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지석리 성지/펜
안종찬 바오로.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요한복음. 10,11-18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 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말씀의 향기>
주님, 당신은 저의 삶에서 무엇을 원하십니까? - 정우석 사무엘 성소국장
"함께 기도합시다! 주님, 당신은 저의 삶에서 무엇을 원하십니까?"
이 말씀은 지난해 여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한 수많은 젊은이들을 향해 반복해서 따라 하라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아시아 청년대회 프로그램 중 '젊은이들과의 만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한 젊은이가 나누었던 신앙체험에 대한 응답으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젊은이가 해야 할 기도'라고 말씀하신 그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길도 선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택은 주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 길을 선택하셨고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주님, 제게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여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여러분은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이 기도는 단지 몇몇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해당되지 않고 돈과 물질이 세상의 중심으로 여겨지고 있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기도입니다. 또 수많은 유혹과 도전들로 인해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꼭 필요한 기도입니다.
성소주일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계획을 우리 모두가 당신 말씀을 통해 알고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은총을 청하는 기도의 날입니다. 바로 우리 삶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실 수 있도록 하는 것:그분의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계시도록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성소입니다. 이러한 바탕에서 그리스인의 성소는 한 단계 더 성장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힘입어 이웃에게로 나아가는 사랑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을 우리 삶의 중심에 간직하고 살아가면서 그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역동성을 통해 마침내 그리스도인의 성소가 완성됩니다.
이 시대에는 사랑의 역동성을 전할 이들이 참으로 많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많은 젊은이들이 주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항상 물을 수 있도록 격려하고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우리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끊임없이 당신의 사랑을 전할 이들을 달라고 청해야 합니다. 더불어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주님의 부르심을 기억하고 항상 응답하는 삶이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전구하며 기도하도록 합시다.
그리스도인의 성소,
우리 삶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실 수 있도록 하는 것
대전교구 성소국 - "봉헌 생활의 해"를 맞아 대전교구 성소국 예비신학생 모임을 소개합니다.
예비 신학생 모임
예비 신학생 모임은 사제의 꿈을 지니고 있는 젊은이들이 성경말씀과 친교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신앙과 체험을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성소를 성장시키고 식별해 가는 모임입니다.
예비신학생이 되면 한 달에 한 번 월 모임을 통해 단계적으로 신앙 기초교육, 인성교육, 공동체 형성(관계성), 자기 이해 등 성소의 심화와 식별이라는 주제로 교육을 받게 됩니다.
또한 모임을 이끄는 신학생들과 함께 어울려 자연스럽게 그들의 꿈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비록 사제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모임에서의 체험들이 정차 훌륭한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됩니다.
지금 현재 우리 교구에서는 230여 명의 예비신학생들이 학년별, 지역별(신학교 지원반, 고등부, 중등부 대전, 중등부 천안, 아산, 중등부 논산, 공주, 중·고등부 서산, 당진, 보령, 홍성, 논산대건고등학교)로 모임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신앙성장을 위한 교리 교육과 성지순례, 체육대회, 봉사체험 등 다양한 교육과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구의 젊은 사제들 중 대다수가 예비신학생 모임을 통해서 사제성소를 심화시켰고 주님의 도구로서의 삶에 기쁘게 응답하여 사제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추수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하여라"(마태 9,38 : 루카 10,2) 하신 구세주의 권고와 '신자 공동체 전체가 항구히 또 충실히 사제성소를 증진시키는 데에 최대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사제 양성 교령에 따라 사제성소의 씨앗을 품고 있는 젊은이들을 발굴하고 그 성소의 씨앗을 성장시켜줄 예비신학생 모임에 많은 관심과 지속적인 기도롤 함께 해야 합니다.
예비신학생 모이을 주관하는 성소국에서는 예비신학생들뿐만 아니라 아직은 작은 관심만 갖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월보 '작은 예수', 성소국 홈 페이지(http://yesfather.or.kr)와 페이스북(http://www.facebook.com/djyesfather)과 페이스 북(http://www.facebook.com/djyesfather)을 통해서 예비신학생 모임의 활동과 내용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58)>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보는 건 속삭이는 것
최근 일본에서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사람과 개가 서로 시선을 맞춰 마주 보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양쪽 모두에게서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옥시토신은 우리 몸 안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호르몬의 일종으로 '모성 호르몬'이라고도 불립니다. 엄마가 아이를 낳을 때 출산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모유의 분비를 촉진시켜 수유를 준비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태어날 때 도움을 받은 고마운 기억이 있어서인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이 호르몬만 생기면 우리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해집니다. 이 호르몬이 늘어나면 모성애도 늘어나게 돼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옥시토신을'사랑의 묘약'이라고도 부릅니다. 실제로 스위스에서는 이 호르몬을 사람들의 코에 뿌리면 상대방에 대한 호감과 신뢰도가 높아진다는 결과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실험이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고마운 사랑의 묘약이 개를 쓰다듬거나 함께 놀아 줄 때보다 서로의 눈을 마주칠 때 가장 높게 왕성하게 분비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이 서로에게 최고로 행복한 순간임을 입증한 것이죠.
