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3년 주보

연중 제 13주일 교황주일 2023년 7월 2일(가해)

모든 2 2023. 7. 1. 10:08

 

성연성당(서산지구)

본당설립 : 2017.11.17 / 주보 성인 : 프란치스코하비에르

<사진 : 대전가톨릭사진가회>

 

 

+ 마태오 복음 10,37-42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다음,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말씀의 향기>

 

앞일을 내다보시는 예수님의 침묵 - 박남규 요한보스코 옥계동 주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으며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 말씀 중에서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않는 사람은 합당하지 않다.’라는 말씀은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지만 부모나 자식마저도 당신을 향한 사랑에 앞서면 안 된다는 말씀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자식이 없기에 자식은 모르겠지만 부모님 때문에 예수님을 알게 된 나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도대체 예수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이것을 이해하려면 ‘사랑하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먼저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 복음에서 사용된 ‘사랑하다(그리스어 필레인)’라는 표현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가리키는 ‘사랑하다’(그리스어 아가판)와는 다른 단어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하다’라는 말이 뜻하는 것은 비록 가족 사이의 유대(사랑)가 당연하기는 하지만 그 사랑이 때로는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하는 이들의 여정에서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예수님과 교회 공동체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제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는지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이라는 테두리(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일반적인 생각)에 갇혀 공동체 안에서 사제직을 수행하는데 형평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며 아울러 집안에 사제가 있다는 이유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 특권을 누리거나 편법이 있어서도 안 된다는 말씀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까지 내다 보신 예수님의 안목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안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너희를 받아 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에서도 드러 난다. 우리는 흔히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와 동등하다.’라고 생각한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파견된 사제가 파견한 예수님을 전면에 내세우며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사제의 말이니 교우들은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예수님 말씀이라 생각하고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냉철하게 들어 보면 이런 생각이 얼마나 멍청한 것인지 알게 된다. 사도 (그리스어 아포스톨로스)가 파견하신(그리스어 아포스텔 레인) 분과 같다고 말할 근거는 사도 자신에게 있지 않다. 파견된 사제가 파견한 분과 동등하게 되려면 오로지 사제가 실행하는 사명이나 수행하는 기능, 그리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맡기신 말씀 덕분에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 ‘때문에’ 누리게(?) 된 삶에 익숙해지기보다 예수님 ‘처럼’ 사는 모습이 조금이라도 교우들에게 비친다면 받아들일지 말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위험하고 힘든 여정을 떠난 사도들, 그리고 그들의 행실과 말씀에 예수님을 따르게 된 많은 교우가 이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공동의 집

 

도룡동본당 활동 소식

생활 실천에서 교육, 습관 형성으로 3년을 여정하다 -1

 

  “생태시민의식의 형성을 목표로 하는 교육은 종종 정보 제공에만 머물러 습관의 형성에 이르지 못한다”(찬미 받으소서 211항).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찬미받으소서」 211항에 환경에 대한 대부분의 실천 사항이 정보 전달의 단계에서만 머무를 뿐 습관 형성의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래서일까? 도룡동본당의 사회복음화 운동은 정보 전달의 단계를 뛰어넘어 생활 속에서 먼저 실천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 도룡동본당 ‘7년 여정하다’ 첫 번째 해 : 일상에서 신앙을 I - 생활의 개선

 

  대전교구에서 시작된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하다’는 본당 공동체가 생활 안에서 실천할 수 있는 피조물 보호에 대해 고민하게 했습니다. 도룡동본당에서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매주 주보에 교우들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피조물보호 금주 실천 사항]을 싣기 시작했고, 동시에 성당에서는 2분기부터 아이스팩을 모은 후 수산시장 근처 행정복지센터에 전달하여 수산시장에서 재이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에 힘을 얻어 4분기부터는 빈 우유팩을 모아 행정복지센터에 전달하는 우유팩 모으기 캠페인도 추진했습니다.

 

  - 도룡동본당 ‘7년 여정하다’ 두 번째 해 : 일상에서 신앙을 II - 의식의 개선

 

  생활 속에서 피조물 보호를 실천하다 보니 의외로 많은 교우가 올바른 분리배출 방법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올바른 교육을 위해 사회복음화 분과에서는 피조물보호 프로젝트 버전1(우유팩의 재활용), 2(아이스 팩의 재활용), 3(올바른 설거지 습관) 제작을 진행했습니다.

 

  교우들이 각 물품의 재활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활동은 피조물 보호에 관심 있는 몇몇 사람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피조물 보호와 관련한 활동의 중심에는 교우들이 있었으며 특히 본당 레지오 단체들의 적극적인 기도와 도움으로 아이스팩과 우유팩 폐자원을 지역사회로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교우가 분리배출 시 오염된 배출물들은 다시 쓰레기가 된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고 이로써 점차 안정되고 확실한 분리배출 습관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 도룡동본당 활동 소식은 8월에 계속됩니다.

