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7년 주보

사순 제 4주일 2017년 3월 26일(가해)

모든 2 2017. 3. 26. 22:30

 

문창동 성당(대전중부지구)

본당설립:1966.3.10/주보성인:파티마의 오후

 

  +  요한 복음.9,1-41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를 보셨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그의 부모입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하고 그에게 이르셨다. '실로암'은 '파견된 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그가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이웃 사람들이,그리고 그가 전에 거지였던 것을 보아 온 이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이가 아닌가?"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이오."하고,또 어떤 이들은 "아니오. 그와 닮은 사람이오,"하였다. 그 사람은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그러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하고 묻자,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신 다음,'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하고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그 사람이 어디 있소?"하고 물으니,그가 "모르겠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들이 전엔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들에게 데리고 갔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날은 안식일이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도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다시 물었다. 그는 "그분이 제 눈에 진흙을 붙여 주신 다음,제가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몇몇은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하고 어떤 이들은 "죄인이 어떻게 그런 표징을 일으킬 수 있겠소?"하여,그들사이에 논란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그들이 눈이 멀었던 이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당신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그러자 그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유다인들은 그가 눈이 멀었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앞을 볼 수 있게 된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그들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소?" 그의 부모가 대답하였다.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이라는 것과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것은 우리가 압니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누가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었는지도 우리는 모릅니다.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이를 먹었으니 제 일은 스스로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의 부모는 유다인들이 두려워 이렇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면 회당에서 내쫓기로 유다인들이 이미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부모가'나이를 먹었으니 그에게 물어보십시오."하고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바리사이들은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다시 불러,"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시오.우리는 그자가 죄인임을 알고 있소."하고 말하였다.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제가 눈이 멀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것은 압니다."그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소? 그가 어떻게 해서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소?" 하고 그들이 물으니,그가 대답하였다, "제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은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째서 다시 들으려고 하십니까?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말하였다. "당신은 그자의 제자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요. 우리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아오,그러나 그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오."

 

  그 사람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주셨는데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니,그것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을 들어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누가 하느님을 경외하면 그분의 뜻을 실천하면,그 사람의 말은 들어 주십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해 주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하며, 그를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그가 밖으로 내쫓겼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만나시자,"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하고 물으셨다. 그 사람이 '선생님,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하고 대답하자,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그는 "주님,저는 믿습니다."하며 예수님께 경배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던 몇몇 바리사이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눈먼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하고 있으니,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via의 시선(소리를 보다)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늦은 시간,호순이가 짖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치지 않는 소리에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나가보았습니다. 왼손으로는 손전등을 들고 오른쪽 손에는 헤드가 빠진 골프채를 호신용(?)으로 들고 갔습니다. 문 여는 소리를 듣고 반갑게 달려 오던 오순이가 갑자기 뒷걸음질 칩니다.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의 사람,전등을 끄고 손에 든 골프채를 몸 뒤로 숨기면서 이름을 부르자 꼬리를 흔들고 다가옵니다.

 

  담 넘어 주민센타 주차장에서 들려오는 낯선 소리에 놀라서 짖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몫을 담당하는 녀석의 등을 두드려 주고,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그리고 잠시 호순이와 함께 머뭅니다.

 

  사제관으로 올라오면서 호순이의 반응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늦은 시간 잠을 자지 못하게 만든 녀석에게 화가 났던 저입니다. 그래서 녀석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 소리에 칼과 창을 심어 놓았습니다. 같은 이름을 불렀는데 녀석이 느끼는 감정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아차!"하는 마음으로 녀석의 이름을 다시 부릅니다.나를 지키기 위해 손에 쥔 도구를 내려놓고 이름을 부르니 녀석이 반갑게 다가와 안깁니다.

 

  소리는 파동입니다. 그런데 소리를 듣다보면 어제와 오늘 듣는 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자신이 말하는 소리를 처음으로 듣는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의 몸를 통해서 나오는 것이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 소리가 어떤 파동을 띠고 있는지 제일 잘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현재의 나의 꼴은 자신 안에서 발출되는 소리로 형성됩니다. 듣는 대로 형성되어집니다 곧 말하는 대로 내가 만들어집니다. 나는 나의 소리가 만들어내는 외형적 조각품입니다. 그래서 그 조각품을 보면 그 사람의 내면이 어떤 소리로 채워져 있는지 알게 됩니다.

 

  흔히 환경이 나를 만든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일부만 맞습니다. 선택이 허용되지 않았던 시기에는 환경이 나의 꼴을 만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든 선택할 수 있는 시기는 주어집니다. 아니선택이 허용되지 않았던 시기는 없다고 해야 옳습니다. 그때 이것이 그것보다 좋다고 판단해서 이것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누구나 타협하고 선택하면서 살아갑니다. 문제는 '지금 여기에서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기 위한 선택을 하고 있는가?"입니다.

 

  변화는 "다름"을 드러냅니다. 그 중 첫번째의 다름은 "소리의 다름'입니다. 그리고 소리의 다름은 "나의 다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희망합니다. 오늘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소서.

 

 

<이충무의 행복나침반(153)>

  

뾰루지 길들이기

 

 

  세수하고 나서 거울을 보니 얼굴에 조그만 게 하나 났습니다. 뾰루지였습니다. 자꾸 턱 아래 부분이 간질간질하다 했더니 빨갛게 염증이 생긴 겁니다.

