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 원태경
칸트는 죽지 않았다
여러 모양의 달로 변했을 뿐이다
그는 날마다 정해진 시각에 약속한 옷을 입고 정해둔 길로
산책을 나선다 정해진 매일 밤 그는 내 몸을 열고
몸속으로 들어온다 그가 가만가만 펼쳐 보이는 내 잠은
푸르다 너무 푸르러서 어떨 땐 눈물이 난다
나는 날마다 다른 모습으로 찾아와
내 꿈과 동침하는 그를 맞아 기꺼이 몸을 섞는다
아프게 비운 자리
기쁘게 회임한다 열여덟 달 후 나는
그를 꼭 닮은 시간의 아이들을 낳을 것이다
아이들은 다시 스물여덟 명의 칸트로 자라 날마다
정해진 시간, 서약의 옷을 입고, 스스로 결정한 길을 향해
금빛 날개 번뜩이며 날아갈 것이다
자궁을 가진 자의 몸을 드나드는
존재들은 죽지 않는다 다만
변할 뿐이다 느릅나무 가지에 걸린 그의
눈,
-시하늘 2009년 봄호 -
이 시를 읽기위해서는 먼저 칸트에 대한 예비지식을 조금은 구비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시에 접근하기도 전에 개념 없는 독자가 되고 말 것이므로. 칸트는 잘 알려진 철학자이긴 해도 그에 대한 이해의 수준은 많은 비판을 즐겼다는 것과 기가 막히게 정확히 시간을 챙기는 사람이란 정도다. 더구나 달랑 ‘칸트는 죽지 않았다’는 단서 하나로 이 시의 실마리를 푸는데 도움이 될 철학적 용언을 구하기는 무척 어렵겠다.
아무튼 시인은 ‘남의 철학을 배우지 말고, 스스로 철학하는 것을 배우라!’는 칸트의 유지를 받들어 ‘순수이성비판’에서처럼 인식의 혁명을 위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그 행진은 때로 온몸을 시로 칭칭 감기길 원하는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다. 어느 땐 자아와 세계의 심연을 향해 떠나는 랭보의 모험을 닮았다.
그리고 시인에게서 남성을 추월해 질주하는 알파걸의 이미지도 엿보이는데, 그것은 비단 현역 내과 전문의라는 기득의 프리미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보들레르가 ‘문학은 일종의 마법(magic)’이라고 했던가. 그 마법은 주술이나 도취의 영역뿐 아니라 현실과 이상 사이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매혹적인 꿈의 세계를 포함한다면 그녀는 매직에 걸려있는 게 분명하다. 달의 차고 기움에 상응하여 ‘그를 꼭 닮은 시간의 아이들을 낳을’만큼.
시는 이렇듯 정교한 칸트를 대동하며 자아의 지나친 확산으로 읽혀질 때도 있지만 시인의 시적 발언은 전통적 여성시의 곱고 여린 감수성과는 달리 거침없이 써재끼며, 단호하게 말하고, 과감하게 까발려진다. 물론 그 이면에는 강한 자신감이 배어있어 바로 그 점이 멀지않은 훗날 그녀를 저 달처럼 은은히 오랫동안 빛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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