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7년 주보

예수 부활 대축일 2017년 4월 16일(가해)

모든 2 2017. 4. 16. 23:00

  

예수 부활 대축일

 

+ 마태 복음. 28,1-10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두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따로 한 곳에 개켜져 있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씀의 향기>

 

부활, 깨닫고 증거하는 삶 - 이용호 바오로 솔뫼성지 전담

 

  역사가였던 마르셀 시몬은 그의 저서 「초대 그리스도인들, 나는 무엇을 이해하는가?」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역사가에게는 '예수의 부활은 사실이다.'라고 말할 권한도 없고, '예수의 부활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할 권한도 없다. 역사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분명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그 사건이 없었다면 그리스도교의 발전을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확증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의 제자들의 신앙이다. 그런데 그들이 신앙은 부활 신앙이다."(세계 교회사 여행 1권 38쪽 참조)

 

  분명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인가?

  "주간 첫날 이른 아침, 마리아 막달레나와 시몬 베드로,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는 예수님의 무덤에 갔었는데, 예수님 무덤을 막았던 돌은 치워져 있었고, 그분의 시신을 감쌌던 아마포와 얼굴을 감쌌던 수건은 개켜져 있는 상태인 빈 무덤을 보고 믿었다는 것이다."(요한 20,1-9 참조)

 

  요한복음사가는 담대하게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채, 목격 증인들이 본 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목격 증인들은 보고 믿게 되었으며,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다가, 이 사건 이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요한 20,9 참조)

 

  그리고 깨달음의 징표는 제자들과 그리스도교의 역사 안에서 증명되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던 제자들은 죄 없으신 분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상에서 무력하게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무력을 넘어 부활하시기 위함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살아생전에 말씀하신 삶의 원리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 다락방 속에 숨어 실의와 절망 속에 삶의 방향성을 잃고 있었는데, 부활을 목격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는 부활의 사도가 되어 희망과 죽음을 넘어선 용기를 가지게 되었고 마침내 부활을 전하는 순교자들이 되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을 믿고 전하는 사람들을 다른 이들은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리스도교가 시작되었고, 2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부활은 삶에서 깨달아지고 있으며 선포되고 있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고 지금도 그 일은 진행되고 있기에 그리스도교의 부활신앙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에게 영원한 것이다.

 

  부활은 우리에게 진실을 깨달아 나갈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깨달은 진실은 희망과 용기를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부활은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우리도 삶의 진실을 깨닫고 실천하며 부활하는 삶이 될 수 있도록, 희망과 용기가 가득하시길 부활하신 주님께 기도드린다.

 

 

via의 시선(소리를 듣다) -임상교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한 주간의 글-

 

소리를 듣습니다. 조용히 입을 닫고 있으면 들리는 소리입니다.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들리는 소리입니다.

전에는 자주 들었던 소리인데 그래서 공책에 기록까지 했던 소리인데

요즘 아니 어느 때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듣지 않으니

내면의 기쁨이 적어지고, 몸과 마음에 힘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리를 듣다 보면 잡다한 사고들이 지나가는 것을 봅니다.

태풍이 지나고 나면 강물에 쌓이는 쓰레기 더미처럼

나도 모르는 잡다한 사고들이 내가 타고 있는 의식의 배에 부딪힙니다.

 

사고더미를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노를 젓습니다. 사고더미가 배를 전복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를 젓습니다. 그런데 힘이 빠지기 시작합니다 저 멀리 거대한 사고더미가 다가오는데

마치 거대한 빙하처럼 짙푸른 색을 띠고 다가오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힘이 빠졌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냥 내버려 둡니다. 힘이 빠졌으니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내버려둡니다. 눈을 감고 사고더미가 그냥 지나가기를 기다립니다.

 

빛이 보입니다. 사고더미 속에서 비춰지는 빛입니다. 사고더미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빛입니다.

그 빛이 지친 나를 보듬고 있습니다. 눈을 뜨고 바다 위에 떠있는 사고더미들을 바라봅니다.

아! 모두가 빛을 내고 있습니다. 힘이 빠지니 빛이 보입니다.

쥐고 있던 노를 놓으니 빛이 나를 감쌉니다.

 

소리가 들립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156)>

 

그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부활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의심했던 순간을 지나온 것이 아니라, 의심을 이겨 내고 믿음으로 기다린 순간을 지나 여기가지 온 것입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깨달음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한 번의 참회로 성큼 도달한 것이 아니라, 똑같은 어리석음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조금씩 걸어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희망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넘어질 때마다 손을 땅에 대고 주저앉은 것이 아니라, 두 손을 모아 하늘을 향해 기도하며 일어서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서서 이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런 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왔을 겁니다. 단지 멈춰 서서 부활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부활의 순간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단순히 기다리기만 하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사랑의 간절함은 없습니다. 기다릴 수 없어 그를 향해 가는 사람의 뒷모습에 사랑은 간절함을 남깁니다. 이번 부활절에는 유달리 노란 개나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름답다기보다 간절해 보여서입니다. 꽃잎 하나 하나가 노란 리본이 되어 간절한 기다림으로 피어난 것 같아서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그들을 그렇게 보낸 우리 모두의 부끄러움이, 우리 모두의 가슴 안에 그들이 언제까지나 영원히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이 노란 개나리를 통해 부활한 것만 같아서입니다.


