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9년 주보

-생태적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로-갈마초록성당만들기

모든 2 2019. 1. 13. 20:30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에 관한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회칙

"찬미받으소서"


지난호에 이어<찬미받으소서>와 함께 열어 가는 생태영성 이야기 21입니다.


동반의 영성

황종열(레오,두물머리복음화연구소,대전교구생태환경위원회 자문위원)


  예수 그리스도는 아기로 오셔서 고운 숨을 쉬셨습니다.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의 동반이 없이는,하느님의 지수광풍의 동반이 없이는 아기 예수님은 하루도 사실 수 없는 아기이셨습니다. 포대기가 없으면 춥고 구유가 없으면 차가운 바닥에서 병들 수 있었던 아기이셨습니다. 세상의 창조자가 창조된 존재로 오셔서 온 창조물이 창조자 하느님의 신비에 참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찬미받으소서 99항 참조)


  이렇게 마리아와 요셉과 사람들의 돌봄을 하느님의 지수광풍을 선물로 받지 않으시고는 사실 수 없으셨던 분이 사랑받고 밥과 물과 빛과 바람으로 돌봄을 받으신 분이 당신의 온 사랑으로 세상과 사람들을,특히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돌보십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오심은 동반(同伴,accompany)받으신 분이 동반하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동반은 지도가 아닙니다. 동반은 지시가 아닙니다. 동반은 가르치는 자로서 배우는 위치에 있는 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이끄는 것도 아닙니다. 한 분 하느님 아버지와 스승이 계실 뿐이고 다른 모든 존재는 서로 형제로서 제자로서 상호 동반 과정에 있을 따름입니다.(마태오 23장 8-10절) 이것이 예수님께서 아버지도 한 분이시고 스승도 한 분이시며 모두는 형제요 제자라고 가르쳐 주심으로써 하느님의 새로운 가족 새로운 제자 공동체 관계가 형성되면서 발생하는 혁명적 결과입니다.


  동반은 예수님께서 동반의 시작에서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신 것처럼 "임마누엘"(마태오 1장 23절),곧 "임장(臨場)"입니다.(탈출기 3장 14절 참조)동반하는 사람이 동반하고자 하는 그 존재가 있는 그 곳(場)에 함께 있는 것(臨)아니 누군가가 동반하는 그 존재에게 다가가서(ac=ad=>to) 그 존재가 먹는 빵(pany=panis=bread)을 함께(com=cum+=>with)먹는 것. 이것이 임장이고 동반입니다.


  누군가가 한 존재를 동반할 때, 그 존재를 이끄는 것이 그 존재 곁에 있어 주는 것보다 쉽습니다. 사랑이 깊으면 어려운 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커집니다. 참으로 한 존재의 곁에 함께 있어 주는 동반행으로서 강생과 고난은 사랑의 결과이고 연민(compassion)의 결실이며 공감(empath)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강생과 고난은 길이 되어 주는 것이고,바닥이 되어 주는 것이며,밥을 함께 먹는 것이고,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는 것처럼 사랑하는 너들에게 밥이 되어 주는 것을 뜻합니다.


  무위당 장일순 요한은 친구가 똥물에 빠지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대개는 똥물 밖에서 똥물에 빠졌다고 욕하거나 비난하거나 나오라고 소리치거나 한다면서,그라면 이때 어떻게 할지 말한 적이 있습니다. 똥물 밖으로 나오도록 손을 잡아 주거나 막대기나 끈을 던져둬서 잡고 나오게 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는데,장일순은 친구가 빠진 똥물 안으로 '같이 들어가야한다"고 했습니다.(최성현지음,좁쌀한알,도솔,2004,151;같은 책,224에 소개된 '흙탕물을 다시 맑은 물로 만들려면"도 참조).


