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8년 주보

연중 제22주일 2018년 9월 2일(나해)

모든 2 2018. 9. 2. 22:30

 

공세리본당 견진성사 기념(1952년 6월 5일)

지금은 박물관이 된 공세리본당의 옛 사제관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휴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전쟁 상태에서도 각 본당에서의 견진성사는 계속되었다.

▲자료 제공:내포교회사연구소(041)362-5028

 

 

  + 마르코복음 7,1-8.14-15.21-23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그때에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불륜,도둑질,살인,간음,탐욕,악의,사기,방탕,시기,중상,교만,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말씀의 향기>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 계명  -백광현 세례자요한 진잠 주임신부-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마르7,6-7)

  오늘 복음 말씀은 형식적인 신심행위의 위선적인 믿음에 대한 경고를 들려줍니다.

  모든 공동체는 공동선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법을 제정합니다. 교회에도 교회법이 존재합니다. 교회법은 법이 있음으로 해서 신앙인의 삶을 올바르게 규정하고 종교의 본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줍니다. 하지만 법의 근본정신을 잊어버리고 지키지 않는다면 그 법은 존재가치를 잃어버리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혼란과 무거운 짐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느님의 계명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자신들의 권위를 높였고 백성들의 삶은 엄격하게 규정함으로써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안겨 주었습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본래 사랑과 자비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며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고 안전하게 하느님께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권위와 스스로 의로운 사람임을 드러내기 위해 하느님의 계명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뜯어고쳐서 신앙의 은혜와 기쁨을 성가시고 귀찮은 존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의 복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계명을 깨닫고 율법의 참 정신과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깨달아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찾아볼 수 없는 율법 안에서 형식만 지키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통하여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이끄십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율법이 진정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풍요로운 신앙의 삶으로 초대해야 합니다. 형식적으로 미사와 기도에 임하기만 한다면 우리도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들었던 경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또한 형식 없이 마음만으로 하느님을 섬긴다고 교회가 정한 법규를 소홀히 함으로써 나태와 게으름으로 생활한다면,영적으로 많은 위험에 놓이게 되고 성장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늘 야고보 사도는,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지고,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삶이 되지 말고 실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과 자비의 계명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좋은 선물과 은사를 받아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via의 시선  (어떻게?)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강의를 준비합니다. 매번 같은 내용을 말할 수 없어서 책을 읽고 요약한 노트를 살핍니다. 내가 말하는 내용이 복음적 가치에 맞는 것인지 확인하고,내가 말하는 것을 살고 있는지 성찰합니다. 느낍니다.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말하는 것으로 심판 받는다는 것을,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말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대로 살다가 죽겠다는 우기를 느꼈습니다. 순간의 쾌락과 즐거움을 위한 선택 이후에 다가오는 무력함의 체험 그리고 침묵 속에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느님,비정의의 현신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면서 정작 나를 위한 정의는 세우지 못했습니다. 자살할 수 없으니 빨리 죽을 수 있는 생활을 선택했지요. 어울림이라는 이름으로 술에 취하고,건강을 위한다며 무리하게 몸을 사용했습니다. 아파야만 다른 것에 마음을 쓰지 않고 지낼 수 있었습니다. "웃음 뒤의 피폐함", 전혀 복음적이지 않는 나로 살았습니다. 복음을 위한 투쟁의 가면을 쓰고 헐떡거리며 버티는 하루,기쁘지 않았습니다.

 

  12년 전의 "나"입니다. 그리고 지금,저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봅니다. 좀더 편안하게 그러나 더 냉정하게 보려고 합니다. 구조적 불의를 감정적 해소의 수단으로 유도하는 불의한 교회와 단순한 수치와 이론으로 사회와 그 속에서 구체적으로 상처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호소하는 아픔의 원인보다는 증상을 해소시키는데 목적을 두는 전문가 집단의 감성적 만족을 비판합니다. 자신을 위한 정의는 세우지 않고 타인에게서 보여지는 현상에 감동하는 얼친 사람들.

 

  벌레는 걸러내면서 낙타를 삼키(마태 23,24)는 이유는 낙타의 효용가치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남기 때문이지요. 더 많이 남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더 많이 남기기 위해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분석하고 해석해줍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도구가 삼키기 좋은 낙타가 되었고 모든 증상을 해소하는 신비의 영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화려하고 세련된 도구입니다.

 

  전에는 "무엇을?"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떻게"에 집중합니다.

 

 

행복 낱말 사전1

 

  #구두

 

  새 구두는 내일을 위한 것입니다. 그것을 신고 돌아 다닐 곳들을 하나둘 떠올리면 가슴은 희망으로 설렙니다.

 

  낡은 구두는 지나온 시간의 증표입니다. 그것을 신고 돌아다녔던 곳곳마다의 이야기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이 되어 줍니다.

 

  인생의 길에 나설 때에는 짝짝이 구두가 필요합니다. 한 쪽엔 새 구두,다른 한 쪽엔 낡은 구두를 신어야 합니다.

 

  어제와 오늘을 번갈아 생각하며 걷는 그 걸음만이 넘어지지 않는 유일한 길입니다.

 

 

  #고래

 

  물에서 살지만 물속에서 숨 쉬지 않는 고래,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 위로 올라와 하늘을 향해 참았던 숨을 뿜어내야 하는 고래의 호흡법은 언뜻 번거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고래는 그 어떤 동물보다 아름답습니다. 물을 박차고 올라 햇살과 하늘,그리고 바람을 느끼며 쌓여 있던 온갖 불필요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분출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틀 안에서 남보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숨 한번 제대로 편하게 쉬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고래처럼 도약하고 고래처럼 숨 쉬는 법을 배워야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하늘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고 내 안에 있던 모든 것을 용기 있게 드러내는 순간이 바로 행복의 순간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교수-

 

 

 

낡은 손에서

 

묻어나는

삶의 향기

 

오늘을

감사드리네!

 

글.그림 이순구 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