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시/ 정일근
우리나라 어린 물고기들의 이름 배우다 무릎을 치고 만다.
가오리 새끼는 간자미, 고등어 새끼는 고도리,
청어 새끼는 굴뚝청어, 농어 새끼는 껄떼기,
조기 새끼는 꽝다리, 명태 새끼는 노가리,
숭어 새끼는 동어, 방어 새끼는 마래미
누치 새끼는 모롱이, 숭어 새끼는 모쟁이,
잉어 새끼는 발강이, 괴도라치 새끼는 설치
작은 붕어 새끼는 쌀붕어, 전어 새끼는 전어사리,
열목어 새끼는 팽팽이, 갈치 새끼는 풀치
그 작고 어린 새끼들이 시인의 이름 보다 더 빛나는 시인의 이름을 달고 있다.
그 어린 시인들이 시냇물이면 시냇물을 바다면 바다를 원고지 삼아 태어나면서부터
꼼지락 꼼지락 시를 쓰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 생명들이 다 시다. 참 착한 시다.
- 시집 『착하게 낡은 것의 영혼』(시학,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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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KBS 환경스페셜’을 통해 ‘퉁사리’라는 물고기의 이름을 알았다. 퉁사리는 세계적으로 한국의 금강과 만경강 등 극히 일부지역에서만 서식하는 토종물고기이다. 예전엔 너무 흔해 별로 대접받지 못했던 물고기였지만 지금은 금강에서 급격히 사라져 멸종위기 1급 어류가 됐다. 인터넷에서 줄줄이 튀어나오는 그 이름들은 비슷한 어종과 지역의 방언까지 더하면 무려 2백여 개나 된다. ‘퉁사리’는 ‘퉁가리’와 ‘자가사리’의 중간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과 빠가사리와 쏘가리도 그들의 별칭이거나 친족임을 알았다. 아마 시인이 열거한 물고기 새끼들의 이름도 인터넷에 정리된 걸 그대로 받아 적은 것 같다. 하긴 검색창이 아니면 무슨 재주로 저렇게나 다채로운 물고기 새끼 이름들을 나열할 수 있을까.
4대강사업 이후 멸종 위기에 처한 토종 물고기는 퉁사리 만이 아니다. 꺽지, 동사리, 얼룩동사리, 줄납자루, 칼납자루, 떡납줄갱이, 쉬리, 금강모치, 흰수마자, 수수미꾸리, 가시납지리, 감돌고기, 미호종개, 묵납자루 등 강을 뒤엎어버린 뒤로 서식처를 잃고서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생물들이 그들이다. 보 공사로 수심이 깊어지고 유속이 느려지면서 서식환경에 교란이 일어나 생존을 위협받게 되었다. 우리의 관심 밖에서 이름조차 낯설고 그 생김새는 더욱 낯설지만 우리가 지켜주어야 할 우리 고유의 소중한 민물고기들이다. 제대로 된 환경보전 대책 없이 마구잡이로 파헤쳐진 강들에서 이들이 살 곳을 잃고 있다. 환경부에서는 멸종위기종, 문화재청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했지만 이들을 보호하기는 힘들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220여 종의 민물고기 가운데 한국 고유종은 60종이다. 하천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우리나라 고유종들이 빠른 속도로 멸종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것은 그들 물고기뿐 아니라 다른 동식물, 나아가 사람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라는 의미다. 자연은 필요에 따라 이용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갈 운명공동체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며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사람만으론 어찌 살 수 있겠는가. ‘그 어린 시인들이 시냇물이면 시냇물을 바다면 바다를 원고지 삼아 태어나면서부터 꼼지락 꼼지락 시를 쓰고’있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사람의 시도 피폐해질 게 뻔하다. 그 생명들의 ‘착한 시’가 시방 곳곳에서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물고기들의 서식환경이 산란을 할 수 없을 지경으로 악화되었다.
맑은 1급수 자갈과 모래 사이를 누비며 ‘착한 시’를 쓰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되레 그들에게서 펜과 원고지를 빼았아버였다. 그들 고유어종 만의 일이겠는가. 화원유원지 사문진나루터 부근의 낙동강에는 잉어와 붕어 같은 비교적 더러운 물에서도 잘 사는 녀석들마저 죽어 떠오르는 것을 어렵지 않게 목격한다. 어제는 내가 사는 인근의 강에서도 아가미를 가쁘게 벌렁거리며 죽어가는 잉어 한 마리를 보았다. 낙동강 하류 곳곳에서 매년 이들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또 우리는 그들이 죽은 강의 물을 먹고 있다. 이명박에 대한 비리의혹은 지금 불거져 나온 협의보다 이른바 ‘사자방’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있다. 그 중에서도 진짜 잘못한 것은 그토록 반대하고 신중한 결정을 요구했건만 밀어붙인 4대강 이권 사업이며 '착한 시'를 앗아버란 처사가 아니겠는가.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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