 

-김유희 아델리나 도룡동본당 사회복음화분과-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49. 미사 해설 – 성찬 전례(13) : 감사 기도에 대해서 (7)

 

3) 기념 환호 : 신앙의 신비여


104. 이어서 말한다.

✚ 신앙의 신비여!

교우들은 뒤따라 환호한다.

◎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또는

◎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나이다.

또는

◎ 십자가와 부활로 저희를 구원하신 주님, 길이 영광받으소서.

  거양성혈 다음에, 사제는 “신앙의 신비여”라고 선포합니다. 이 선포에 따라 신자들은 기념에 대한 환호를 올립니다. 이 기념 환호는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었음을 선포함과 동시에, 거룩한 신비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기념 환호는 노래로 할 수도 있고, 낭송할 수도 있습니다. 단, 노래로 기념 환호를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미리 주례 사제와 전례 봉사자들, 그리고 성가대와 사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전례 성가에 대한 지침 성 음악 지침 59항에서는 기념 환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명시합니다. “신자들의 화답은 여러 양식이 있으므로, 전례 시기에 맞추어 적절히 선택하여 사용하는 것이 좋다. 기념 환호는 매우 중요한 공동체의 노래로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주례자가 선창하면 모두 함께 노래한다.” 이와 관련하여 몇몇 공동체에서 이 세 가지 양식에 대해서 첫 번째 양식은 연중 시기, 두 번째 양식은 사순과 대림 시기, 세 번째 양식은 부활 시기에 사용하는 것이 전례적인 의무라고 알고 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보편교회에서는 시기에 따라 각 양식을 구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곧 전례 시기에 맞춰 반드시 어느 양식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 각 양식이 갖는 의미에 따라 적절히 선택할 수 있도록 권장할 뿐이지, 의무사항은 아니라는 점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기념 환호로 제시된 세 가지 양식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양식은 파스카 사건을 늘 기억하며 마지막 날까지 성찬례를 거행하겠다는 다짐이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양식은 첫 번째 양식과 같은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다른 성경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더욱 성경 본문에 가깝게 표현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세 번째 양식은 찬미의 성격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양식은 모두 감사를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위대한 구원 업적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즉, 과거의 사건에 대한 찬미가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펼쳐진 거룩한 신비에 대해 감사와 찬미를 환호하는 것이 이 기념 환호의 참된 의미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감사 기도 중 “기념 봉헌”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 사목국 차장-

 

천주교 대전교구 성령쇄신봉사회

 

<8> 본당파견 성령묵상회

 

  1967년 미국에서 시작된 성령쇄신 운동은 1971년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1974년에 평신도를 위한 성령묵상회가 개최되었습니다.

 

  대전교구는 1977년 7월 온양 온천동 본당에서 7주간의 일정으로 본당묵상회가 개최되어 200명이 이수한 것으로 시작하여 2023년 1월 천안 용곡동 본당에 이르기까지 현재 49개 본당 4119명이 이수했습니다. 초창기에는 7~8주간으로 진행되다가 5주간으로 일정이 변경이 되었으며 각 본당의 상황에 따라 무박 3일로 개최한 본당도 있었고 견진성사를 위한 준비과정으로 묵상회를 한 본당도 많았습니다.

 

  성령묵상회를 통해 많은 신자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이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살아 계신 하느님을 체험하였습니다. 또한 성령은 어떤 분이시며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에 어떤 도움을 주시는지 깨닫게 되었으며 성경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진행되는 프로그램 안에서 올바로 의미 있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힘도 얻습니다.

 

  성령묵상회는 미사와 찬미, 강의, 그룹나눔, 면담, 고해성사, 안수예절 등의 과정으로 진행되며 세례는 받았으나 구원의 확신이 없는 신자들이 신앙의 정체성을 확고히 할 수 있도록 일깨워주며 성사생활을 충실히 하게 되고 말씀과 기도생활에도 맛 들이게 되어 본당에서의 활동도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하게 됩니다.

 

-김기범 시몬 신부 성령쇄신봉사회 전담-

 

 

 

<이충무의 숨은 행복 찾기(59)>

 

 

낱말 뒤에 숨은 행복 1

 

[ 형식적 인사 ]

 

  누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처럼 무의미한 말은 없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런 형식적인 인사말도 참 소중합니다. 그냥 무심코 던진 말이 아니라, 어쩌면 그 말 안에 상대방을 다시 보고 싶다는 소망이 단 1퍼센트라도 들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면 그 말조차 꺼내긴 힘들었을 겁니다. 실제로 밥을 먹었는지가 약속의 진실성을 측정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도 그 안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담겨 있다면 약속은 늘 유효합니다.

 

  공허한 형식적 인사라는 편견을 거두고, “언제 밥 한 번 먹죠.”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그땐 그 말을 이렇게 해석해 보면 어떨까요? “당신과 다시 한 번 만나도 난 참 좋을 것 같습니다.”

