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8년 주보

연중 제23주일 2018년 9월 9일(나해)

모든 2 2018. 9. 9. 22:30

 최종철 마르코 신부의 옛 묘소(2003년 이전)

24년간 공주본당 주임이었던 최 마르코 신부는 1945년 11월 23일 선종하였다. 그의 묘는 성당 구내에 있다가 2003년 4월 9일 대전가톨릭대학교 내 성직자 묘지로 옮겨졌다. 비석의 총탄 자국은 6.25전쟁 때 인민군들이 사격 연습을 한 흔적이다. 이 묘비는 지금도 중동성당 내에 있다.

 

▲자료 제공: 내포교회사연구소(041)362-5028

 

  +  마르코 복음 7,31-37

 

  <예수님께서는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신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데칼롤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레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에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한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말씀의 향기>

 

  차별 없는 사랑  -이성호 요셉 세종성바오로 주임 겸 세종직장직종 전담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느낀 것은 '차별이 없는 세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날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처럼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하느님 구원의 날에 이루어질 사건들을 친히 행하십니다. 곧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 주시는 놀라운 사건을 일으키십니다. 하느님의 구원에 차별이 없는 것처럼 우리도 사람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제2독서의 야고보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차별,둘 또는 여럿 사이에 차등을 두어 구별함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차별,차별을 받았다고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종종 그런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신부님과 함께 갔을 때에는 반찬도 잘 나오고 서비스도 좋고 친절하고 좋았는데,후에 다시 가 보니 전혀 다른 대우를 받아 속상했다는 소리를 종종 듣습니다. 그럴 때면 저의 마음도 좋지 않습니다. 똑같이 대우해 주면 입소문도 나고 많은 교우분들이 이용해 주실 텐데 하는 마음과 더불어,그런 소릴 듣게 되면 누군가에게 추천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보좌 신부 때의 일입니다.

  등산화를 사기 위해 평상시의 복장으로 가게를 찾았습니다. 손님이 한 분 와 계셨지만 분주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허름한 차림의 저를 본 주인인지 점원인지는 모르겠지만 표정이 좋진 않았습니다. '돈도 없으면서 이런 매장엔 뭐하러 왔니?'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가격을 물어보아도 건성건성 대답할 뿐 저에겐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갑에 돈을 두둑히 넣고 갔는데 마음이 상했습니다. 정말로 가진 것이 없었다면 아마도 참담한 심정으로 나올 수밖에 었었을 것이고,내 자신에 대한 자괴감으로 마음이 크게 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을 보면 왠지 훈훈해집니다.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귀먹고 말 더듬는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고 그의 처지를 가엾이 여기는 자비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여 장애를 가진 이들을 치유하도록 이끌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그들을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고 아픔을 함께하며 자비의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그러한 사람들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via의 시선 (나에게서 나오는 것)  -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헛개가 첨가된 음료를 마십니다. 술에 절은 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무의식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 이내 후회합니다. 내용물을 다 먹은 뒤 처리해야 하는 프라스틱용기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술을 마시지 말든지 아니면 숙취를 견뎌내면 될 것을.. 프라스틱용기에 새겨진 "헛개"라는 글자가 내재된 욕구를 일으켰습니다.

 

  하루를 살면서 배출하는 쓰레기라고 부르는 부산물의 양이 궁금해졌습니다. 얼마나 될까? 라면봉지,약봉지,하루치의 견과류가 담긴 봉지 그리고 화장실을 통해 오수로 나가는 물,생각해 보면 많이 먹고 소유하면 배출하는 쓰레기의 양도 많아지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근래에 방송을 통해서 끊임없이 -장소와 사람만 바뀐 채-보여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먹는 행위'입니다. 더 맛있게 그리고 더 많이 먹어야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래서 더 기름지고 건강하지 못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표정을 확대시켜 보여줍니다. 맛있다는 감탄사가 출연자의 입과 화면 위의 자막으로 친절하게 전달됩니다. 감각적입니다. 말초적인 쾌감을 알려주는 감탄사가 방 안을 가득채웁니다. 그런데 쾌감의 강도와 깊이에 따라서 발생시키는 쓰레기의 양도 많아지겠지요.

 

  궁금합니다. 누구를 대상으로 만든 프로그램일까? 아무래도 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음식을 먹기 위해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만큼의 시간과 돈의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일까? 방송을 보다가 짜증이 올라오는 것을 느낍니다. 분노는 비통함의 가면을 쓰고 있다고 하는 말은 옳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보지 않으면 되는 것을 보면서 화를 내고 있으니 어리석습니다.

 

  함께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먹고 소유하는 것과 더불어 그들이 먹고 소유하는 것으로부터 발생하는 버려지는 것들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시작과 과정은 드러내면서 끝을 노출시키지 않는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정말 보고 싶습니다. 시작과 과정 그리고 끝 전부를.

 

 

행복 낱말 사전2

 

 

   # 우산

 

  비 올 때에는 그토록 절실하지만, 비가 그치면 너무도 쉽게 망각되는 물건.그래서 우산은 슬픕니다.

 

  사람도 때때로 우산이 됩니다. 필요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가깝게 다가오지만,더이상 필요가 없어지면 어느새 저만큼 멀어질 때 사람도 우산이 됩니다.

 

  주님도 종종 우산이 되십니다. 힘겨울 때 그렇게 그분 곁에 몸을 피하다가도,막상 편해지면 그분이 어디에 계신지 조차 잊고 살아갈 때 주님도 우산이 되십니다.

 

  우산을 잃어버리는 건 부주의함 때문이 아니라 이기적인 마음 때문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 창문


  안쪽만 닦거나 바깥쪽만 닦아서는 결코 깨끗한 풍경을 볼 수 없는것.

 

  창문을 안에서만 닦는다고 세상이 또렷하고 투명하게 보일 리 없습니다. 창문 바깥쪽도 함께 닦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창문은 간단히 안쪽만 닦으면 됩니다. 밖에서 이미 주님이 먼지 한 점 없이 늘 깨끗하게 창문을 닦아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종종 세상이 어두워 보일 때,바깥 풍경을 탓하기 전에 나의 내면의 창을 부지런히 닦아 봅니다. 그러면 세상은 기적처럼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하늘과 땅

물과 바람

풀과 나무가 있어

새가 노래하고

나비가 춤추면

 

그것만으로

평화.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