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9년 주보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2019년 6월 2일(다해)

모든 2 2019. 6. 2. 22:30

 

미켈란젤로 「바오로의 회심」(부분) 1542~45년, 프레스코,바오로 3세 경당,바티칸

 

 

  +  루카 복음 24,46-5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강복하시어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그리고 보라,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

 

 

 

  <말씀의 향기>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는냐?   -한광석 마리요셉 교구장 비서실장 겸 홍보국장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봅니다. 바쁜 일정에 쫒기고 있을 때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 작은 여유를 느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들도 같은 하늘을 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올라 가시는 동안 하늘을 유심히 바라봅니다(사도 1,10),만약 우리가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면 우리도 넋을 놓은 사람처럼 하늘을 보았겠지요. 경외감과 함께 허전함과 두려움을 가득 안고서 말입니다.

 

  땅에 발을 딛고 하늘을 바라보는 이 장면은 '주님 승천 대축일'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은 좌절이나 절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시듯,이제 성령을 가득 안고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1980년부터 주님 승천 대축일을 '홍보 주일'로 지내는 것도 이러한 맥락입니다.

 

  한 편, 우주망원경으로 관찰된 수많은 은하계의 존재와 나비모양의 은하,양파껍질처럼 보이는 은하 등의 다양한 모습은 황홀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또한 블랙홀 안으로 별들이 빨려 들어가 사라지고 새로운 별들이 탄생하는 장면은 신비로움을 안겨줍니다. 이러한 자료를 보며 "천사들과 예수님이 계시는 곳은 어디냐"며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주의 기원과 종말에 관한 몇 개의 학설은 수천 년 동안 다양한 문화를 통해 기록된 하늘에 대한 경외심을 제거하지 않습니다. 환경 변화에 따라 미생물의 복제양상이나 물고기의 모습이 달라져도 생명의 신비가 우리 마으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생명에 대한 경외는 한 마리 작은 새라도 마음을 열고 체온을 느끼며 교감을 나누는 과정에서 마음 가득히 스며듭니다.

 

  "저 하늘에 예수님이 올라갔다는 거짓말을 믿느냐?"는 세상의 눈총은 점점 따가워집니다. 그러나 이 눈총은 우리 안에 살아계시며 우리를 통해 당신의 현존과 사랑을 드러내시는 주님 손을 잡은 우리 마음을 흔들지 못합니다. 그분과 함께 있을 때,하늘을 보며 '그 약속'에 궁극적 희망을 품고,'지금 여기'에서 그 사랑을 땅 끝까지 증거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는 질문을 마음에 품어봅니다. 다가오는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우리 일상과 자연 안에 깃든 하느님의 신비와 사랑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한국 천주교와 이웃 종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히 편찬-

 

  1. 종교한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인간의 마음을 번민하게 하는 인생의 풀리지 않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종교에서 찾고 있다."

(비그리스도교 선언 1항)

 

'인간이란 무엇인가?' ,  '무엇 때문에 사람은 고통을 겪는가?' ,  '우리의 생을 에워싸고 있는 궁극의 신비는 무엇인가?' ,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이와 같이 쉽게 풀리지 않는 인생의 물음을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고괴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느님이나 절대자 또는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고 그 궁극적인 의미를 깨닫습니다. 인간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그 너머의 초월적 가치를 추구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종교는 이와 관련된 인간의 사회적 문화적 활동입니다.

 

  2. 세계에는 어떤 종교가 있습니까?

 

"날로 그 숫자가 불어나고 있는 20억의 사람들은 생활 문화의 확고한 결속,옛 종교전통,견고한 사회관계의 유대로 거대하고 독특한 집단을 이루고 있으며,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했거나 거의 듣지 못하고 있다."(선교 교령10항)

 

세계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습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대략 73억 명의 세계 인구 가운데 어떤 종교든 신앙을 가진 이들은 84%이고,초자연적 존재를 믿지 않거나 무신론을 따르는 이들은 16%라고 합니다. 종교 가운데 하느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며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는 유다교(0.2%)와 그리스도교(31.2%)와 이슬람교(24.1%)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도를 중심을 발생한 힌두교(15.1%)와 불교(6.9%)을 믿습니다. 그리고 큭히 동아시아에서 유불선의 영향을 받은 민간 신앙(5.7%)의 비중 또한 적지 않습니다.

 

 

 

 

 

신김치가 신기루 될까 봐...


 

 

  저는 김치 중에 겉절이보다 푹 익은 신김치를 좋아합니다. 집에서는 가족들이 제 김치 성향을 잘 알기에 문제가 없는데,음식점에 가게 되면 김치 때문에 가끔 불편을 겪습니다.

 

  하지만 단골 식당에 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자주 가다 보니 식당 점원 분들과 친분이 쌓이고 그러다보면 제 김치 성향까지 간파되어 신김치를 종종 내어 주시기때문입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런 일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키오스크'(kiosk)라는 새로운 점원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키오스크는 모든 정보를 사람의 개입 없이 처리해 주는 무인 단말기를 의미합니다.지하철역에서 흔히 접했던 이 단말기를 음식점에서 만나게 될 줄 저녀 예상치 못했습니다.

 

  요즘 음식점에 가보면 점원은 없고 대신 사람들이 키오스크 앞에서 음식을 고르고 손가락으로 화면을 몇번 누르면 주문과 함께 바로 결제까지 마무리되는 풍경을 종종 보게 됩니다.

 

  기계를 이용한 효율성은 좋지만 키오스크가 과연 신김치를 좋아하는 내 성향까지 파악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조금은 서글퍼집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교환되는 정보에는 효율성만 담기지 않습니다. 관심,배려,호감은 기계로 처리되기에는 너무나도 섬세한 감정을 담은 정보들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해야 읽혀질 정보들이 많아질수록 세상 살맛이 더 깊어질 것입니다. 시간이 걸려도 그렇게 축적된 정보가 사랑의 씨앗이 된다는 걸 일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신김치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날이 오지 않기를 기도해 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고요하고 평화로운

아침이 오기를,

참다움이

우리의 마음이 되기를,

염치를 아는

오늘이 되기를,

 

뻔뻔하지 않은

어른이 되기를,

 

오늘도

마음을 여며

기도합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