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Pater noster)
주님의 기도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준 그리스도교의 가장 대표적인 기도(마태6,9-13; 루카 11,2-4)이다. 이 기도는 일곱 가지 희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앞의 세 가지는 하느님의 영광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 네 가지는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미 초세기부터 전례기도나 개인기도에 다양하게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특별한 기도로 애용되었다. 특히 초세기에는 단계적 입교예식중에 "주님의 기도 수여식"과 "주님의 기도 반환식"이 있을 정도로 이 기도의 비중이 컸다. 그 영향으로 주님의 기도는 세례 갱신문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이 기도가 미사에 들어온 것은 4세기경이다. 영성체 전에 이 기도를 바치는 것은 동방교회에서 성찬기도 이후에 바치던 관습과 성 암브로시오와 성 아우구스띠노와 같은 교부들이 '일용할 양식'을 영적 양식인 성체로 해설을 한 것과 관련이 있다.
주님의 기도 후에 왜 아멘을 하지 않나?
그리스도인들은 매 기도 끝마다 '아멘(amen)이라고 동의의 뜻을 밝힌다. 그런데 미사 중에 바치는 '주님의 기도'(Pater noster) 후에는 아멘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주님의 기도 이후에 '부속기도'(Embolismus)가 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기도는 주님의 기도와 접합되어 이어진 기도이다. 이 부속기도는 이미 초세기의 동,서방 전례에 나타나며 주님의 기도의 마지막 두 청원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와 "악에서 구하소서"를 확대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기도가 미사에 들어온 시기는 6세기의 교황 그레고리오 1세 때로 짐작한다. 중세기를 거치면서 마리아,베드로,바오로 및 안드레아 성인의 명단이 삽입되었다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초기의 모습대로 환원시켰다. 이 기도는 영원한 생명과 구원에 대한 희망을 안고 세상 종말에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해 달라고 기원하며 종말론적 희망을 지닌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확인시켜준다.
성경은 어떤 언어로 쓰였을까?
우리는 보통, 한글로 번역된 성경을 읽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은 처음에 무슨 언어로 쓰였을까? 라는 의문을 한번씩은 했을 것이다. 신학적으로야 '성령의 감도로 쓰인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겠지만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쓰였으니 인간이 쓴 것은 확실하다. 구약성경은 주로 히브리어로 쓰였고 비빌론 유배 이후에는 아랍어도 썼고 제2경전의 경우에는 그리스어로 쓰였다. 신약성경은 코이네 그리스어로 쓰였다.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면서 여러 가지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첫 번역본은 기원전 3세기경에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칠십인역'(LXX,Septuaginta)이고,기원후 2세기경에 아랍어로 번역한 '타르굼'(Targum)과 기원후 4세기경 성 예로니모가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Vulgata)'번역본이 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성경 권수가 차이가 나는 이유는?
천주교는 제1경전과 제2경전으로 이루어진 구약 46권,신약 27권을 합한 73권이고 개신교는 구약 39권,신약 27권을 합한 66권이다. 구약에서 제2경전이 들어갔느냐 아니면 제2경전을 외경이라 하여 구약에서 제외시키느냐의 차이이다. 천주교는 트리엔트 공의회(1546녀)에 확정을 했다 토빗기,유딧기,마카베오기 상,하권 지혜서,집회서,바룩서를 제2경전에 대해 의심스러워하면서 배척을 했다. 반면에 천주교는 칠십인역을 통해 제2경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지고 초대교회에서 공통적으로 받아들인 전통을 존중하였다.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 된 것은 고대 사람들이 비둘기에 담낭이 없다고 생각한데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들은 담즙에 미움이나 분노가 깃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담낭이 없는 비둘기는 미움이나 분노가 없는 평화로운 새라고 여겼다. 또한 부리를 부딪히며 애정 표현을 하고,다산을 하는 비둘기는 사랑의 여신이라 보였다.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비둘기는 풍요와 생명의 상징인 올리브 가지를 부리에 물고 돌아옵니다. 그래서 비둘기의 이미지는 평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비둘기가 그에게 돌아왔는데,싱싱한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있었다"(창세 8,11). 로마의 카타콤바에는 비둘기 부리에 올리브 가지를 물고 있는 모습이 단순하게 그려져 있다. 즉 죽은 사람이 주님의 평화에 머물기를 바라는 염원을 드러냈다. 비록 비둘기의 실재가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비둘기와 올리브 가지를 통해서 평화를 갈망한다.
동방 박사들
공현성화에서 성가정과 함께 세 동방박사,그리고 그들이 가져온 세가지 선물이 꼭 등장한다. 멜키오르는 페르시아의 왕,발다사르는 인다아의 왕,가스파르는 아라비아의 왕이라 여긴다. 이 동방 박사들은 마태 2,1-12에서 등장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선물을 가지고 새로운 왕에게 경배를 드리려고 멀리서 찾아왔다. 그럼으로써 이세상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은 세상에 왕중의 왕으로 드러나신다. 성 베르나르도는 보다 구체적으로 동방박사들이 가져온 선물들을 설명한다. 황금은 마리아와 요셉의 가난을 위한 위안이고 유향은 마구간의 공기를 향기롭게 하며 몰약은 아기를 치료하는데 쓰인다고 한다. 중세 예술에서 동방 박사들은 서방의 왕들로 대치되어 그들 중에 하나는 보다 젊은 사람이 등장한다. 14세기 이후에 이들은 노아의 후예들로 여겨졌고 세 세대,세 인종 또는 세 대륙인(발다사르는 유럽을,터번을 쓴 멜키오르는 아시아를 검은 피부를 지닌 가스파르는 아프리카)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우리는 아기 예수님을 왕중의 왕으로 경배하면서 무엇을 바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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