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8년 주보

연중 제3주일 2018년 1월 21일(나해)

모든 2 2018. 1. 21. 22:30

 

한산성당(보령지구)

본당 설립:2016.1.12

 

  + 마르코 복음 1,14-20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배대오를 삵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말씀의 향기>

 

  "그물을 버리고 따랐다."  -남대현 마태오 성남동 성당

 

  이야기 하나- 어린이 미사 때 빵학년인 한 꼬맹이가 두 손을 모으고 좀처럼 신부에게 눈을 떼지 않는다. 이유는 미사 시간에 조용히 하면 은총표를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꼬맹이는 저번주에도, 이번 주에도 두 손을 모으고 정성스럽게 미사를 드렸다. 그리고 은총표를 가득 받았고, 은총시장 때 선물을 한아름 받아서 집에 돌아갔다.

 

  이야기 둘- 장례미사 때이다. "신부님 살고 싶어요."라고 목이 메인 목소리로 간신히 첫마디를 꺼냈던 한 자매님이 결국은 떠났다. 그 자매님은 떠나기 전에 오래전부터 가슴속에 담아 두면서 용서하지 못했던 한 사람을 어렵게 용서했다. 그리고 하느님께 지난날 자신의 모든 죄도 용서를 청하면서 눈을 감았다.

 

이야기 셋- 새벽미사 때이다. 밖의 날씨가 너무 추워 이불 속에서 시계만 보고 미사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고요한 방안을 가른다. 그날 새벽미사는 늦게 시작되었다. 성당 안에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손을 호호 불어 가면서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게으른 젊은 신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사는 평소보다 늦게 끝났다.

 

  떠나기가 왜 이렇게도 힘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이 부르심에 제자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따라나섰습니다. 그리고 좀더 가시다가 두 명의 제자를 더 부르십니다. 그들도 곧바로 재산의 전부인 아버지와 그물과 배를 버리고 따라나섰습니다.

  미련 없이 떠나는 삶이 그리워지는 시기입니다. 자꾸 먼가를 채우고 싶고,더 갖고 싶어지고,아깝다는 생각에 쉬이 엉덩이를 뗄 수 없어집니다. 엉덩이가 더 무거워지기 전에 탈탈 털고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때론 냉정함과 단호함으로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도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이것저것 따지고 들면서 쓸데없는 말싸움으로 시간만 축내지 말고 미련 없이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소유하면 불편해집니다. 집착에서,욕심에서,안위에서 떠나면 더 편해집니다.

 

  법정 스님의 '버리고 떠나기'에서의 한 구절입니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 때일 뿐,그러나 그 한 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아름다움이다."

 

 

  via의 시선(즐겁고 행복하고 싶은 오늘)  -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봅니다. 매일 뉴스를 통해서 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보이지 않기를 아니 보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와는 다르게 매일 그들의 얼굴을 보아야 하고 더 최악인 것인 그들이 내뱉는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도 친절하게 그들이 내뱉은 말을 전해주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리는 말들,어지럽습니다.

 

  권위를 가진다는 것과 권위 있는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은 같지 않은 것 같습니다. 권위 있는 자리에 앉아 있음에도 그들의 말과 행동은 권위가 아닌 혐오를 느끼게 할 때가 많습니다. 아마도 일을 하면서 느끼는 두려움과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을 몰아내기 위해서 끊임없이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 속에 담아야 하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니 그들은 정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적 정직성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적 정직성을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더불어 사실의 인정이 필요합니다. 지적 정직성의 실천은 자신의 존엄성에 대한 인정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존엄성은 진실에의 의지와 연결됩니다. 자신이 느끼고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진짜이게 하는 의지입니다. 그래서 존엄성은 인간의 참됨에 대한 의지이고,이 참됨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실을 견뎌내는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소문난 말재기들의 잔치,생각과 말 사이의 틈이 보이지 않습니다. 틈을 허용할 만큼의 용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 말을 합니다. 사복개천같은 모습으로..

 

  성공은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멀쩡한 정신을 유지해야 성공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공에 취해 성공을 제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성공이 인생에서의 최악의 비극이 되기도 합니다.

 

  묻습니다. "무엇이 중한디?"

 

  성공하기 위해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을 즐겁게 보내고 싶습니다. 내가 만난 가치가 안내하는 길을 걸으면서,오늘 행복을 만나고 싶습니다.

 

 

 

기억하고 행한다는 것

 

 

  미사 중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 말씀을 기준으로 하면,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네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기억도 못하고 행하지도 않는 사람

  2. 기억은 하는데 행하지는 않는 사람

  3. 행하기는 하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

  4. 기억하며 그것을 그대로 행하는 사람

 

  기억도 못하고 행하지도 않는 사람은 방향감각을 상실한 사람입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오늘은 이리로,내일은 저리로 무엇이 중요한지 알지 못한 채 좌충우돌하며 걸어갑니다.

 

  기억은 하는데 행하지 않는 사람은 나태한 사람입니다. 분명히 머리로는 무엇이 옳은지 잘 알고 있지만,막상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늘 주저하며 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합니다.

 

  행하기는 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성에 젖은 사람입니다. 어떤 행동은 반복하다 보면 그 행동에 익숙해지고,결국 그 익숙함으로 행동의 본래 의미를 망각하기 쉽습니다.

 

  기억하며 그것을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입니다. 속된 욕망에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살 더 먹으니 왠지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고,매사가 귀찮아지기도 합니다. 지금이 다시 한번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는 주님 말씀에 온 마음을 집중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내 것 같은

내 것 아닌

 

길에서 만난

우연들

 

숙명처럼 동행하며

오늘 아침

또 이 길을 나선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