 

[ 비 올 줄 알고 가져간 우산 ]

 

  비 올 줄 알고 우산을 가져갔는데,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필요했던 우산이 갑자기 귀찮은 우산이 됩니다. 비는커녕 햇살만 쨍쨍하니, 길을 걷던 나그네는 햇살이 너무 뜨거워 할 수 없이 우산을 폅니다.

 

  그러자 우산이 양산이 됩니다. 비를 대비해 가져온 우산이 햇살을 피하기 위한 도구가 된 순간, 세상 그 어느 것도 한 가지 쓰임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단순하고 오만한 것이었는지 나그네는 양산이 된 우산 아래에서 깨닫습니다.

 

  세상 모든 건 다양한 쓰임새를 위해 존재합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단순하게 바라볼 뿐입니다. 사람을 우산 보듯 보게 되면 그를 이용할 순 있어도 진정 이해할 순 없게 됩니다. 우산과 양산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존재하는 걸 발견하는 것이 진정 사랑의 시작점입니다.

 

[ 아이스커피 속의 얼음 ]

 

  얼음이 커피에게 말합니다. “나 때문에 네가 빛난다.” 커피가 반박합니다. “무슨 소리? 나 때문에 네가 빛나는 거다.” 그러자 컵이 나섭니다. “내가 없어봐. 너희 둘 다 무슨 소용이야?” 그 순간 그들 사이로 빨대가 꽂혀집니다. 그리고 빨대 안으로 커피는 사라지고 컵 안에서 얼음이 물이 되어 갑니다. 시간은 빨대와도 같은데, 소모적인 논쟁으로 인생의 컵을 채우는 것 만큼 어리석고 공허한 일이 또 있을까요?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 건양대교수-

 

 

 

성지를 걷다 - 갈매못순교성지(3)

 

3. 갈매못-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연못

 

  예로부터 갈매못성지가 속해 있는 영보리 마을 뒷산의 산세가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모습’과도 같은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명당이라 하여, 실제 연못은 없지만 ‘갈마연’, ‘갈마연동(渴馬淵洞)’ 등으로 불렸다. 이렇게 갈매못은 갈마연(渴馬淵)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영적인 곳이다. 이제 이곳은 목마른 말이 아니라 영적 갈증으로 지친 신앙인들이 생명의 물을 마시는 생명의 땅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장한 순교성인들과 이름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무명 순교자들의 그 우직한 신앙과 주님을 향한 끝없는 사랑, 그들을 향한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이 한 곳에 모여 맑은 샘이 되어 있는 곳이다.

 

  “갈매못에 오셔서 갈증을 채우십시오. 갈매못에서 여러분은 생명의 물을 마실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갈증을 느끼는 당신께 다시 뛸 수 있는 영적 에너지를 채워 주실 것입니다.”

 

 

김동규 신부의 '함께하는 여정 "동행"' 3. 제2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우리(지식)

https://www.youtube.com/watch?v=p8UDBZSnGHo 

 

 

<1분 교리>

 

Q-1) 교회란 무엇인가요?

A) '교회'란 건물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믿는 이들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위하여 성령과 함께 인류 역사 안에 나타난 하느님 나라의 표지로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Q-2) 주님께서 친히 세우신 교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A)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참된 교회로서,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입니다.

 

Q-3) 교회와 하느님 나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A) 교회는 하느님 나라가 이 지상에 실현 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실현되는 모습이기에 엄밀히 말해 하느님 나라와 차이가 있습니다.

 

  정의와 사랑이 꽃피고 친교와 생명이 흘러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 일부라도 보여주는 반영의 모습이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은빛 성경 대학 1학기를 마치며

 

  갈마동 성당을 다닌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성경 대학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신부님께서 직접 지도해 주신다고 하니 나에게는 정말 큰 은총이었다. 80이 넘어 배우는 성경 공부였지만 너무나 재미있었다. 그동안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성경말씀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어서 성경에 대한 지식이 하나하나 쌓여가는 느낌이었고, 이런 나 자신을 볼 때 정말 뿌듯했다.

 

  책꽂이에 꽂아 두었던 성경을 다시 꺼내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다시 읽으며 공부하였더니 성경 말씀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은빛 성경 대학은 코로나19로 신앙생활에 게을러져 있던 나에게 큰 활력을 가져다주었다. 몇 십 년 만의 그림에 색칠도 해 보았는데 신비롭고 매우 흥이 있었다. 동아리 반에서 장구를 배우는 것도 매우 신이 났다. 기회가 되면 꼭 배워보고 싶었던 활동이어서 더욱 더 신명 나게 배울 수 있었다.

 

  지금까지 몰랐던 세계를 접하는 것은 나의 삶에 작은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부학장님의 '인생사' 강의도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2학기 때도 주님의 은총 속에서 더욱 열심히 배우며 기도해 보려고 한다. 은빛 성경 대학을 위해 수고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학생 최 정성 글로리아-