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9년 주보

주님 부활 제5주일 2019년 5월 19일(다해)

모든 2 2019. 5. 19. 21:30

 

페루지노 「천국의 열쇠를 받는 베드로」1482,시스티나 소성당,바티칸

 

 

  + 요한 복음 13,31-33.34-35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방에서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얘들아,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말씀의 향기>

 

  소공동체! 말공동체!  - 김경호 바오로 보령동대동 주임

 

  "소공동체? 소공동체 운동?? 소공동체를 직접 접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교구 시노드에서 조사와 분석을 담당하며 소공동체에 대해 교구 사제들과 교우들의 의견을 들어 본 정도였습니다. 본당 신부로 처음 부임한 사목지는 전임 신부님께서 소공동체를 잘 일궈 놓은 본당이었습니다. 주님 말씀을 중심으로 친교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며 새로운 복음화를 지향하는 소공동는 제게 낯설고 새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 시대 이전부터도 사랑이라는 말은 있어 왔고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왔습니다. 가장 큰 계명을 물어 보던 율법학자에게 예수님께서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며 하느님 사랑을,레위기 말씀을 인용하며 이웃 사랑을 말씀하셨듯이,사랑 자체가 새로운 계명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구원의 참빛을 전해 주시며 새하늘과 새 땅을 열어 주신 부활의 주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랫동안 지켜 오던 토요일의 안식일을, 당신의 부활로 일요일의 주님의 날로 새롭게 바뀌어지게 하신 주님이셨습니다. 이런 주님께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며 인간 자신에게 중심을 둔 사랑을."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5)며 사랑의 시작과 중심을 당신께 두게 하셨습니다. 새로운 사랑 실천의 계명이었습니다.

 

  신앙과 사랑 실천의 삶에 사람과 환경을 탓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간다면 옛 계명에 갇혀 있는 이들입니다. 내가 해 준만큼 받지 못하더라도 인내로이 사랑하려 하고, 고통과 피해를 준 박해자와 원수같은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용서하려 한다면,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새 계명으로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교회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 하는 부활의 평화가 함께하는 소공동체가 있습니다. 교회에는 생각과 입을 모아 남에 대한 판단과 험담을 하며 자기들의 뜻과 영광을 추구하려 하는 불안이 맴도는 말공동체도 있습니다. 내 안에서,공동체 안에서 이스카리옷 유다가 나가고 나면 주님의 이 말씀이 들어오고 실천되기를 기도드려 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며,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빵 함께 먹을 사람

 

 

  가톨릭 성가 가운데 '생명의 양식'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성가 503번인 이곡의 원제목은 라틴어로 '빠니스 엔젤리쿠스'(Panis Angelicus)라고 합니다.

 

  여기서 Panis 는 '빵'을 뜻하고, Angelicus는 '천사' 또는 '생명'을 의미한다고 하는데,흔히 '생명의 양식'으로 번역되어 영성체성가로 자주 불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회사'를 나타내는 '컴패니'(Company)와 '친구'를 의미하는 '컴패니언'(Companion)에도 빵을 뜻하는 'Panis'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Company와 Companion에서 com은 '함께'라는 뜻이고 pany와 panion은 빵을 뜻하는  panis에서 파생되었다고 하니, 이들 단어의 의미가 새삼 마음 깊이 와닿습니다.

 

  결국 회사라는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함께 빵을 나누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친구란 역시 '함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라고 요약될 수 있습니다.

 

  만약 Company라는 간판 아래 자기 혼자만 빵을 독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다면 그곳을 진정 회사라고 부르기는 힘들 것입니다.

 

  절친한 Companion이라면서 빵이 생겼을 때 혼자 먹기 위해 서둘러 빵을 감추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친구라고 인정하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갈수록 복잡하고 삭막한 인간관계에 지쳐가면서 혼자인 게 더 편하고, 혼자라서 더 즐거운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빵이 부족할 때의 피곤함보다, 빵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이 부족할 때 더 깊은 좌절을 맛봅니다. 빵 한 조각 생기면 한 사람쯤 생각나는 그런 기쁜 날이 우리의 내일이길 기도합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하늘을 나는 나비의

풀꽃 같은

참 예쁜 영혼들을

사랑하리라.

 

오늘의 희생으로

내일의 맑은 혼을 깨우는

5월의 그들을

사랑하리라.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