  이것이 예수님의 강생을 설명해 줍니다. 가톨릭 신자였던 장일순은 예수님의 탄생을 똥물 비유로 현대화한 것으로 보이는데,루카가 쓴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예수님은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맞아들여 주는 존재들이 없는 상태에서도 친구들을 찾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마굿간까지 찾아가서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예수님이 사랑으로 이루시는 강생에서 봅니다. 그분은 친구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했는데(요한 15장 13절),그분의 강생과 고난은 친구들을 위한 사랑의 동반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존재이지,하느님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모상"의 이 이중성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이 당신의 우주와 사람들을 통해서 전해주시는 저 모든 선물들,저 모든 아름다운 관계들,땅과 밥과 집,물과 빛과 바람에 폭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형제와 자매,선의의 이웃과 공동체 구성원들의 존엄을 파괴하고 그 존재들의 숨을 건드려서 신음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살림과 사회의 정의와 각 존재들의 생명력에 상처를 가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저 모든 축복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삶의 관계에서 드러낼 수 있는 축복에도 불의와 죄를 볼 줄 알 때,비로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당하심으로써 우리가 새롭게 하느님의 자녀로 살 수 있게 해 주셨다는 "대속(代贖)"의 깊은 뜻을 알게 됩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잘못을 짊어져 주신 그 사랑에 닿을 때,우리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참으로 감사에 젖게 됩니다. 자신이 용서받음에 감사하게 되고,이렇게 용서받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하느님의 저 땅-집 선물,물 선물,빛 선물,숨 선물에 보다 더 깊게 감사하게 됩니다.


  바로 이 감사가 우리를 일으켜 세워서 이제는 다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하늘 아래에서 그 땅을 딛고 그분의 물을 받아 그분의 빛 안에서 그분의 바람 그분의 숨으로,내 바람이 아니라 그분 바람으로 살 수 있게 합니다. 그리하여 자기와 함께 사는 존재들에게 그분의 땅처럼 바닥이 되고 그분의 물처럼 살리는 물이 되고 빛나는 빛이 되며 생명의 숨이 되어 줄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강생과 고난과 이를 통한 구원은 이 사랑의 동반이 하느님의 온 창조물 가운데서 그리고 우리 가운데서 가능하다는 것을 증거하면서 우리도 이 동반을 살도록 부르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부드러운 눈길로 온 창조물을 바라보신다고 하셨는데(찬미받으소서 100),예수님은 바로 그렇게 부드러운 눈길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를 당신의 친구라 부르시면서요(요한 15,14-1).





갈마동성당 태양광발전소 추진 개요


한국 천주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생태환경보전'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에너지 전환에 갈마동 성당 신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한얼관 옥상에 20.72kwh의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하고자 합니다.

2018.12.01 발기인 대표 최경해 마리아를 포함하여 14명의 갈마동 성당 신자와

1명의 전민동 성당 신자가 마음을 모아 발기하였으며,

교구생태환경위원히 산하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연계하여 운영,

관리하고자 합니다.

이에 추진일정을 공지하오니 조합원으로 적극적인 참여 바랍니다.


※ 추진일정 ※



내용


대상

일정

장소


정부의 친환경에너지 정책 및

태양광발전소 건설의 필요성 교육


전신자

2019.1.27(일)

10시 30분 미사 후

갈마동성당

대성전


협동조합 및 햇빛발전협동조합 운영사례 교육


전신자

2019.2.10(일)

10시 30분 미사 후

갈마동성당

대성전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 창립총회


조합원

2019.2.17(일)12시


갈마동성당

대성전



※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 조합원 가입 안내

- 가입자격 : 누구나 가입가능

- 1구좌당 금액 : 100,000원(인당 가입한도 1~100구좌)

- 총모집구좌수 :  360구좌이상

- 조합원 가입신청은 1월 27일 이후부터 주일미사 전후로 갈마동성당 1층 로비에서 신청을 받고 그 외의 시간에는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 (한얼관 1층 생태환경위원회 사무실)로 신청하세요.

-조합원 가입신청문의 : 010-3452-9702(생태환경위원회 사무국장)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요한1,14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Jn 1.14


갈      마      동      성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