 

  사실 그리 큰 것이 아니라 자세히 봐야 보일 정도인데,그래도 자꾸만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 기왕이면 깔끔한 얼굴로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세수하고 나서 제일 먼저 뾰루지에 시선이 갔습니다. 염증이 조금 가라앉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봤는데,실망스럽게도 어제보다 오히려 조금 더 커진 것 같았습니다.

 

  뾰루지 크기는 약간 커졌을 뿐이지만,신경은 어제 보다 몇 배로 더 쓰였습니다. 하루이틀 참아 보다가,성격 급한 저는 결국 뾰루지에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잠깐 아프면 될 뿐이라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긴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다음날 뾰루지는 더 부풀어 동전크기만큼 커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자꾸 손대지 마라,손독 오르면 더 커진단다."

 

  살다보면 우리 삶의 표피에도 작은 뾰루지들이 생기곤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전혀 띄지도 않는데,내 눈에는 너무도 커 보여 자꾸만 신경 쓰이고,스스로 위축되는 그런 고민거리들 말입니다.

 

  그런 고민들의 공통점은 누가 만들어 준 상처가 아니라,내 안의 갈등으로 인해 저절로 생겨난 염증이라는 겁니다. 이 염증에 대한 최고의 처방은 '세심함'보다는 '무심함'입니다. 자꾸 그 문제에 신경을 쓰고 손을 갖다대면,좌절이라는 손독만 오르게 될 뿐입니다.

 

  시간이 필요한 문제에는 시간을 줘야 합니다. 묵묵히 참고 기다리는 것은 무력함의 증거가 아니라,때로 가장 강한 용기의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눈먼 잠에서

깨어난 오늘

 

잎이 돋아

꽃이 피고

 

내 영혼 깨끗이 닦아

맑고 예쁜

꽃이 피고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교구 시노드 "우리 함께 걸어요!"

천주교 대전교구 시노드 사무국

http://synod.djcatholic.or.kr

 

 

 

교구 시노드 (synod)란? "함께 길을 걷는다"(Syn+hodos)는 뜻을 지니면, 교구 전체의 선익을 위하여 교구장 주교가 교구 구성원들(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대표자들을 소집하여 개최하는 '대의원 회의'를 말합니다. 시노드를 통해서 교구의 현재를 진단하고, 해결이 필요한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며, 이에 따른 교구의 사목 계획이 수립되게 됩니다.

 

 

시노드 준비위원회 분과 소식

교구 시노드 준비위원회 분과별 회의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이번 주에는 9개 분과 중에서 평신도,가정생명 분과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평신도 분과 * 2/17(금) 10차 회의/장소 : 반석동 성당

분과는 중간보고서를 발표하고 본당 한마당 자료에 대한 나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본당  한마당의 결과 중에서 평신도에 관련된 이야기에 한정하여, 교구 내 신자들에게 시급히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평신도의 노력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에 대해 생활,정서,신앙 등의 측면에서 이야기를 나눴으며,평신도의 정체성과 교회의 예산 분배 대한 이야기,그리고 평신도단체협의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성 등 평신도 분과에서 전체적으로 공감하고 정리하기 위한 시간과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데 모두 동감하였습니다.

 

가정생명 분과  * 3/2(목) 8차 회의/장소 : 대전성모병원 자원봉사자실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생명 윤리"에 대한 개념 정리와 발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발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생명 윤리란?

생명 윤리란 '생명과 건강의 분야에서 가치와 이성적 도덕 원리에 비추어 인간 행위를 규정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종교적 생명 윤리는 특정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입장을 가리키며,세속적 생명 윤리는 종교의 영향을 탈피하고 반대하는 입장을  가리킨다. 그러나 종교적 생명 윤리와 세속적 생명 윤리로 구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생명 윤리는 종교적인 것도 세속적인 것도 아니다. 단순히 '생명 윤리'일 뿐이다. 종교적 혹은 세속적과 같은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의도적인 왜곡이다. 다만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가 윤리적 평가의 기준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인격 주의적 생명 윤리'라고 말할 수는 있다.

 

* 인간 생명의 신성하고 존엄한 가치

인간 생명은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사랑의 선물이므로 신성하며 존엄하다.(요한 바오로 2세,회칙 '생명의 복음',39항) 인간은 누구나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존중하고 서로 사랑하며 생명의 충만한 가치를 누리도록 초대 받았다. 생명의 불가침성과 인격의 고귀함은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므로 인간은 어떤 경우라도 이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인간은 하느님께서 맡기신 생명의 수호자요 관리자이지 소유자가 아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2280항)

 

* 인간의 생명은 '그 시작부터' 존중 받아야 한다.

인간의 생명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부터 인간 인격체로서 고유한 존엄성을 가지며 완전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고유한 존엄성을 가지며 완전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보호 받아야 한다.(교황청 신앙교리성,훈령 '생명의 선물',I,I항 : 가톨릭중앙의료원 윤리헌장29항) 인위적으로 생명을 조작하거나 파괴하는 행위들은 그것이 어떤 목적을 지향하든 윤리적으로 결코 허용될 수 없다.(생명의 선물,14항)

 

*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할 생명권의 주체

생명권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서 다른 모든 권리의 근원이 된다.(생명의 선물,서론,1항)모든 인간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자연적으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난,질병이나 장애,재산 정도와 상관없이 생명권의 주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요한 바오로 2세,교황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38항) 특히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는 인간생명의 초기 단계와 질병이나 노화로 인해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들의 경우 더욱 큰 사랑과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생명의 복음,12항)

........................................................................................................................사무국 행정지원단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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