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이란 말/ 권순진
툭, 걷어차이는 것들마다 대박이다
음식이 조금만 맛나도 대박
약간 이상한 옷을 입고 나와도 대박
복면가왕에서 입을 달싹이기만 해도 대박
텔레비전 자막마다 대박
아이어른 가릴 것 없이 온통 대박이다
상황과는 무관하게 이리저리 잘도 갖다 붙인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꿈에도 소원인 통일을
무슨 도박판의 싹쓸이인양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는
로또 돈벼락처럼
신의 한수인양 대박이라 내뱉질 않나
또 다른 경박한 대통령은
해준 것도 없이 아무렇게나
‘부자 되세요’란 광고카피 인사말을
앞장서 유행시키질 않나
품격이라고는 손톱의 반달만큼도 없는
무엇으로 부자 되고 성공시대를 열까
지난해 정초 누가 비트코인에 관해 묻길래
꿈도 꾸지 말라며 말렸더니
대박의 찬스를 나 때문에 날렸단다
제기랄, 동동 떠다니는
알맹이 없는 천박들이
삼년 전 급히 먹다 얹힌 짜장면을 역류케 한다
- 시집『낙타는 뛰지 않는다』 (학이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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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서는 좀 이른 전망이긴 하지만, 아닌 게 아니라 잘하면 남북관계의 해빙무드를 타고 ‘통일 대박’에 근접할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아무 노력 없이 북측과 각을 세우고 퇴행만 거듭했던 박근혜 정권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어제 ’강적들‘이란 종편 프로를 흘낏 보면서 정미경 전 의원의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설령 이명박 후보의 거짓이 들통 났더라도 워낙 경제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여망이 컸기 때문에 당선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을 것”이란 발언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에 박지원 의원은 국민을 무시하는 발언이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잘 몰라서 국정농단을 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돈을 너무 잘 알아서 불행해졌다”라고 받아쳤다. 사실 죄질로만 보면 이명박 쪽이 더 무겁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보수언론의 과도한 노무현 정부 흠집 내기 토대위에 ‘경제대통령’이란 애매한 단어가 덧씌워졌고, 그 이미지로 인해 막연히 경제를 살리고 내 주머니를 채워줄 사람 같아 그를 뽑아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도덕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이 일단 힘센 줄을 잡는 게 장땡이었다. 아부를 해서라도, 뇌물을 써서라도, 일단 돈 벌어 잘 살고보자는 가치관이 형성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도덕불감증의 사회, 과정은 필요 없고 오직 결과만이 중시되는 사회, 인성은 필요 없고 물질만이 최고인 사회로 급격히 이동해버렸다. 이명박에 대한 엄정한 단죄를 요구하는 대다수의 국민은 그 과정에서 자기네들끼리만 해먹은데 대한 배신감과 더불어 우리 내부에 뿌리박힌 도덕적 허무주의를 이참에 청산하고 극복하자는 의지가 반영되었다.
‘미투’운동과 함께 도덕성회복운동의 일환이기도 한 것이다. 적어도 다음 세상의 우리 자식들에게 만큼은 이런 도덕불감증의 세상을 물려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자면 두 번 다시 그러한 대통령을 당선시키지 않겠다는 유권자들의 굳건한 도덕의지가 선행되어야 하고 도덕성의 해이가 없어야할 것이다. 그리고 나부터 “내게 이익이 된다면 함량 미달의 지도자라도 상관없다”라든지 “우리 같은 소시민이야 도덕성에서 자유롭지만 지도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라는 식의 이중적 잣대는 분질러 버려야겠다. 지금까지 우리는 훌륭한 지도자를 뽑는다고 뽑았지만 결국 뛰어난 정상배에게 표를 찍고 말았던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올바른 투표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많은 시련과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제 또 정치의 계절이다. 참정권 행사를 시간 뺏기는 귀찮은 일로 여기며 기권도 의사표시라며 둘러대고서 권리를 포기하는 일도 잦았다. 싸워서 지켜야 할 가치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싸우려 하지 않는 것은 비겁하고 그 자체로 부도덕한 일이다.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고” 마틴 루터 킹의 말이다. 지난 박근혜 이명박 정권의 점철을 밟지 않으려면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부터 새로운 시대와 질서를 이끌어갈 인재인가를 최대한 눈여겨보고 뽑을 일이다. 책장 깊숙이 오랜 세월 꽂혀있는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가 슬며시 눈에 들어온다. 정치란 무엇이고 정치가란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는 고전이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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