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8년 주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2018년 6월3일(나해)

모든 2 2018. 6. 3. 22:30

 

대흥봉수산 성지

조선시대 역참제도에서 대흥군은 예산과 홍주,공주,청양 지역으로 선교사들과 많은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거나 귀향하는 한국 천주교 복음선포와 순교자들의 길목이었다.

성지는 대흥장터,예산장터에서 각각 순교한 사촌지간인 복자 김정득 베드로와 김광옥 안드레아의 신앙을 기억하고 현양하기 위해 2015년 신설되었다.  문의: (041)333-0202 사무실

 

  +  마르코 복음 14,12-16.22-26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무교절 첫날 곧 파스카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며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내 방이 어디 있느냐?'하고 물으십니다.'하여라.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층 방을 보여 줄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

  제자들이 떠나 도성 안으로 가서 보니,예수님께서 일러주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이는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그것을 마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산으로 갔다.

 

 

  <말씀의 향기>

 

  성체의 둥근 미소  -김성태 요셉 합덕 주임-

 

  막달레나씨는 여든 고개를 훨씬 넘겼다. 인생길의 험한 고개를 넘어왔는데도 야트막한 이 언덕을 오르기가 버거운가 보다. 굽은 등에 손을 얹고 몇 번이나 쉬어 가야 여기까지 이를 수 있다. 아마도 거치른 팔순고개를 넘어 오느라 그 곱고도 생기 넘치던 청춘을 죄다 소진해 버린 탓일 게다. 그래도 그녀는 날마다 이곳을 오르내린다. 몇 번씩 오르는 날도 있고, 하다못해 저아래 신작로로 질러갈래도 굽은 허리보다 더 깊이 머리를 숙여 언덕을 향해 절을 올린다. 그 옛날 모세에게 시나이처럼 그녀에게 이 언덕은 인생길이고 신앙이며 기적의 장소인 까닭이다.

 

  그날도 막달레나씨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언덕을 올라왔다. 낡은 옷이었지만 정갈하게 차려입은 양장 치마가 딸 수녀가 입고 왔던 수도복만큼이나 경건하게 느껴졌다. "어쩐 일이세요?" "강복첨례 드리러 왔시유" "오늘 아니고 다음 주일인데요" "..." 멋쩍어서 더 활짝 웃어 젖힌 그의 얼굴에 둥그렇고 온화한 주름이 선명하게 드리워졌다. 그녀는 깨끗한 신발을 문 앞에 가지런히 벗어 두고 모세처럼 맨발로 성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제단 위 성체의 예수님께 예의 그 깊은 절을 드리고 나서,한참을 앉았다가 되돌아갔다. 죽을 만큼 숨가쁘게 성전에 올라 그리운 주님께 문안을 드렸으니, 잘못 알고 올라온 시간이라도(성체)강복첨례의 은혜만큼 넉넉한 은총이 주어졌으리라. 자신의 얼굴에 새겨졌던 그 둥글고 온화한 미소로 주님께서 틀림없이 그를 보고 계셨으리라.

 

  열아홉에 고향을 떠난 95세 도마 할아버지는 먼 길도 마다않고 이따금씩 이 언덕을 찾아온다. 까까머리 어린 시절,이 언덕에서 그의 소명은 신부님을 보필하던 '보미사"였다. 매일 새벽미사에 성전에서 일어나는 성체의 기적을 생생하게 마주하며 자라났단다. 주일 오후면 어김없이 봉헌되던 '강복첨례'를 어디선가 본 듯한 둥근 미소와 함께 회상해 갔다. 몸을 푼 산모가 생기면 신부님은 촛불을 밝힌 보미사를 앞세워서 성체를 모시고 행렬해 가셨단다. 죽을 만큼 힘겹다는 산고라 해도 예수님의 성체가 위로가 되고, 성체의 은혜가 영약이 되는 합덕성당,이 언덕의 기적들이 아흔다섯 꼬마 복사 도마의 기억을 통해 되살아났다. 작은 성체거동 그 위대한 행렬로 산고의 쓰라림 위에 피워 냈을 아기 엄마의 둥근 미소와 그를 바라보실 성체 속 주님의 둥그렇고 온화한 미소가 나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 미소를 꼭 빼어 닮았을 막달레나씨와 도마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이미 보았으니 말이다.

 

 

  via의 시선(하늘을 봅니다)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습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손에 물이 담겨진 프리스틱 용기가 들려있습니다. 공적 혹은 사적 모임에서 여행을 갈 때도 물이 담겨진 프라스틱 용기를 나눠줍니다. 이른바 '생수'라고 이름 붙여진 상품입니다. 저는 물이 담겨진 용기를 받으면 가방에 고이 모셔둡니다. 그리고 고민하지요. 뚜껑을 따서 이 물을 마실까 아니면 물이 담겨진 프라스틱 용기를 준 사람에게 다시 돌려줄까.

