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가만히 두 손 모아/박노해

모든 2 2018. 4. 13. 20:58



가만히 두 손 모아/박노해

 

없이 추운 이여

예수님도 집이 없었습니다

 

노동에 지친 이여

예수님도 괴로운 노동자였습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이여

예수님도 자기 땅에서 배척당했습니다

 

배신에 떠는 이여

예수님도 마지막 날 친구 하나 없었습니다

 

패배에 절망하는 이여

예수님도 영원한 현실 패배자였습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피투성이로 품은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자신의 패배와 죽음까지를 끌어안고

그것을 살아냄으로써 부활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당신도 그러할 것입니다

 

이 세상 힘없고 작은 사람 중의 하나인

당신 속에 하느님이 떨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집『겨울이 꽃핀다』(해냄출판사, 1999)-




  사람은 누구나 고난 없이 편히 살기를 바랍니다만 고난과 더불어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고난 없는 삶은 영적으로 불행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는 태어날 때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고난의 연속인 삶을 사셨습니다. 그런 예수님 고난의 의미를 알지 않고는 기쁜 성탄의 의미도 알지 못합니다. 고난주간에만 고난을 묵상할 것이 아니라 삶 가운데서 고난을 생각합니다. 집 없이 추운 사람은 예수님도 집이 없었음을 상기합니다. 노동에 지친 이는 예수님도 괴로운 노동자였음을 떠올립니다. 예수님께서도 배척과 배신을 밥 먹듯 당했으며 현실에서는 영원한 패배자였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에게 큰 용기가 되고 위안이 됩니다. 그가 그 고난을 다 감당하고 승리하여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도 고난을 억지로 피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예수님의 사랑을 위한 값진 고난을 교훈삼아 믿음과 희망으로 고난을 극복해야 한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의 이력에 비추어볼 때 자신 또는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고난, 남의 짐을 짊어져 주는 고난, 사명이나 임무를 완성하는 고난, 믿음의 선한 싸움에 승리하는 고난까지 감당해야함을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당신도 그러할 것’이라며 모든 이에게 용기를 북돋우는 말을 전합니다.

 

  이천년 전 세상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조롱받던 세리와 창녀의 친구가 되어주셨듯이 ‘이 세상 힘없고 작은 사람 중의 하나인 당신 속에 하느님이 떨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그 당위를 설명합니다. ‘예수’의 뜻은 자기백성을 죄에서 구원한다는 말이고,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때 그 백성만이 아니라 이 시대 온 누리에 기쁨과 구원의 희망을 들고 오신 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덮어놓고 예수만 믿는다고 구원을 얻는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이 고난의 시대에 그런 믿음마저 잃어버린다면 어쩌겠습니까. 오늘은 세상 모든 율법의 완성인 사랑으로 그분이 오신 날입니다. 기쁜 성탄일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