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7년 주보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2017년 11월 26일(가해)

모든 2 2017. 11. 26. 22:30

 

조치원성당(공주지구)

본당 설립 : 1955.2.6/주보 성인:그리스도왕

 

  +  마태오 복음 25,31-46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영광스러운 목좌에 앉아 모든 민족들을 가를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와서,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저희가 언제 주님께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말씀의 향기>

 

  사랑의 왕,평화의 임금  -이석우 비오 천안쌍용동 주임

 

오늘은 교회 전례력으로 마지막 주일인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왕이시며,이 세상 마칠 때에 왕으로 오시어,모든 이를 심판하시리라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왕권은 하느님 나라의 왕권,곧 진리와 평화와 사랑의 왕권입니다.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도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때 빵을 배불리 먹은 사람들이 억지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피하셨습니다. (요한6,1이하) 예수님은 그렇게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나라의 왕권은 세상의 임금처럼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왕으로 오셨지만,우리 인간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수난을 당하셨고,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우리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몸과 피를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에게 당신을 온전히 내어 주는 사랑을 행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붙잡히시고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문을 닫아걸고 숨어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 24,36)라고 인사를 건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릅니다. 이 평화는 모든 악을 물리치고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의 참 평화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왕으로 오셨지만,인류 구원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셨고,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참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사랑의 왕,평화의 임금이십니다.

 

  오늘 복음은 '최후의 심판'으로 우리가 장례미사 때 많이 듣습니다. 핵심은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모셔야 할 왕이신 예수님은 바로 우리 이웃입니다. 우리 가운데 굶주리고 목마르며,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있는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는 삶이 됩니다.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치면서 사랑의 왕,평화의 임금이신 그리스도를 진정한 왕으로 모셨는지 되돌아보며,새해에는 더욱더 이웃 안에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진정한 왕으로 섬기는 삶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via의 시선(나?!!!)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어떤 사람도 기적을 행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건이 적절한 때 자연발생적으로 그 일이 일어납니다. 때가 차야만 가능한 일들을 경험할 때 우리는 그것을 은총 또는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무조건 주어지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현재의 자신의 상태와 무관하게 주어지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그 목적을 이루지 않고는 되돌아가지 않듯이 하느님의 은총은 은총을 경험하는 대상에게 당신의 계획을 완성할 것을 요구합니다.

 

  땅과 분리된 하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땅 위에서 창조되어진 모든 존재는 땅 위에서 그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언제나 행복은 현재성(지금 여기)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땅은 하늘과 결합된 땅입니다. 이 땅 위에서 모든 피조물이 살고 있습니다. '보시니 좋았다'는 하느님의 감탄이 발출된 구체적 장소인 땅,그 위에 사는 모든 존재는 땅의 존재이며 동시에 하늘의 존재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보시니 좋은 존재들에게 강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낳고 번성하여라!" 특정한 어느 대상을 위한 축복이 아닙니다. 창조는 모든 존재들 위에 내려진 축복입니다. 언제나 하느님의 축복은 존재의 성장을 목적합니다. 그래서 하느님 창조 안에서 정체는 하느님 축복에 대한 거부이고 추락입니다.

 

  은총을 기대하는 사람은 은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은총을 희망하는 사람은 때가 찼을 때 은총을 경험합니다. 희망은 성장을 향한 끊임없는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누구인가는 예수를 따르는 이들의 증거를 통하여 드러납니다. 지금 여기에서의 우선적 선택과 행동,그것이 내가 증거하는 모든 것이고 바로 '나'입니다.

 

 

<이충무의 행복나침반(188)>

  

낙엽이 돌이 아니라서

 

 

  이제 가을도 저물어 갑니다. 눈부시도록 노랗던 은행잎들도 나무 위에 매달린 숫자보다 땅 위를 뒹구는 숫자가 더 많아 보입니다.

 

  단풍을 배경으로 사진이라도 더 많이 찍어 둘 걸 그랬나 싶은 아쉬움은,좀 더 따뜻하게 옷을 입어야겠다는 조바심 앞에서 어느새 희미해져 갑니다.

 

  이런 날 자동차를 몰다 보면,가끔 앞유리 위로 낙엽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걸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도 모르게 스스로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분위기에 빠져 음악의 볼륨을 더 크게 올려 보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지금 차창 위로 떨어지는 낙엽들이 모두 돌멩이만큼의 무게를 지녔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낙엽이 돌멩이가 아닌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 세상 모든 것들은 스스로의 무게를 못 이길 때 지상으로 떨어져 내립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낙엽은 무거워서가 아니라 가벼워졌을 때 대지 위로 내려앉습니다.

 

  무거워서 떨어지는 것,그것은 추락이라 부르지만,가벼워서 떨어져 내린 것,그것은 자유라 부릅니다.

 

  오로지 위를 향해 오르는 것만이 목적인 사람은 결국 그 욕망의 무게로 추락을 경험하지만,버릴 줄 아는 사람은 비로소 한 자리에 얽매였던 속박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맛봅니다.

 

  무게가 없는 것은 떨어져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지만,무거운 것은 조금만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누군가에게 위협이 됩니다.

 

  겨울이 오기 전,제 영혼에 달라붙어 있는 욕망의 잎사귀들이 돌이 아닌 낙엽이 되어 떨어져 내리는 행복한 만추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이 계절에는

모든 창(窓)이

따뜻했으면 좋겠다.

 

우리 마음의

모든 창이

그랬으면 좋겠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