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첫 봄나물/ 고재종

모든 2 2018. 4. 13. 22:46



첫 봄나물/ 고재종

 

얼어붙었던 흙이 풀리는 이월 중순

양지바른 비탈언덕에 눈뜨는 생명 있다

아직도 메마른 잔디 사이로

하얀색 조그만 꽃을 피운 냉이와

다닥다닥 노란색 꽃을 피운 꽃다지와

자주색 동그란 꽃을 층층이 매단 광대나물

저 작은 봄나물들이 첫봄으로 푸르다

저 작은 것들이 지난 가을 싹을 틔워

몇 장의 작은 잎으로 땅에 찰싹 붙어

그 모진 삭풍의 겨울을 살아 넘기고

저렇듯 제일 먼저 봄볕을 끌어모은다

저렇듯 제일 먼저 봄처녀 설레게 한다

냉이 꽃다지 광대나물, 그 크기 워낙 작지만

세상의 하많은 것들이 제 큰 키를 꺾여도

작아서 큰 노여움으로 겨울을 딛고

이 땅의 첫봄을 가져오는 위대함의 뿌리들.

 

- 시집『새벽들』(창작과비평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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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오래 전 농촌 현장을 지키고 있을 당시에 쓴 시라 짐작된다. 당시 시인은 농촌의 내밀한 정서를 시로 옮겨 담으면서 생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드러낸 시를 많이 발표하였다. 고재종 시인은 담양농고 1년 중퇴로 제도권 교육을 마감했지만 도시 빈민으로 떠돌면서 문학의 꿈을 키워 1984<실천문학>으로 등단하였고, 이후 고향인 담양으로 돌아와 농사일을 하며 발표한 시들은 20세기 후반 한국 농촌의 자화상을 다룬 민중시로 평가받았다.


  ‘첫 봄나물은 변화무쌍한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추운 겨울을 견디고선 얼어붙었던 흙을 뚫고 가장 용감무쌍하게 눈뜨는 생명들이다. 이런 끈질긴 생명력의 현상을 두고 얼른 민초(民草)를 떠올리기도 하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겠다. 사실 民草라는 말은 일본식 조어이기도 하지만 순리에 따라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뿌리내리고 싹을 틔우는 자연의 생명력이기에 달리 은유할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냉이와 꽃다지와 광대나물 중에서도 가장 익숙한 냉이는 봄을 맨 먼저 알려주는 봄나물이다. 아직은 봄을 시샘하느라 아침나절엔 쌀쌀한 기운도 감돌지만 오락가락 봄비 뿌리는 가운데 완연한 봄이다. 양지 바른 벌판에는 냉이와 달래 따위가 쑥쑥 올라와 있다. 잎이 있는 상태로 겨울을 이겨내는 냉이는 향긋한 향으로 사람의 식욕을 돋우어 봄철의 춘곤을 이기게 한다. 비실비실 봄 타는 사람을 냉큼 깨우는 봄나물이 냉이다.


  한방에선 냉이가 혈압을 안정시키고 간의 해독을 돕는 식물로도 알려져 있다. 다래는 칼슘이 풍부해 빈혈을 없애주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준다. 봄나물을 먹어야 봄이 온다고 했다게으른 정서 탓으로 이월 중순부터 양지바른 비탈언덕에 눈뜨는 생명들을 식재료로 무얼 해먹지 못했다. 이미 작지만’ ‘위대함의 뿌리들은 지천으로 널렸다. , 씀바귀, 냉이, 달래를 봄나물 4총사라 부른다. 봄이 깊숙이 오기 전에 들로 나가 봄을 캐고 싶다

 

  봄 햇살 타고 찾아온 봄, 동물도 수목도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는 시기이다. 이 시기 사람들은 필요한 영양소가 부족하면 피곤하고 나른해지는 이른바 춘곤증으로 고생한다. 춘곤증을 극복하려면 봄에 필요한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봄나물이 이런 영양소를 듬뿍 간직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 푸르고 질긴 생명력이 담긴 봄나물에 희망과 꿈을 버무리는 것이다. 재래시장 어귀에서 할머니가 앉아 파는 작은 소쿠리의 냉이라도 보게 된다면 냉큼 사다가 된장국에 빠트리는 거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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