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8년 주보

성령 강림 대축일 2018년 5월20일(나해)

모든 2 2018. 5. 20. 22:00

 

남방제 성지

남방제는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성 조화서 베드로와 아들 성 조윤호 요셉이 살던 곳이며,조윤호 성인이 바로 이곳에서 태어났다. 두분 성인을 기리고 남방제 지역 순교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2016년 12월11일 교구장 주교님 주례로 '남방제 성지'봉헌미사와 함께 성지 조형물 축복식이 있었다.

문의:(041)234-2324 온양신정동성당 사무실

 

+ 요한 복음 20,19-23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말씀의 향기>

 

  오소서 성령님! 저희 모두를 모아들이소서!  -박성준 세례자요한 성령쇄신봉사회 전담

 

  "오순절이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사도 2,1-2)

  성령 강림 대축일인 오늘의 제1독서는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강림하시던 날이 마침 오순절이었다고 전합니다. 오순절(五旬節)은 파스카 축제가 지나고 50일째 되는 날로서,원래 밀 수확을 끝내고 하느님께 맏물을 바치는 추수 감사절이었습니다.(탈출 23,16 참조) 그러던 것이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대에는 하느님과 시나이 산에서 맺은 계약,즉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은 것을 경축하는 데까지 의미가 확장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셨을까요? 하느님께 추수 감사제를 지내는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신 까닭은 이제 결실의 때,수확의 때가 되었으니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믿고 따른 모든 사람을 '추수하라'는 다시 말해서 모아들이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성령께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며,우리의 위로이자 협조자요,보호자이십니다. 또한 교회를 새롭게 하시는 분이며 늘 우리 안에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도록 해 주시며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시는 분,우리 안에서 일치와 평화의 끈으로 묶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때문에 수난과 부활로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완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당신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오순절에 성령이 내려오셨고,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그제야 비로소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마르 16,15)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순절에 내리신 성령은 제자들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용감한 증인으로 변화시켰고 이를 통해 아주 짧은 시간동안 수천명의 사람들이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사도2장 참조)바로 수확의 시간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을 받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모시고 그리스도의 용감한 증인으로 변화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해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럼으로써 변화를 주시는 분도 성령이시며,이끌어 주시는 분도 성령이시며,모아들이시는 분도 성령이심을 고백하며 살아갑니다. 이제 이 고백을 바탕으로 오순절에 내린 성령께서 사람들을 모아들이셨듯이 우리의 삶도 하느님께로 모든 이들을 모아들이는 삶으로 변화되도록 노력하여 수확의 때를 성령과 함께 살아내야 하겠습니다.

  매일,매 순간 성령의 도움을 청하며 기도합시다.

"오소서 성령님! 저희 모두를 모아들이소서!"

 

 

  via의 시선(행복을 위해서)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내가 하고 있는 일들,대부분의 일은 나에게 주어진 일입니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 있다는 이유로 주어진 일이지요. 일이 주어지면 그 일을 잘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아니 최선의 노력으로 그 일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흘러가게 놓아둡니다. 열심히 삽니다. 하루 종일 바쁘게 그리고 힘들게.

 

  우리가 사는 세상은,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세상은 많은 사람들을 넘어지고 부서뜨립니다. 특히 세상은 선의를 지니고 사는 사람들을 더욱 더 가혹하게 깨부숩니다. 가야 할 길을 끝까지 가기 위해서 분투하는 사람들,사람들은 그 길을 끝에서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부서지고 쓰러졌던 그 자리에서 사람들은 한층 더 강해집니다. 신비입니다.

 

  선거철이 다가왔습니다. 야망을 지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과 사진이 새겨진 명함을 주면서 고개를 숙입니다. 저들이 품고 있는 야망이 자신을 향한 온전함의 성취로 변형되기를 기도합니다. 자기 자신의 행복을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행위에 묶어버리는 사람들은 타인의 반응이나 조건을 자신을 움직이는 동기로 작동하게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꾼들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자발적으로 자신보다 힘있는 자들의 '종'이 됩니다.

  '종'이 된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증오'를 생존의 기제로 사용합니다. 그들은 증오를 발산함으로써 누군가를 핑계로 내세우고, 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김으로써 자신을 향한 비난을 회피합니다. 그들은 권위를 가지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라 권위 있는 자리에 앉기 위해 싸웁니다. 그가 앉은 자리가 곧 그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권위를 지니는 것과 권위 있는 자리를 차지 하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에게 충고하는 것"이고,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을 아는 것"(탈레스)입니다. 자신이 서 있는 길의 위치에 따르지 않습니다. 바라봄의 자리에서 달라지는 것이지요.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과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 사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불행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살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소서.

 

 

나는 어디쯤...


  하늘이 파랄 때 그 푸르름에 입꼬리가 올라가면 나는 기쁨 중이고,하늘은 파란데 그 푸름이 멍처럼 느껴지면 나는 슬픔 중입니다.
  남들이 웃을 때 따라 웃으면 나는 지금 함께하는 중이지만,남들이 웃을 때 홀로 웃지 못하면 나는 지금 외로움 중입니다.
  무성해진 나무를 보고 그 변화를 눈치챘다면 나도 어제와 조금은 달라지는 중이고, 그 나무를 보고도 어제의 나무가 기억나지 않으면 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입니다.
  누군가 말을 거는 것이 반가우면 내 마음은 열려진 상태이고,누군가 말을 거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내 마음은 서서히 닫혀 가고 있는 중입니다.   새소리가 노래로 들리면 나도 더불어 삶을 노래하는 중이고, 그 소리가 신경을 자극하는 소음으로 들리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소음을 들려주는 중일 겁니다.
  가끔 인생의 길 위에서 나는 어디쯤 가고 있는 걸까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간 건지,아니면 뒤로 한 걸음 물러난 건지 막연한 두려움을 느낄 때 말입니다.
  벽에 수치를 적어 놓고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재 본것처럼,지금 내가 얼마나 성장하고,얼마나 행복하고,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누군가 알려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럴 때 우연히 올려다 본 하늘의 색깔,매일 보던 나무의 촉촉함,유독 크게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사람들의 미소와 반가운 인사들이 내 삶을 측정하는 기준점들이 되어 줍니다.
  오늘도 하루를 돌아봅니다. "주님,오늘 하루 저는 그 모든 기준점들에서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제 마음은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이 움직이고 흔들렸습니까?"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주님

그 크신 상처

보았습니다

비록

 

이 몸 허약하고

비루하지만

오늘도 내일도기도하겠습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