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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헌 생활[3] 따름,더 자유롭게 더 가까이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모든 2 2018. 2. 10. 15:07




따름,

더 자유롭게 더 가까이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윤진 니꼴라 수녀.거룩한 말씀의 회-



  교회에는 초기부터 복음적 권고의 실천으로 말미암아 더 자유롭게 그리스도를 따르고,더 가까이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여 각각 자기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하느님께 봉헌된 생활을 한 남녀들이 있었다."(수도 교령 1항) 이렇게 교회 역사의 초기부터 이미 열심한 신자들의 자발적인 희생을 통한 복음적 권고를 살고자 하는 삶의 형태는 있어 왔습니다. 특히 가난과 공동 생활에 있어서는,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수유하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씩 나누어 받으며,사도들의 지도를 받는(사도 2,44:4,35참조) 신자 공동체와 예언의 능력을 지니고 동정을 서약한 처녀들도 있었습니다.(사도 21,9) 이러한 봉헌의 형태는 3세기에 접어들면서 교회 안에서 공적으로 천국을 위한 동정을 약속하는 관례가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 앞에서 서약을 하는 한 형태가 되어 왔습니다. 이는 점차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신앙 고백의 적극적인 모습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끊이지 않았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에 대한 최상의 신앙 고백은 순교의 화관을 받는 것이었는데,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 신앙의 자유를 선포함으로써 박해시대가 지나가고 평온한 시대가 오자,세상이 주는 평화에 젖어드는 느슨한 신앙 생활도 더불어 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세속적 평화의 상태에서 벗어나 하느님만을 섬기고 주님의 평화 안에 깊이 머물기 원했던 신앙인들이 세속을 떠나 광야에서 살며,천상의 일을 위해 세상일부터 자신을 떼어놓고자 열망하는 삶의 형태가 새롭게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6세기까지를 수도 생활의 역사가 태동되는 사막 교부들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4세기 초 안토니오 성인(251-356)은 수도 생활의 근본이 되는 분명한 동기를 가지고 현재 우리가 일컫는 수도 생활의 역사를 열게 됩니다. 안토니오 성인은,어느 날 미사 중에 듣게 된 마태오 복음19장21절에 나오는 부자 청년의 비유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주님께서 자신에게 직접 하신 부르심의 말씀으로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자기 삶을 완전히 바꾸는 "복음적 회개"를 통해 자기에게 주어진 말씀을 굳게 믿고 따르게 됩니다. 또한 그의 복음적 회개는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교회와 세상의 복음화를 위한 끊엄없는 기도와 보속을 바치는 지향과 함께 사막으로 찾아오는 이들에게 영적 도움을 줌으로써 은수자들의 삶의 형태에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영적 도움과 필요 외에는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공수(共修)의 생활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이제,보다 더 적극적인 신앙 고백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노력의 한 형태로서의 수도 생활의 역사는 점차적으로 공동체적인 회(會)수도 생활로 발전해 가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