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어둠의 단애 / 류 인 서

모든 2 2018. 6. 17. 16:18

 

어둠의 단애 / 류 인 서

 

저문다는 것, 날 저문다는 것은 마땅히 만상이 서서히 자신의 색을 지우며 서로의 속으로 스미는 일이라야 했다 알게 모르게 조금씩 서로의 그림자에 물들어 가는 일이라야 했다 그렇게 한 결로 풀어졌을 때, 흑암의 거대한 아궁이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는 일이라야 했다

 

너를 바래다주고 오는 먼 밤, 제 몫의 어둠을 족쇄처럼 차고앉은 하늘과 땅을 보았다 개울은 개울의 어둠을 아카시아는 아카시아의 어둠을 틀어안고 바윗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누구도 제 어둠의 단애 밖으로는 한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한 어둠을 손 잡아주는 다른 어두움의 손 같은 건 볼 수 없었다

 

- 시집『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창비, 2005)

 

 

 하루치 분량의 빛이나 한 생애의 박동이나 저문다는 것은 모두 사라져간다는 의미다. 아쉽고도 미안한 표현이지만 죽어간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서서히 자신의 색을 지우며 서로의 속으로 스미는 일이라야’ 마땅한데 적막에 이르러 눈을 스르르 감는 일이 ‘알게 모르게 조금씩 서로의 그림자에 물들어 가는 일’이어야 하는데, 생각한대로 그렇게 부드럽게 연착륙 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온전히 저문다는 것은 한 통속으로 해체되고 지워졌을 때. 그 때 어둠의 단애는 빛난다. 하지만 섞여서 하나 되는 것. 오히려 그것은 일생을 통하여 시나브로 추구해갈 과정이지, 노을을 눈앞에 두고 급히 행하기는 어려운 노릇인가 보다. 우리는 그 하나 됨을 위하여 끝없이 희망과 절망을 반복했으며, 믿음과 배신을 거듭했다. 내 본연의 색을 조금씩 버릴 때 절대고독의 어두운 표정 앞에서도 스르르 눈이 감기는 법인데, 삶의 도정에서는 저마다 선뜻 자기 색깔을 지워가기가 힘들었기에 끝내 우리는 홀로인 채 살아가며, 현실과 당위 사이의 대립된 모습은 벼랑 끝까지 유지되고 만다.

 

 ‘흑암의 거대한 아궁이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는 일’은 불가에서 말하는 ‘일체유심’같은 것이 아닐까.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 온 우주가 한 점으로 수렴되는 바로 그 찰나 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어 서로의 색을 지워가는 게 어둠의 본래 표정이라면 서로 손 내밀지 못함은 그 어둠의 깊은 골짜기에서 오랫동안 서성토록 하는 것이리라. 절체절명의 높은 절벽 앞에 몸을 오그린 채 오들오들 사방 두리번거리는 회피 회피의 몸짓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나 ‘너를 바래다주고 오는 먼 밤’에도 물상들은 다만 돌아앉아 제 몫의 어둠을 족쇄처럼 차고앉아 스스로 결박하거나 제 몫의 어둠만을 틀어쥐고 있을 뿐, 그 누구도 다른 어둠의 손을 잡거나 한 발짝도 발을 내밀지는 않았다. 어둠도 각자 제 몫으로만 어두워 가고 있었다. 딱딱하고 거친 작은 단애만 송곳처럼 솟아있었다. 너의 손을 잡고 있어도 나는 세계 속의 고독이었다. 아, ‘누구도 제 어둠의 단애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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