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신화,내마음의 별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운명의 바람과 요셉

모든 2 2019. 3. 10. 06:38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운명의 바람과 요셉

 

렘브란트,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좋은 스펙으로 흔들리지 않는 자기 영역을 확보한 사람들이 있지요? 나는 그런 이들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로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 세계가 완전히 파괴되어 삶의 밑바닥에 널브러져 있다가 스스로 어둠의 터널을 기어 나온 사람입니다. 악마에게 사로잡혀서 마침내 악마를 진지하게 다룰 줄 알게 된 사람, 지옥에 떨어져서 지옥 불속을 헤매다 그 에너지로 자기천상을 일군 사람, 나는 그런 사람에게 매혹됩니다. 한 사람의 개성, 진짜 이야기는 그가 지킨 규범이나 그가 일군 업적에서 오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진짜 이야기는 그가 통과한 지옥의 모양, 지옥의 형태에서 옵니다. 

  살다 보면 ‘운명’이라고 해도 좋을 바람이 불지요? 길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거센 운명의 바람, 운명의 불길이 있습니다. 지옥이라고 해도 좋을. 렘브란트의 저 그림 속의 요셉은 그런 지옥의 불길을 통과한 이스라엘의 영웅입니다. 요셉을 아십니까? 야곱이 편애하는 아들에서, 노예의 시간을 거쳐 이스라엘을 구한 바로 그 남자 말입니다.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늙은 아버지를 재회할 때까지 요셉의 인생은 파란만장합니다.

 

  요셉에게 분 최초의 운명의 바람은 형제에게 버림받은 것입니다. 오죽하면 형제들이 팔아버렸겠습니까? 누가 잘못 했나요? 누가 악인가요? 요셉을 팔아버린 형들인가요? 아버지의 편애를 믿고 형들 앞에서 나댄 요셉은 잘못이 없나요? 누가 악인가를 따져보기도 전에 운명의 바람은 요셉을 이집트의 보디발 장군의 집에다 데려다 놓습니다. 장군의 집에서 신실한 요셉은 촉망받는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또 한 번 운명의 바람이 붑니다. 요셉을 좋아했던 장군의 아내가 “날이면 날마다 수작을 걸어” 온 것입니다. 그녀는 요셉을 유혹하려 하다 실패하자 요셉이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고 누명을 씌웁니다.

 

  그림 속 중앙에, 매무새가 흐트러진 여자가 보이지요? 호들갑을 떨면서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는 그녀가 장군의 아내입니다. 자기 옷을 자기가 찢어놓고 요셉이 겁탈하려 했다고 연기합니다. 한 손은 허리에, 한 손은 여자의 어깨깃에 올려놓고 여자의 말을 듣고 있는 남자가 보디발입니다. 그의 표정 속에서 분노와 걱정이 읽히나요? 누명을 쓰고 있으면서도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젊은 남자가 요셉입니다. 

 

  잘못은 자기가 해놓고 그걸 감당하지 못해 자기가 매력을 느낀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장군의 아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힘이 있는 사람이 잘 빠지는 함정이지요? 자신에게 정직하기 힘든 거, 힘 뒤에 숨어 비겁한 거…. 대체적으로 힘에 의존해서 사는 사람들은 실은 약한가 봅니다.

이제 요셉은 감옥행입니다. 창세기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재밌지요? 감옥에 있는데 ‘형통한 자’라고 합니다. 하긴 왕궁도 감옥인 사람이 있고, 감옥에서도 자유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감옥에서도 요셉은 평화롭게 살고 있습니다. 그는 함께 갇힌 자에게 형제애를 느끼고 그들이 꾼 선명한 꿈을 해석해주기까지 합니다.

 

  요셉은 꿈꾸는 남자였습니다. 소년시절부터 그랬습니다. 꿈을 꾸고, 꿈을 사랑하고, 꿈을 이야기하다 꿈을 읽게 된 사람! 꿈을 믿고 꿈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사는 이 생의 이 차원이 다른 차원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다른 차원을 느끼기 때문에 요셉은 현재를 잘 견디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 앞에 감당하기 벅찬 사건들이 찾아옵니다. 사실 왜 겪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막막하고 서러운 날들을 참 많이 경험하지 않았나요? 너무 억울해서 정의의 이름으로 응징하고, 하나님에 기대 하소연하고, 윤리의 이름, 원칙의 이름으로 따져 봐도 오히려 안에서는 분노만 더 치솟고, 더 억울할 일만 생겼던 날들, 그냥 겪어내는 것 이외에는 답이 없는 날들이 있습니다.

 

  젊은 날 그때 그 일을 왜 겪어야 했는지, 나의 성격의 어떤 면이 그때 그 상황을 지옥으로 만들었는지 이제 겨우 알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그렇듯 깨달음은 언제나 늦고, 의미는 언제나 나중에 옵니다. 생이 쉽지 않고 만만치 않은 이유입니다. 그래서 시인 진은영은 생은, 내가 모르는 일이 흘러들어와 내가 아는 일이 되는 거라고 했나 봅니다. 

 

  누구에게나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그냥 겪어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인간이 될 때까지 버텨야 하는 쑥과 마늘의 시간 말입니다. 내 인생의 뜸을 들이는 그런 시간을 거치며 생긴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리가 겪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치고 나쁜 일은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