봄날이라 그런지 어디를 가도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자주 보입니다. 그런데 어디를 가도 연인들이 마주 앉아 서로 시선을 바라보는 풍경을 찾아보는 건 쉽지 않습니다. 향긋한 커피를 앞에 두고 대화를 하면서도 수시로 휴대폰을 바라보는 연인들...
가족끼리 함께한 식당 테이블에서도 가족은 있지만 마주치는 눈빛은 없습니다. 아빠는 아빠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각자의 눈을 마주치는 시간보다 휴대폰을 바라보는 시간만 늘어갈 뿐입니다.
옥시토신이 분비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참으로 외로울 것 같습니다. 옥시토신이 부족한 사회는 사막처럼 삭막할 것 같습니다.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세상처럼 무서운 세상도 없을 것 같습니다.
마주치는 눈을 바라보며 그 눈이 무엇을 속삭이는지 알고 싶다는 유행가가 생각나는 봄날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맑은 마음으로
그 부르심에
따르겠습니다.
어제의 오늘
오늘의 내일에도.
글. 그림 이순구 (베네딕도)
<함께하는 이야기 마당>
용서란?
우리 성당에서는 '용서'란 주제로 교육이 있었다. '살면서 용서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 자동차가 그리 많지 않던 시절, 드디어 우리에게도 처음으로 승용차가 생겼다. 새 차를 뽑고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즐거운 마음으로 차를 몰고 나가 큰아이 자모 모임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한 남자가 들어오며 큰 소리로 밖에 어떤 사람이 흰색 차를 부수고 있다는 것이다. 차가 귀하던 시절이었고 내 차도 흰색이었기 때문에 얼른 밖으로 나와 보니 어이없게도 내 차의 후면 유리창이 박살 나고 있었다. 노동자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는 그때까지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시뻘겋게 피가 나는 주먹으로 유리창을 내리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 사람은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사색이 되어 무조건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친구와 다투고 너무 억울한 마음에 사람을 치며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길 것 같아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백배사죄를 했다. 기가 막히고 화도 났지만 떨고 있는 그의 얼굴은 측은함마저 들게 하는 선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때마침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해서 청년은 조사를 받았다. 내일까지 돈을 마련해 오기로 하고 헤어져 유리가 뻥 뚫린 차를 자동차 정비공장에 맡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새 차로 요구하고 싶은 마음과 종교인으로서의 갈등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다음날 100만 원을 내놓고는 다음에 더 드리겠다면 용서를 청하는 그의 진솔되고 간절함이 묻어 있는 모습에, 어젯밤 혼란스럽기만 하던 내 마음엔 어느새 주님의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견적서를 보여주고 50만 원은 나에게도 큰돈이고 욕심도 나지만 나보다는 당신에게 더 필요한 것 같아 돌려주는 것이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고 이렇게 변화시키신 분은 하느님이시다. 당신도 기회가 되면 꼭 천주교회를 다니길 바란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다시는 모무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타이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나마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위로하며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게 용서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50만 원이라는 큰돈이 아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성당에 감사헌금을 할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용서란 하느님이 인간에게만 허락하신 은총이라고 생각하며, 어려운 사람을 용서할 수 있도록 나를 변화시키신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오해를 쌓는다.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때론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하며 이해도 하고 용서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하고 있는 용서가 나를 위한 용서인지 상대를 위한 용서인지 한 번쯤 생각해 봐야겠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참 용서를 닮아가라는 본당 신부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린다.
-김경혜 소피아/천안 원성동 성당-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두 천사가 여행 두 중 어느 부잣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부자는 천사들에게 수많은 객실 중 차가운 지하실의 비좁은 공간을 내주었다. 두 천사가 잠자리에 들 무렵 늙은 천사가 벽에 구멍이 난 것을 발견하고 그 구멍을 메워주었다.
젊은 천사가 "아니, 우리에게 이렇게 대우하는 자들에게 그런 선의를 베풀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늙은 천사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네."라고 말했다.
그다음 날 밤 두 천사는 가난한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농부인 집주인 부부는 자신들도 부족한 음식을 함께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침대까지도 내주었다. 다음날 아침 농부 내외가 암소가 죽은 것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죽은 암소는 그들이 우유를 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소득원이었다.
이것을 보고 젊은 천사가 화가 나서 늙은 천사에게 따졌다. 부잣집은 모든 걸 가졌으면서도 불친절했는데 도와주면서 궁핍한 살림에도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나누었던 농부의 귀중한 암소를 어떻게 죽게 놔둘 수 있나요?
그러자 늙은 천사가 대답했다. "부잣집에서 잘 때 난 벽속에 금덩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지. 그래서 나는 그 금을 찾지 못하게 구멍을 막은 걸세 그런데 어젯밤 우리가 농부의 집에서 잘 때는 죽음의 천사가 그의 아내를 데려가려고 왔었네. 그래서 내가 대신 암소를 데려가라고 했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네." 하느님 뜻을 어떻게 부족한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님을 깨닫고 그저 주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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