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8년 주보

연중 제4주일 (해외원조주일) 2018년 1월 28일(나해)

모든 2 2018. 1. 28. 22:30

  

세종 성요한성당(공주지구)

본당설립:2015.8.19. 주보 성인:사도요한

 

  +마르코 복음.1,21-28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카파르나움에서,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그가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말씀의 향기>

 

  발전은 평화의 새 이름입니다.  -박제준 토마 한끼100원나눔운동 전담-

 

  "해외원조" 우리는 흔히 아프리카의 굶주린 어린이들에게 식량을 지원하거나,동남아시아 저개발국가에 대한 의료지원을 먼저 떠올립니다. 우리는 넉넉하게 살고 있고,우리보다 넉넉하지 못한 해외의 굶주린 형제들과 나눈다는 뜻에서 물질적으로 돕는 것을 해외원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해외의 원조를 받아서 국가적 빈곤을 해결해 왔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해외원조의 개념이 새롭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지원하다 보니, 일부 공동체에 한정되기도 하고,공동체 안에서도 차별과 갈등의 요소가 되어서,공동체에 해가 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해외지원단체들이 물질적인 지원보다는 해당 공동체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인적 지원과 교육 지원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아 지고,시혜적 표현인 해외원조라는 말보다는 국제협력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가 함께 발전해 나아가야 할 형제들이지,지원을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고,물질주의적 성장보다는 사람 중심,관계 중심의 발전이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해외원조,혹은 국제협력사업은 다양한 의미의 '발전'을 목표로 합니다. 발전은 경제적인 성장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발전은 공동체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는 회칙 "민족들의 발전"에서 인류의 보편적 공동선에 대해 천명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빈곤과 부조리를 거슬러 싸우는 것은 결국 인간의 물질적 행복과 정신적 내지 윤리적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전인류의 공동선을 증진시키려는 것이다...평화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질서,더욱 완전한 정의를 인간 사이에 꽃피게 하는 질서를 따라 하루하루 노력함으로써만 얻어지는 것이다."(민족들의 발전 76항)

  오늘날 많은 이들이 해외원조사업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빈곤의 해소를 위한 시혜적 지원인지,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복음적 실천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발전은 소위 저개발국가라고 하는 일부국가들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인류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고,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via의 시선("..."하게 사는 이유?)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추운 아침, 바람이 차갑습니다. 문득 창밖을 보다가 놀치는 바다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샐녘의 도시는 차갑습니다. 회색빛의 건물과 검정색의 도로. 지금 도시는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신새벽에 들리는 소리들이 정신을 깨우고,창 밖으로 보이는 흔들거리는 사람들의 발걸음 속에서 서글픔이 느껴지는 이유를 찾습니다. 이렇게 추운 날에.. 부디 무사히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지면 떠나곤 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한 조금의 여유, 비록 한겻만큼 허락될지라도 나를 위해 쓰고 싶을 때 떠났습니다. 떠나면서 봅니다. 그리고 느낍니다. 녹색의 풍만 속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푸름의 생명과 지구의 숨인 바람을 만납니다. 바람의 숨을 따라가다가 녹색의 공간에 머물 때,내면의 침묵 속으로 진입하는 나를 발견합니다.

 

  돌아오기 위해서 떠납니다. 떠나는 것의 목표는 돌아오는 것입니다. 돌아오지 않는 떠남은 자기충족을 위한 이기주의입니다. 그래서 떠날 때 돌아옴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은 입을 감쳐물고 눈을 부릅뜨고 있습니다. 한 몫 잡을 기회가 왔다는 듯이 이를 악물고 컴퓨터 속의 그래프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그 무엇- 희망의 근거가 되는 가치-을 찾기 위해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통장에 찍여야 하는 영의 개수를 늘리기 위해서,부르진 주먹으로 할긋거리며 앉아 있습니다. 아! 희망합니다. 그들이 배트작거리며 걷지 않기를.

 

  돈이 중요한 세상입니다. 돈만 있으면 못할 짓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그것은 기쁨입니다. 그리고 기쁨과 함께 몸을 솟치게 만드는 행복입니다. 생명은 사물과 행복을 나눌 수 없습니다. 고급차를 사면 며칠은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러나 이내 좋았던 감정은 사라지고 그것은 내 소유물 중 하나가 되어 버립니다. 생명은 생명을 찾습니다. 그것이 생명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지닌 사람은 피조된 생명(사람)을 통해 기쁨을 공유하고 행복해집니다.

 

  돈을 찾다가 사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다가 사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당신이 돈으로 얻고 싶은 행복은..어디에 있을까요? 부디 적당히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열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애피타이저 즐기기

 

 

  차를 운전하고 가면서 문득 라디오 방송이 듣고 싶어졌습니다.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다 진행자의 차분한 목소리에 이끌려 오랜만에 클래식 음악 방송을 듣게 되었습니다.

 

  진행자는'애피타이저'라는 음식에 관련된 용어를 설명 중이었는데,때마침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그분의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본격적으로 음식을 먹기 전에 입맛을 돋우기 위해 먹는 간단한 식전요리로만 알고 있던 '애피타이저'에 대해 방송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프랑스어로는 애피타이저를 '오르되브르'라고 한다는 점,양이 적은 대신 고급재료를 주로 사용한다는 점,맛있다고 너무 많이 먹으면 오히려 식욕이 떨어진다는 점..

 

 그리고 하나가 더 있었습니다. 진행자는 매력적인 목소리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애피타이저'의 또 다른 뜻을 알려 줬습니다.

 

  "큰 욕망을 자극하는 작은 자극"

 

  여행을 떠나기 전에 선글라스를 고르는 일,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에 책상정리를 하는 일,첫 직장에서 일하기 전에 내 명함을 받게 되는 일,이 일들이 우리 삶에서 애피타이저가 되어 줍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식사부터 해야 되는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매번 애피타이저를 준비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서로 얼굴을 보며 다정한 말을 주고 받는다면,기쁜 마음으로 식사 전 기도를 올린다면,그것만으로도 한끼 식사의 훌륭한 애피타이저가 되지 않을까요?

 

  오늘 저녁 식사 때에는 잊지 말고 가족들과 함께 식사 전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라디오 진행자의 목소리만큼 차분하면서도 부드럽게..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좋은 벗을 마음 삼아

흐린 물은 흘러가고

바닥부터 맑음으로

내 영혼이 새로 나기를

기다리며 기도하며,

기도하며 기다립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