  주님, 세상 모든 진실한 마음들이 당신의 부활과 함께 희망의 꽃으로 다시 피어날 수 있도록 한없이 따뜻한 햇살을 비춰 주소서!!!


  주님, 이기적 욕망의 화분 안에 갇혀 더 이상 뿌리를 뻗지 못한 채 성장을 멈춘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부활과 함께 사랑의 대지 위에 그 마음의 뿌리를 내리게 하소서!!!


  오늘 여기 이 순간까지 걸어온 모든 이들이 당신의 기적을 하나 된 마음으로 노래하게 하소서!!!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주님은

부활이십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시어

이 땅에

진실이 떠오르게 하소서.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2017년 예수 부활 대축일 메시지

"그리고 보고 믿었다."(요한 20,8)

  사랑하는 대전교구 자매, 형제 여러분!

 

  그 어느 해보다 깊은 절망과 희망의 교차점에 서서 부활선포와 축하인사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하느님이 없는 세대, 예수님의 부활 선포에 가볍게 고개를 돌리는 세상입니다. 누구를 탓할 수 없습니다. 점점 극악하고 잔인한 양상을 보이는 살인사건들이 보도됩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무자비한 테러는 종교의 의미를 스스로 무너뜨립니다. 약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마저 거부하는 세계 정치지도자들의 야만적인 목소리가 바이러스처럼 번지는 세상입니다. 젊은이들의 소박한 내일이 절박한 위기에 처한 시대입니다. 노동을 통해 존엄성을 실현하며 건강한 내일을 준비하려는 꿈마저 사치로 느끼는 그들의 눈에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과학기술 발전과 경제적 번영을 달성한 21세기 자화상입니다. 포용과 배려, 공존의 윤리는 무한경쟁과 살기(殺氣) 어린 생존법칙, 자폐적인 불감증에 그 자리를 내어줍니다. 절망의 시대입니다. 그 어디에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이러한 시대의 어둠에서 우리는 또한 희망을 봅니다. 엄청난 노력으로 교사가 된 20대의 젊은이가 불과 몇 살 어린 제자들을 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구명조끼를 양보한 숭고한 죽음에서 희망의 빛을 봅니다. 생명의 위기마저 느꼈을 압력을 견디며 사실을 증언하고 정의를 지켜낸 이들의 용기와 화재 현장에서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끝까지 뛰어다녔던 분들의 희생에서 인간과 세상의 희망을 봅니다. 이기심과 생존의 본능조차 꺾을 수 없는 사랑과 정의의 힘이 희망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부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의 부활 선포는 이처럼 희망을 증거 하는 삶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악으로 가득찬 시대에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일은 세상의 조롱과 비난, 협박을 받는 자리에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관심과 폭력성의      노도에 맞게, 양신과 사랑을 증언할 때 발생하는 마찰이 빚어내는 빛과 소리가 세상의 눈과 귀를 하느님께 돌려놓습니다. 우리의 증거가 하느님께 모든 인간 안에 심어 놓은 양심과 선성을 일깨우고 그들이 참 인간과 하느님을 찾아 나서게 합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구원으로 이끄시는 그리스도께서 이기심과 안주의 유혹을 버리고 당신을  따라 구원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부활로 초대하십니다. 우리의 삶으로 그리스도의 현존이 드러날 때 부활하신 예수님은 세상의 궁극적인 희망이며 유일한 구원자로 선포됩니다. 우리 안의 그리스도께서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힘을 주시기에, 우리는 그 손을 잡고 기쁜 마음으로 견디며 구원에 동참합니다.

 

 2017년의 부활에는 그 어는 해보다 큰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회개와 사죄로 변화된 우리 사회에서 슬픔이 희망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3년 전 오늘, 최소한의 준법과 양심만으로도 살릴 수 있었던 귀중한 생명이  가장 귀중한 시간을 놓친 당국과 선원들에 의해 스러져 갔습니다. 그 죽음 앞에 온 국민은 슬픔과 분노에 머물지 않고, 사회의 불의와 방관한 우리들의 죄를 사죄하였습니다. 그리고 더욱 정의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한 변화의 촛불을 밝혔습니다. 교회도 빛과 소금, 예언자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했는지를 치열하게 반성하며 그들과 함께 울고, 국민과 함께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들의 죽으로 더러난 세상의 악이 우리의 사죄와 사회의 근본적 변화로 이어질 때 스러져 간 죽음이 부활합니다.

 

 성경은 두려움에 갇힌 제자들이 부활체험이 부활신앙의 시작임을 보여줍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의와 사랑을 위해 십자가 길을 걷는 삶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우리의 부활 체험과 변화된 삶이 신의 죽음을 선포하는 세상에 하느님 체험과 부활체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빛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궁극적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 부활의 은총이 여러분과 가정에도 함께하시길 빕니다.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2017년 4월 16일 부활 대축일

+ 유 라자로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유 흥 식 라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