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9년 주보

부활 제 4주일(성소 주일) 2019년 5월 12일 (다해)

모든 2 2019. 5. 12. 17:30

 

 

 

 

로베르 캉팽「목수 요셉」

1424,129×64.50cm,메트로폴리탄 미술관,뉴욕

 

 

  + 요한 복음,10,27-30

 

  <나는 내 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으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말씀의 향기>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요한 10,17)   -이의현 베드로 성소국장

 

  오늘은 성소 주일입니다.

  우리는 매년 부활 제4주일을 성소 주일로 지내며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거룩한 부르심의 삶이 무엇인지 성찰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생활하는 것이 그 부르심에 합당한 것인지 생각합니다. 또한 성소 주일은 특별히 성소가 증진되도록 기도하고 노력하기를 다짐하는 날입니다. 사제, 수도자, 선교사 성소가 날로 줄어드는 이 때에 우리는 하느님께 많은 젊은이들이 세상의 소리보다 하느님의 음성에 더욱더 귀 기울여 거룩한 성소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매년 성소 주일에 들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착한 목자와 그 목소리를 알아듣고 따르는 양들과 같은 우리들...

 

  양 떼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를 때 파란 풀밭에서 배부르고 안전하듯, 주님의 목소리를 따라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 또한 생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양들은 눈이 좋지 않아 귀가 발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듣는 것에 예민하고 집중하게 됩니다. 양들은 주인의 목소리에 집중하며 살다보니 눈앞에 먹을 것이 생기고 이리떼의 공격에서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제 양들은 주인의 목소리를 알뿐더러 그 주인을 믿고 자기 생명을 맡기게 됩니다. 지금 성당에 와 있는 우리 또한 하느님을 믿어 기쁘고 행복한,그래서 형용하기 어려운 영적인 생명력을 느끼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신학생 시절의 일화입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기숙사에 올라와 화장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누군가 복도에서부터 조금은 급한 발걸음으로 화장실에 들어서더니 제 옆 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 귀로 들은 건 그 친구의 발걸음 소리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복도에서부터 들리던 발자국 소리, 화장실 문을 다급히 열고 닫는 소리로 저는 그 친구가 누군지 알았습니다. "00야!" 그러자 옆 칸에서 "어떻게 알았어? 나 한 마디도 안 했는데?"  "이 친구야,우리가 함께 생활한 게 몇 년인데..."오랜 시간 함께 기도하고, 공부하고, 먹고, 놀다 보니 사소한 발걸음 소리지만 소중한 한 사람을 알아보는 귀한 체험이 됐습니다.

 

  하느님의 음성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많은 잡음들도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주님 음성에 섞여 들려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과 눈을 언제나 하느님의 시선으로,우리의 귀를 언제나 하느님의 음성에 기울이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많은 잡음들이 있다 하더라고 하느님께 귀기울이는 습관을 들일 때 우리는 하느님이 각자에게 주신 성소를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항상 나를 불러 주시고 지금 함께 있기를 원하십니다.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십시오  -교황 베네딕토 16세-

 

11. 환경의 황폐화 문제가 사회와 환경,나아가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지속될 수 없는 우리의 생활 양식과 현재의 생산과 소비 양식을 반성하도록 촉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진선미의 추구가,그리고 공동 발전을 위한 다른 사람들과의 친교가 소비와 저축와 투자를 결정하게 되는" 새로운 생활 양식에서 나오는 진정한 시각의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평화 교육은 개인과 가정과 공동체와 국가의 담대한 결정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환경을 보호하고 돌볼 책임이 있습니다. 이 책임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보조성의 원칙에 따라 모든  사람이 개별 이익을 앞세우지 말고 제 자리에서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 생태학"을 존중하는 생태적 책임을 확산시키기 위해 적극 헌신하는 현대 시민 사회의 여러 단체와 비정부 기구는 의식 고취와 교육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역시 이와 관련하여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모델을 제시할 책임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환경에 대한 관심은 세상을 바로보는 폭넓은 세계관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국가 이기주의를 넘어서 언제나 모든 민족들의 요구에 열려 있는 전망을 향해 나아가는 책임 있는 공동 노력을 촉구합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 할 수 없습니다. 지구의 어느 곳에서 벌어지는 황폐화든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개인과 사회 단체와 국가의 관계는 인간과 환경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진리의 존중과 "진리 안의 사랑"의 특징을 지녀야 합니다. 이러한 넓은 맥락에서 우리는 국제 공동체가 점진적인 군비 축소와 핵무기 없는 세상을 보장하는 노력을 기울이도록 촉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핵무기의 존재만으로도 지구의 생명과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지속적인 온전한 발전이 위협을 받습니다.

 

12.  교회는 피조물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창조주 하느님께서 모두에게 주신 선물인 땅과 물과 공기를 보호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류를 자멸에서 구해내기 위하여 공공 생활에서 그 책임을 행사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의 황폐화는 인류의 공존을 이루는 문화적 양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결국 "'인간 생태학'이 이 사회 안에서 존중 받을 때, 환경 생태학도 혜택을 받습니다." 젊은이들이 가정과 사회 전체 안에서 자신을 존중하도록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환경을 보호하라고 요청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연이라는 책은 하나이고 나눌 수 없는 것으로 환경뿐만 아니라 개인과 가정,사회 윤리도 포괄합니다. 환경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개인은 물론 타인과의 관계를 모두 고려하는 인간에 대한 의무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저는 생태적 책임 의식을 더욱 증진하기 위한 노력을 기꺼이 격려합니다. 이 책임은 「진리 안의 사랑」에서 언급한 것처럼 참다운 "인간 생태학"을 수호하여 모든 단계와 상황에서 인간 생명의 불가침성, 인간의 존엄,인간이 이웃 사랑과 자연 존중을 배우는 가정의 고유한 사명을 강력하게 재확인할 것입니다. 사회의 인간 유산을 수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의 유산은 자연 도덕률에서 나오고 그 일부를 이루는 것으로 인간 존중과 피조물 존중의 근거가 됩니다.

 

 

 

들었다면 돌아보라

 

 

  어린 시절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을 때,담벼락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는 놀이의 흥을 깨기에 충분했습니다. "얼른 와서 밥 먹어~!!!"

   분명히 귀로 들었건만 조금이라도 더 놀고 싶어 못들은 척 미적거리다 보면,마치 그 모습을 보고 계신 것처럼 엄마는 바로 또 부르십니다.

 

  신기한 건 집에 들어가면 갑자기 마음이 확 바뀐다는 것입니다. 갓 지은 밥 내음 때문입니다. 그 향긋한 냄새를 맡으며 진즉에 엄마 말을 들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맛있는 밥을 서둘러 먹다 보면 물을 가지러 가신 어머니가 부엌에서 다시 한 번 외치십니다. "천천히 먹어,그러다가 체할라!"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나를 위한 식탁을 마련하며,나와 함께하려는 분이 계시다는 건 참으로 든든하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입니다.

 

  어른으로 성장해 가면서 우리는 또 하나의 든든한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서도 종종 돌아보지 않습니다. 세속적인 놀이와 재미에 빠져 시간을 조금씩 지체하다가 결국 주님의 곁에서 점점 멀어져 갑니다.

 

  오늘은 성소 주일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한 순간이라도 더 빨리 주님께서 마련하신 식탁을 향해 서둘러 가야 할 때입니다.

 

  그분이 주신 양식으로만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고,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만 우리가 후회 없는 길을 걸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꽃비 내리면

연둣빛 사이로 

하얗게 떠오르는

 웃음꽃 몇 송이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