 

  길을 떠날 때 물통에 물을 담아서 갑니다. 그리고 그 물을 다 마시면 물 보충이 가능한 곳에서 물통을 다시 가득채웁니다. 조금 불편합니다. 물통을 가지고 다니려면 가방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한가함을 채울 수 있는 한 권의 책과 길을 걸으면서 필요한 다른 물품을 넣을 수 있어서,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이 불편한 것만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양의 부산물이 배출할까? 하루를 살면서 내가 배출하는, 이른바 쓰레기 양이 궁금해졌습니다. 편리함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가는 나,편리하게 사는 것이 행복이고 미덕이라는 사회 속에서,나는 얼마나 편리하게 살고 있을까?

 

  최소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효율을 획득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지혜이며 현명함으로 인식되는 사회 속에서,나의 현명함과 지혜의 깊이와 크기가 궁금해졌습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이른바 쓰레기를 배출하고 삽니다. 누룽지를 감싸고 있는 비닐을 쓰레기처럼 하지 않으면 누룽지를 먹을 수 없습니다. 과일 껍질을 쓰레기로 만들지 않으면 과일을 먹을 수 없습니다. 아! 땅이 없는 도시에서는,다른 생명의 생장을 위한 먹거리로 사용가능한 모든 생명의 흔적이 쓰레기로 처리됩니다. 땅이 없는 공간,그곳에는 모든 것이 먹을 것(이용 가능한 것)과 쓰레기로 구분됩니다.

 

  내 몸의 건강을 위해서 생수를 삽니다. 그런데 물을 사는 것인지 물을 담은 프라스틱용기를 사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물을 마시고 나면 아무런 의식없이 프라스틱 용기를 쓰레기로 버리는 것을 보면,프라스틱용기 안에 있는 물을 사는 것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궁금합니다. 공공재의 매매가 가능한 것인지.. 만일 프라스틱용기를 사는 것이라면, 그 처리비용을 세금으로 처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획득한 물이 담겨진 프라스틱용기가 미세프라스틱으로 변형되어 밥상 위에 올라옵니다. 대책을 마련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봅니다. 물이 담겨진 프라스틱용기를 들고 있는 손과 일회용점심도시락으로 채워진 두둑한 배의 포만감으로 충만한 얼굴 속에서.. 왜 그럴까요. 제 얼굴이 보입니다. 그리고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웃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기가 미안해집니다. 긴 숨과 함께 하늘을 보는 오늘입니다.

 

 

 

앵두는 사랑을 싣고

 

 

  어린 시절 제가 살던 집을 동네 사람들이 '앵두나무집'이라 불렀습니다. 집은 허름하고 오래되었지만 마당에 앵두나무들이 몇 그루 심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6월이 되면 장미꽃도 만발한데 빨갛게 익은 작은 앵두 열매들까지 주렁주렁 열리니 우리집 마당은 그야말로 온통 붉은색으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그 붉은 색이 짙어지면 질수록 저와 동생은 무척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본격적으로 앵두 배달을 해야 될 때가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저와 동생에게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를 나눠주시며 앵두를 따서 담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바가지가 가득차면 저희에게 이런 심부름을 시키십니다.

 

  "이건 앞집 승숙이 할머니네,이건 막다른 골목집 쌍둥이네,또 이건 병뚜겅 공장집..

  얼른 갖다 드리고 와.맛있게 드시라는 인사 잊으면 안된다. 얼른 갔다 와!!!"

 

  한 바가지를 비우고 또 한 바가지의 앵두를 받아들고 다음 배달 장소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면 뒤에서 어머니께서 이렇게 외치시는 소리가 들리곤 했습니다.

 

  "넘어질라,조심해라,넘어지면 그 아까운 앵두 다 길에 다 쏟겠다. 천천히 가!!!"

 

  아들 걱정보다 앵두 걱정부터 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이 처음엔 섭섭했습니다. 하지만,앵두를 받으시는 분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며 어머니의 깊은 가르침을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앵두나무는 우리집 마당에 있지만,그 열매는 우리것만이 아님을 알려 주신 어머니.. 이제 더 이상 마당 있는 집에 살진 않지만,6월이 돌아오면 그 행복한 앵두 배달을 떠올리며 이웃과 더불어 사는 기쁨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오늘도

먹고 마시며

생각하고 기도하며

잠을 잡니다.


그렇게 주신

큰 생명

정성껏 소중하게

살아냅니다.

 

그래서우리는 참 예쁩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